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인터뷰, 게임 '데스티니' 덕후 츠네모리
링고에게 인터뷰를 부탁했을 때, 링고는 바로 옆에 서 있던 두 명의 기수를 내게 소개해주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연락처를 주고받았지만, 만나러 가면서 내가 과연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약간 어둡기도 했고 처음 인터뷰를 청해보는 거라 긴장을 한 탓이었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장소에 들어서자 눈에 익은 기수가 붉은 벽돌로 꾸며진 벽에 기대 서있었다. 앗, 오늘 만날 분이 남자였구나. 나는 다시 긴장했다. 성별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전조사가 너무 부족한 거 아닌가 하고. 알고 보니 사전조사만 부족한 게 아니라 아예 사전지식이 없는 분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꾸준히 게임을 해왔고 동인활동까지 활발히 하는 개발자이지만 무엇보다 게이머로서 살아간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낯선 분야를 꼽으라고 한다면 경제와 게임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게임덕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하지만 덕질과 정치가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가 생겨나는지 궁금한 입장에서는 게임의 세계가 어떻게 현실 세계와 만나는지 들을 수 있는 기회라 자못 기대가 되었다. 다행히 츠네모리는 나처럼 게임과 초면인 사람에게도 그쪽 세계에 대한 용어와 세계관을 친절하게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날은 새로운 확장 팩이 나온 날이었다. 서둘러 과제를 끝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게임을 하기 위해 대기를 하던 중 계엄이 터졌다. 순간 그는 차갑게 머리가 식어버렸다. 밤새 국회의 상황을 지켜보고 계엄 해제가 가결되고 계엄이 종료되었다는 발표까지 보았지만 여전히 끝났다고 인식되지 않았고, 오히려 존재가 훼손당한 느낌이었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때도 그는 집회에 나갔다. 그때는 고등학생이어서 운신의 폭이 좁았지만 지금은 “내가 어디에 있을지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 꾸준히 광장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두가 광장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갈 수 있는 사람이 간 거예요. 내가 못 갈 때에는 다른 사람이 채워줄 거잖아요.”
그는 “마침 그때 일정이 없었”다고 덤덤히 말했지만 시험 등 이미 예정된 일정 외에는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았다. 대전 페미니스트 총결집의 날 집회가 있었을 때도 그는 자리를 지켰다. 왜? 시간이 있었으니까. 물론 그 누구도 성평등 이슈에서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묵묵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날, 츠네모리는 후배들에게 밥을 샀다. 내수가 어려우니 취소했던 송년회를 재개하라던 우원식 국회의장의 당부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설날 연휴에는 부모님 집에 갔다가 서울 집회에 나갔다. SNS에서만 보던 깃발의 향연을 직접 경험하고 당장 자신의 깃발을 만들었다.
그가 좋아하는 <데스티니>라는 게임에 나온 문장이다. 광장에 선다는 건 무도한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직접 결정하겠다는 선언이자, “존엄한 인간으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믿는다.
그는 움직일 수 없는 숙명인 fate와 달리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달라지는 destiny, 그리고 우리가 맞이한 이 광장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가치를 수호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표명하고 싶었다. 기수가 된 그는 광장에서 더욱 효능감을 느꼈다.
그는 내게 게임 <데스티니>에 대한 영상을 찾아 보여주고 세계관에 대한 해석이 담긴 글을 공유해주었다. 그 자리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찾아볼수록 내가 알던 ‘심심풀이’ 게임이 아니라 한 편의 광대한 대서사시였다. 지금까지는 인류가 말과 글로 이야기를 공유했다면 이제는 게임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즐기는 것 같았다. 그중 이런 글귀가 있었다. “존재의 권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자와 도덕적으로 같다.” 나는 절로 누군가가 떠올랐다. 국민이 준 권리를 유지하지 못한 자. 오히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자. 애초에 그 자리에 앉지 말았어야 할 자.
남태령대첩이 일어나던 날도 그는 현장에 가지는 못했지만, 라이브 방송으로 함께 하고 있었다. ‘연대’와 ‘교차성’이 생겨나는 걸 생생하게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딘가에서 촛불과 응원봉으로 비유하는 글을 봤어요. 8년 전 여의도에서는 같은 색의 촛불로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색색의 응원봉으로 자신의 정체성까지 드러내고 있다고. 굉장히 공감되더라고요.”
지금 우리에게 닥친 구호는 ‘윤석열 탄핵, 국민의 힘 해체’이지만 앞으로 나와야 할 이야기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는 내내 민주주의의 본령에 대해 짚었다. 정검유착이나 법조계 카르텔 등의 문제도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법이 대상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것, 즉 원리원칙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지금의 정치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상대를 필요 이상으로 악마화 하지 말아야 한다. 교육이나 복지 등을 통해 “결국에는 양심”을 지키며 살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 양심이란, “벼랑 끝에서 돌아오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소외되고 절망에 빠진 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양심이란 것도 돌아온다고 말이다.
그동안 법이 원칙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는 걸 수도 없이 보아왔지만 그는 우리의 구호가 실현될 때까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할 것이다.
은하수네거리에서 광장 대토론회를 한 적이 있다. 다양한 의제에 대해 기조발제를 듣고 핸드폰으로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면 다 같이 그 자리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 스마트한 방식이었다. 츠네모리는 그런 토론의 시간이 좋았다. 노동과 환경 등 다양한 의제에 대해서 폭넓게 배울 수 있었다. 그때 언론에 대해 한마디 보태고 싶었는데 순서가 밀려 아쉽게도 발언하지 못했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 앞에 수많은 개혁과제가 있지만 언론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독일은 히틀러의 저서인 ‘나의 투쟁’을 출간할 때 반드시 비판하는 주석을 달아야 출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주석도 해설도 없이 내란수괴의 말을 받아 적어 기사로 내보내고 있어요. 대전에서 일어난 안타깝고도 끔찍한 사건인 고 김하늘 양 부모님에 대해서도 조심성 없이 함부로 기사를 내보내잖아요. 지금 우리 언론은 윤리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아요.” 이 또한 원리원칙과 양심의 문제일 것이다.
처음에 그는 앞으로도 정당에 가입하거나 목소리를 내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귀를 열어놓고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행동해야 할 때가 오면 “거리낌 없이 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이전보다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 같다고 했다. 당원 가입을 하는 게 작은 의지의 표명이 되지 않겠냐고도 했다.
나는 왜 생각이 바뀌었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가 이랬다저랬다 한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이번 빛의 혁명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그에게 물었을 때 “과정”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거대한 변화의 과정 안에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격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나는 남태령대첩 때 평범한 시민들이 말벌 동지들로 변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았듯이 내 눈앞에서 변화하는 츠네모리의 모습을 기쁘게 지켜보았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에 응해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특유의 덤덤함으로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해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분명 그의 목적이 달성되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저 깊은 곳에서는 수많은 개체들이 일렁이겠지만 겉으로는 부유물 하나 없이 맑고 잔잔한 새벽호수가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