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인터뷰, 진명
고백하건대, 인터뷰 도중에 이번 섭외는 실패라는 걸 알았다. 그는 내 인터뷰요청 글을 자세히 읽지 않고 그저 호기심으로 왜 인터뷰를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서 승낙했다고 고백했다. 혹시라도 이런 상황이 오면 어쩌나 예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래도 집회 내내 눈여겨보던 이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은 별로 없으리라 막연히 믿었는데, 망했다.
그는 광장에 나온 건 두 번 뿐이고 그것도 한 번은 탄핵집회가 주목적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그에게 미안하지만 기획의도와 달라 쓰지 않을 수도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는 흔쾌히 괜찮다고, 좋은 대화를 나눈 걸로 충분하다고 답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이야기를 굳이 빼야 하나 망설여졌다. 잠시 후 꼭 넣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광장에 계속 나오고 응원봉과 깃발을 흔드는 사람만 탄핵을 바라는 건 아니니까. 때로는 간절히 원해도 광장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마침 시간이 되어서 광장에 나온 거라던 츠네모리(수호자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합니다)의 말대로, 시간이 되는 누군가가 먼저 광장을 지키고 있으면 바톤 터치하듯이 또 다른 누군가가 달려와줄 거니까.
진명(31세, 대전 대덕구, 직장인)을 만난 건 3·8 여성대회가 있던 날이다. 그의 생애 첫 집회였다. 주중에는 사무직으로, 주말에는 판매직으로 쉬는 날 없이 일을 하는 그에게 집회 참여는 수일 전에 미리 회사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꽤 큰 결심과 실천력을 바탕으로 그 집회에 나온 것이다.
그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칭했다. 뭔가 부당하고 꺼림칙하지만 다들 적응하고 사는데 혼자 불평하는 거 같아 꾹 참았던 그것을 친구가 정확하게 짚어내주었는데, 바로 페미니즘이었다. 그는 속이 뻥 뚫리는 듯 시원했다. 유레카를 외치며 그는 당장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이제 막 한 권의 책을 읽는 중이라 아직은 지식이 파편적이지만 누구보다 페미니즘에 진심이라고 했다.
여성대회는 미디어에서 본 것에 비해 규모도 작고 참여자도 적어서 적이 실망했다. 이어진 탄핵집회에는 꽤 사람이 많았다. 이왕 탄핵집회에 나올 거면 조금 일찍 와서 여성대회에도 참여하면 얼마나 좋을까 살짝 아쉬웠지만, 페미니스트들이 더 뭉쳐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거리행진을 하면서 서울 부럽지 않게(가보지는 않았지만) 깃발이 휘날리고 노래 부르며 구호를 외치니까 마치 록 페스티벌(이하 락페)에 온 것 같았다. “음악이 있고 깃발이 있고 함성과 떼창이 있으니 집회가 락페 같다”던 밈을 실시간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는 2023년부터 록 페스티벌에 다녔다. 친구들이 같이 가주지 않으면 가고 싶은 데가 있어도 슬그머니 포기하고 말았던 그가 당시 대장암에 걸린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면서 많이 달라졌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쪽으로. 그래서 부산락페를 질러버렸다. 락페는 천국 같았다. 비싼 숙소비를 줄이려고 오픈채팅방에서 동행을 구했는데, 첫 락페라는 그에게 일행들은 모든 것을 베풀었다. 맛있는 거 사주고 원하는 거 다 해주었다. 그런 대접 처음이었다. 그는 받은 사랑을 다음 락페에서 내리사랑으로 베풀었다.
아쿠아슬론(수영과 달리기)에도 도전했다. 원래는 달리기를 너무 싫어해서 운동회가 있을 때면 미리 넘어져 다쳐서라도 달리기에서 빠졌다. 초등학교 6년 내내 한 번도 달리기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뒤늦게나마 달리기도 해보고 싶었다. 올해는 철인 3종에도 참가한다. 사이클이 너무 비싸 아쿠아슬론만 했는데 이번에 큰맘 먹고 사이클을 샀다. 완주를 목표로 매일 아침 사이클과 달리기를 연습하는 중이다.
계엄이 터지던 날도 다음날 운동을 위해 그는 일찍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밤새 큰일이 벌어진 걸 알았다. 하지만 계엄을 겪어본 세대가 아니어서 그런지 무게감이 전혀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한 모임에 갔다가 “계엄 이후 안녕하신가요?”라는 질문을 나누는 걸 보며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보다 큰일이 벌어졌구나. 그 뒤로 뉴스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북의 오물풍선을 유도했다는 소리에 뒤늦게 분노가 치솟았다. ‘안보는 보수’라면서 전쟁을 일으키려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서울에서 대규모로 집회하는 걸 보면서 감동이 벅차오르고 감사했지만, 자신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윤석열을 뽑아준 사람들은 도대체 뭐 하나, 그들에게 책임을 묻고 싶었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 때에는 아직 투표권이 없었는데도 좋아하는 언니 오빠들이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말에 실망하고 적극 반대했다. 독재자의 자식으로서 참회가 먼저인데 그런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 때는 재수를 하던 때라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토론회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판단의 근거가 뭐냐고 묻는 등 적극적으로 선거에 대해 대화를 나누려고 다가갔지만 그럴싸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 외에도 그는 정치는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 입장에서는 진보를 지지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고, 기득권이 생기면 보수화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또 절차만 까다로운 탁상행정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인터뷰 중간에 가서야 섭외 실패라는 걸 알게 된 것도 “정치는 나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시작부터 그가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SNS를 전혀 하지 않는 그로서는 남태령대첩이나 한강진의 키세스단이 어떻게 모이고 어떤 변곡점을 이루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또한 파편적으로 뉴스 단신을 접했을 뿐이다. 대전에서 집회가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정보가 자산”이라고 믿지만, SNS는 행복을 전시하는 곳이라 남들의 행복을 들여다보며 비교당하고 싶지 않았다. 방해되는 요소들은 한쪽으로 밀어 두고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했다.
비혼주의자인 그는 일찍부터 내 집마련을 위해 주택청약을 시작했다. 은행직원으로부터 “이렇게 관리 잘한 통장은 처음 본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이지만 가점제에 해당되는 게 없어 아직 내 집마련은 요원하다.
적금 목표를 늘리고 어떻게든 지켜가려 애쓰지만 월급은 늘지 않아 투잡을 하면서도 수시로 절망을 느끼고 불안하고 우울했다. 집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조건인데 이렇게 어려운 게 맞나 싶고 모든 게 무능력한 내 탓인 것 같아 어떻게든 "나에게 유리한 정보를 찾”으려고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다시 집회에 나왔다. 나 하나쯤은,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할 거라고 미루던 일을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더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락페나 철인 3종 경기를 미루지 않고 바로 시작했던 것처럼 그는 집회에 나가는 것도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고 직감했다. 토요 집회에서 매일 집회로 바뀐 후 페미니즘 독서모임에서 다 같이 집회에 가기로 했고, 그는 자원봉사를 신청해서 야광봉을 들고 행진을 도왔다.
집회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는 걸 들으며 무한한 책임감을 느꼈다.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 경제적 양극화가 해소되고 중산층이 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내 집마련’이 이토록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는 지금도 탄핵이 안 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사필귀정, 검찰이 그렇게 애써봐야 선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고 강력하게 믿는다.
탄핵 이후 꼭 해결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정책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지금까지 청산유수로 말하던 그가 머뭇거렸다. 잠시 후, 그는 중요한 걸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책은 정치인이 만드는 거고 우리는 좋은 정치인을 뽑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만들어가는 과정에 참여할 수도 있는 거군요."
그래도 "내가 감히" 전문가들이 하는 정책을 말하기는 어렵고 "아직은 의견을 낼 때도 남에게 상처나 피해를 주지 않을까 조심스러우니" 우선 자유발언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조만간 그가 집회에 와서 무대에 오르면 두 팔 벌려 환영해 주기를(내가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러하겠지만). 그가 펼쳐놓은 이야기가 정책이 되어 그를 구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주 5일만 일하고도 내 집마련을 하고 사이클을 사고 락페에 갈 수 있기를.
진명(과 또 다른 진명 들)이 마음껏 징징대고 마음껏 자신의 어려움과 절망을 펼쳐놓을 해방구가 필요하다. 듣는 ‘귀’가 필요하다. 마음껏 말하게 하고 양껏 배우게 하고 깊이 공감해 주는 다정한 정치가 여기저기 펼쳐지면 좋겠다.
그는 광장에 선 1/N이고 여기 지면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함부로 실패 운운한 저를 매우 꾸짖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