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인터뷰- 전국오지콤유발밴드사모총연맹 기수, 링고
오지콤? 유발? 잘 모르는 단어들의 조합이었지만, ‘밴드’라는 단어 하나로 나는 그와 곧바로 연결되어버렸다.
나는 그를 내 첫 번째 인터뷰이로 정했다.
그는 ‘처치앤댄스홀’ 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나를 초대했다. 집회 다음날, 설레는 마음으로 카페로 들어섰는데 생각보다 장소는 협소한데 음악은 웅장했다. 마치 깃발의 바다 속에서 1미터짜리 깃발을 장엄한 표정으로 흔들어대던 나처럼.
약속시간을 살짝 넘어 그가 들어섰다.
“죄송해요. 고3이라 밤새 공부하고 잠깐 눈 붙였는데 그만...”
“앗, 제가 미안합니다. 고3인데 괜히 시간을 뺏었네요.”
나는 시작부터 약간 당황했다. 당연히 성인인 줄 알았다. 성숙해보이기도 했지만 매주 집회에 나오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이렇게 금방 고3에 대한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내고야 말았다.
원래 정치에 관심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링고는 전혀 아니라고 했다. “젠더갈등 정도?”라는 걸 보면 ‘전혀’에 가까운 게 맞다. 젠더 갈등은 요즘 정치에 대한 관심과 무관하게 일상이니까.
무서웠다. 부모님들이 겪은 그것을 우리가 또 겪어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놀랍기도 했지만, 부모세대가 했던 저항 같은 거 나는 못하겠는데, 하는 공포감이 먼저였다. 밤새 뉴스와 SNS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하는 모습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했지만 도저히 무서워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매주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링고는 한 밴드그룹을 언급했다. 어릴 때부터(2018년) 인디밴드를 덕질하고 있던 그는 다양한 밴드들을 팔로우하고 있는데 그 밴드가 집회에 나간다는 소식을 보고, 왜 나가지? 의아한 한편 위험하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단다. 집회든 뭐든 정치참여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을 때였다.
그날 그 밴드가 올린 영상은 예상과 달리 즐거움과 평화로움으로 가득해보였다. 나도 나가볼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집회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질 만큼 밴드 맨들에 대한 믿음이 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영상 속 집회의 모습이 유혹적이었다.
그는 그때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를 깁스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대전집회를 찾아 은하수네거리를 찾아갔다. 좋아하는 대상의 영향으로 광장에 나오다니, 내가 인터뷰를 시작한 기획의도와 너무나도 딱 맞아떨어졌지만 나는 약간 의구심이 들었다. 정치에 관심도 없었고 집회 경험도 없던 사람이 어떻게 바로 행동에 옮길 수 있었을까. 그것도 성치 않은 몸으로.
“평소 우리나라 인심은 죽었다고 생각해왔어요. 갈등도 많고 불친절하잖아요. 근데 집회에 갔다가 그 생각이 확 바뀌었어요. 자원봉사자분들도 그렇고 주변 참가자분들도 너무 따뜻하고 친절한 거예요. 직업 성별 나이 상관없이 평등하게 대하고, 다리가 불편한 저를 더 배려해주고 서로 지켜주는 걸 보면서 아, 아직 죽지 않았구나, 따뜻하구나, 안심할 수 있었어요.”
답을 듣고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던 의구심은 깃발 만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로소 해소되었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한때 좋아했던 동방신기 응원봉을 부랴부랴 찾아들고 나갔는데, 반짝이는 게 예쁘기는 하지만 들고 다니기가 몹시 거추장스럽더라고요.”
아이돌 팬들과 같이 인증샷도 찍어봤으니 응원봉은 됐고, 밴드 팬임을 표방해서 팬들을 집결시켜보고 싶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깃발이었다.
그는 밴드에 대해 이렇게 명명했다. 밴드 정신, 록의 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이번 빛의 혁명을 뭐라고 정의하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도 그는 록을 말했다. “이제는 록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남태령대첩이나 키세스단처럼 가슴이 벅차오르는 장면을 볼 때마다 “이게 록이지”를 외쳤고, “거대한 악의 무리와 싸우는데” “혁명과 저항의 음악”인 록 정신으로 “연대와 화합”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다소 거창하게, 아니, 청년답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지만 그건 아직 접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고, 아는 순간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밴드 덕질을 해온 이력을 보면 지금껏 그렇게 살아온 거였다.
그런데 그건 어쩌면 록 정신이라기보다 덕후의 기질이 아닐까 싶다. 덕후들은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생전 처음 보는 누군가(또는 무언가)에게 모든 걸 내어준다. 대가 없이, 일방적으로, 마냥 좋아하는 게 덕후의 위치성이지만, 절대 선을 넘는 행동은 참지 않는다(실은 밴드 이름을 지운 것은 인터뷰 이후 사고가 터진 탓이었다). 우리가 정한 약속, 상식, 질서, 경계를 침범하면 뒤돌아보지 않고 ‘탈빠’하거나 총공(온라인 집단행동)으로 맞선다.
‘전국오지콤유발밴드사모총연맹’은 원래 전국에 있는 공연메이트들과 각 지부를 만들려고 했다. 지부장(?)들에게 개인적인 사정이 생기면서 결국 혼자 전국을 책임지게 되었지만 지부장들은 각자의 지역에서 집회와 연대투쟁을 하고 있다. 사실 ‘오지콤(나이 많은 아저씨들을 좋아하는 덕후들을 가리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그를 기다리는 동안 검색창에서 찾아보았다. 우리 때 자주 쓰던 말, ‘잘생기면 오빠’와 반대상황이지만 대상의 연령과 상관없이 좋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는 다를 것이 없는 말이었다.
남태령대첩이 일어났을 때 서울지부를 맡을 뻔했던 오지콤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해주었다. 링고는 주말에 쉬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내어 그 맹렬했던 추위와 싸우면서 연대투쟁을 하는 그들이야말로 “참된 인간군상”이 아니냐고 흥분해마지 않았다.
금세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하는 링고에게 나는 조금 놀랐다. 누가 뭐라 해도 남태령대첩이나 키세스군단은 역사적인 현장을 만들어냈고, 이후 연대투쟁의 분기점이 된 상징적인 투쟁이었다.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방구석에서 핸드폰만 들여다봐야 하는 내 처지가 이토록 아쉬웠던 적이 없었다. 순간 부끄러웠다.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도 똑같이 간절하고 똑같이 역사의 한 장을 써내려가고 있는데 내가 그 소중함을 간과했구나...
“연대투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이거니까.”
링고는 태어나고 자란 대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보통 지방에 사는 청년들이 갖는 서울에 대한 동경이 그에게는 없다. 오히려 서울에 가면 “인심이 빡빡하다”고 느낀다.
“노잼도시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주거며 생활이며 다 잘 되어있어 살기 좋은 동네예요. 한 가지 아쉬운 건 인디 씬이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점, 그것뿐이에요.”
인디 덕후에게는 바로 그것이 치명적일 텐데, 대전 특유의 여유로움과 쿨함을 사랑한다는 그답게 정말 쿨했다.
다른 지역도 그렇겠지만, 탄핵정국이 길어지고 극우세력들이 양지로 나오면서 대전이 예전같지 않다. 집회에서조차 가끔 훼방을 놓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다. 한번은 뒤통수를 가격당한 적도 있단다. 일종의 테러가 일어나는 중이다.
그럼에도 깃발을 흔들고 나면 잘 봤다고 인사하고 간식과 핫팩을 권하는 이들을 보며 힘을 낸다. 작은 나눔과 친절이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를 잊지 않게 해준다.
인디 씬 내에서도 제발 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 좋겠다. 빈번히 일어나는 성폭력 등으로 ‘현타’와 ‘탈빠’가 반복되지 않게.
그리고 “노동자들의 인권”이 나아지기를 바란다. 집회에서 노동자분들의 발언을 들으며 그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평상시에는 접할 수 없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였다. 성인이 되면 차별금지법 등에 관한 1인 시위나 서명 운동 등을 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부모님도 정당가입을 권유하며 그의 활동을 지지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탄핵이 끝나면 그는 직접 밴드활동을 해보고 싶다. 이미 디제잉도 하고 드럼도 치고 있지만 이제 덕질에 머물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는 용기를 내려고 한다.
나는 그의 음악활동을 물개박수로 응원하고 기대한다. 언젠가 밴드 공연을 하면 꼭 초대해달라고 하자 그는 쑥스러운 웃음으로 흔쾌히 약속했다.
인터뷰를 마치고도 우리는 음악에 관한 수다를 한참 떨었다. 놀랍게도 밴드 붐이 다시 일어난 것에 대하여, 그럼에도 여전히 메이저 말고 인디는 주목받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향니, 크랙샷, 소울 딜리버리 등 그의 플레이리스트에 대하여...
인터뷰 내내 녹음이 제대로 되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웅장한 음악이 울려 퍼진 이 카페는 역시 음악 때문에 선택한 곳이란다. 본점이 따로 있는데 엘피 판을 들을 수 있고 가끔 라이브공연도 한단다. 조만간 우린 거기서 다시 만날 것 같다. 그때는 우리 모두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