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중장년지원센터에서 강사모집을 하기에 “똥손의 무모한 드로잉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응모했다. 면접도 보고 강의시연도 했는데, 전공을 물을 때부터 느낌이 싸했다. 제2의 인생을 살자면서 아직도 전공 타령이라니 아님 말고, 하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약간 미련이 남아서 남편에게 타로 점을 봤다(남편은 두어 달 전에 타로를 시작했다). 몇 개의 칼이 가로막고 있는 카드. 되긴 하겠지만 가시밭길이 있겠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질문을 바꿔서 다시 카드를 뽑았다. 내일 합격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시커먼 여인이 고개를 숙인 카드. 마주 보고 하하하, 웃었다.
그리고 오늘,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아이들이 뭔가에 도전했다 안 되면 그때마다 이 말을 해주었었다. 너 같은 인재를 놓치다니 안 됐군. 그쪽 손해지 뭐~ 그 말 그대로 나 자신에게 들려준다. 나를 떨어뜨린 당신들 손해지 뭐~
‘하다 보면 하게 된다.’라는 글귀를 그림 노트 앞장에 적어 놨다. 문우가 그걸 보고 되뇌어 보더니 ‘하다 보면 재밌어진다.’가 더 맞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게 더 마음에 든다면서. 물론 나도 재밌어지는 게 좋다. 하지만 ‘하다 보면 재밌어진다.’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격려를 통해 하게 만드는 느낌이 강하다. 또 실제로 하다 보면 재밌어지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고, 재밌지 않더라도 계속하는 데서 오는 충일감이 더 크다.
일단 시작하는 것. 굳이 할 필요 없어도 또는 뭘 해야 할지 왜 하는지 몰라도 일단 하다 보면 뭘 해야 할지도 왜 하는지도 알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나의 길이 아닐지라도 하지 않았다면 그 사실도 몰랐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그냥 하는거다. 하다보면 몸이 알아서 한다. 밥 먹고나면 이닦는것처럼 자연스럽게 루틴이 된다. 귀찮다거나 왜 해야 하나 라거나 쓸데없는 생각을 얹지 않는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언제나 기를 쓰며 살아와서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다. 이제는 힘 빼고 살고 싶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저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 그래서 똥손으로 그림도 도전하게 된 거다. 하다 보면 또 하게 된다. 슬슬, 지치지 않고 계속하는 거다.
여름이면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능소화를 좋아한다. 업신여길 '능(凌)'에 하늘을 뜻하는 '소(霄)'를 쓴다니, 아마도 뻗어 나가는 모양새가 하늘을 업신여길 정도로 기개가 세다는 의미일 거다. 어사화로도 쓰였다고 한다. 명예나 영광, 자존심이라는 꽃말이 딱 어울린다.
명예도 좋고 자존심도 좋지만 내 멋대로 사는 게 더 좋다. 사회적 잣대 따위 업신여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