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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l 19. 2024

소박한 소망, 개망초

수영을 시작하고 남편과 대화가 늘었다. 부부가 뭔가를 같이 한다는 게 이런 면에서 좋은 거구나 새삼 깨달을 정도였다. 그래봤자 오늘은 어‘ 뭐 했어? 오늘은 잘 됐어? 하는 수준의 질문과 재밌었어, 힘들었어, 하는 대답이지만 그래도 부부가 매일 서로의 안부를 묻는 건 신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말이면 같이 수영장에 가기도 한다. 수영가방을 메고 같이 집을 나설 때, 수영복을 입고 레인에 들어설 때, 물에 젖은 수영복이 욕실에 나란히 걸려있는 걸 볼 때 우리가 공유하는 일상이 꽤 크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수영하는 법을 물어보거나 도움을 청하지는 않는다. '운전은 가족에게 배우는 거 아니다'의 또 다른 버전이 나올 것이 분명해 답답해도 혼자 연습하고 터득하는 편이다.


가끔 새로 알게 된 바보짓을 서로 고백하며 파안대소할 때도 있다.

“'음파'할 때  '음'이 코로 숨을 내쉬는 건지 몰랐어. 그러고보면 '음'도 내쉬는 거고 '파'도 내쉬는 거잖아. 그럼 언제 들이마셔?

“나는 여태 수영모를 옆으로 쓰고 다녔어. 어쩐지 강사가 자꾸 수영모를 가리키더라고.”     

처음이니까, 모르니까 배우는 거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웃어넘긴다. 웃어넘길 수 있는 친밀감 속에는 모르는 포인트가 너무나도 다양한 것에 대한 신기함과 함께 배움을 깨쳐가는 기쁨과, 나의 바보짓이 상대를 웃게 했다는 뿌듯함까지 숨어있다.


해맑게 웃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걸 배우는 게 이렇게 좋은데 우리는 왜 웃어넘길 수 없었던 수많은 순간을 맞닥뜨려야 했을까. 왜 어떤 것은 비웃음이 되고 어떤 것은 의 수치스러운 일이 되어야 했을까.

어쩌면 그 친밀감은 우리가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동등한 상태에서 기인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놀림이나 비하는 한쪽이 확실한 우위에 있을 때 시작되는 거니까. 그러고 보면 그동안 배움의 공간 안에서 이처럼 백지상태였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남녀라는 사회적 인식의 차이도, 선행학습으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기회도, 기울어진 운동장도 없이, 완전한 백지. 비교나 멸시가 싹트기 이전이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도 곧 실력 차가 나겠지. 누군가는 중급반에 올라가고 누군가는 못 갈 수도 있겠지. 서서히 속도와 기술에도 격차가 생기겠지. 그래도 지금처럼 오늘의 안부를 묻고 오늘 할 수 있는 숨을 공유했으면. 먹고사는 문제도 아니고 다만 건강하려고 하는 운동이니까 서로 비교하고 잘난 척하지 말고 사이좋게 수영장에 다녀와서 나란히 수영복을 말렸으면.      


흔하디 흔한 개망초처럼 소박한 소망 하나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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