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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랏차차 Apr 29. 2024

오늘에 대하여

국립극단<천 개의 파랑>, 오츠슈이치<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안녕 일기장아. 오늘은 '오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지난 4. 26. 금요일에, 함께 연극을 했던 친구들과 함께 우리 연극 선생님 킹콩이 출연하는 국립극단의 <천 개의 파랑>을 봤어.


<천 개의 파랑>은 천선란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야. 경주마들이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휴머노이드 기수가 도입된 시대를 배경으로 해. 연극은, 1등 경주마 '투데이'와 그 파트너 기수 로봇인 '콜리'의 경주로 시작해. 인간들의 쾌락을 위해서 가장 빠르게 달려야 했던 투데이는 연골이 다 닳아서 고통스러운 경주를 하고 있어. 콜리는 감정을 느끼는 로봇이야. 투데이가 경주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낙마해. 이것이 콜리의 첫 번째 낙마야.


하반신이 부서진 콜리는 더 이상 기수 로봇으로 쓰일 수 없어서 폐기가 될 운명이었어. 부서진 콜리를 '연재'라는 여학생이 발견하고 자기의 집으로 데려가서 고쳐줘. 콜리는 연재의 집에서, 엄마 '보경'과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언니 '은혜'를 만나. 보경은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그를 그리워하면서 멈춰버린 시간을 살고 있어. 아래는 콜리가 보경에게 해 준 말이야.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투데이는 아직 젊고 건강하지만 연골이 닳아버려서 더 이상 뛸 수 없다는 이유로 안락사 위기에 놓여. 연재와 은혜는 투데이의 안락사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투데이를 경주에 다시 내보려 해. 경주에 나가는 말은 안락사를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투데이가 경주를 나간다고 하더라도 그건 한 번뿐일 거야. 인간들이 느리게 달리는 말에는 두 번씩이나 베팅하지는 않을 거거든.


투데이는 연재와 은혜의 노력으로 경주를 나갈 수 있게 돼. 콜리는 투데이가 아프지 않게 자신의 속도로 천천히 뛸 수 있도록 연습해. 이미 인간들이 원하는 가장 빠른 속도에 익숙한 투데이에게 천천히 뛰기는 쉬운 일이 아니야.


투데이는 경주에 나가. 그리고 죽기 전에 처음으로 남들이 원하는 속도가 아니라, 자기의 속도로 뛰어. 투데이의 파트너인 고장 난 기수 로봇 '콜리'는 자신의 무게 때문에 투데이가 뛰기 힘들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스스로 두 번째 낙마를 해.


본래 소설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나는데, 국립극단에서 한 가지 연출을 해. 이 연극을 보는 관객들의 모습을 찍어서 그 화면을 무대 배경 스크린에 쏘아서 보여줘. 우리도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하래. 각자의 속도로 달리면서 행복하길 바란대.


나의 속도대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


나는 크게 일탈을 해본 적 없이, 성실하게 살았어. 그런데 어제 연극을 보는데, 투데이가 꼭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잘 차려놓은 경주로를 그저 앞만 보고 빠르게 달린 느낌이야. 투데이한테 천천히 달리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찔끔 났어. 마지막에 카메라가 우리 관객들을 비출 때 많이들 울고 있더라. 통곡을 하는 관객도 있었어. 많이 지쳤나 봐 다들.


'좋은 삶'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이야. <천 개의 사랑>은, 내가 지난 4. 21. 친구들이랑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눈 오츠 슈이치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와 같은 말을 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오츠 슈이치의 책은 호스피스 병동의 의사인 저자가 만난 환자들이 공통되게 후회하는 것들을 알려줘.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은 거창하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기억에 남는 연애를 하라는 것 등등 하나하나 너무 당연하고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지. 책 내내 오츠 슈이치가 해 준 말은  '건강할 때 나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이었어. 자신의 철학대로 산 사람은 죽기 전에 모습도 평온하고 행복하대.


책에서 감명 깊었던 구절 중에 하나는 '성실한 바통주자가 되지 말자'였어. 독서모임을 한 친구도 이 문장에 밑줄을 쳤더라. 로펌 변호사의 특성상 밤 12시를 넘기고 새벽에 퇴근하는 삶이 익숙한 우리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되면서도 막상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답은 내리지 못한 우리들. 성실한 바통주자라는 말에 약간 뼈 맞은 거야 우린.


이렇게 경주마처럼 빠르게만 달리다간 우리 다 연골이 닳아버린 투데이가 될지도 몰라.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그곳으로 향하는 길 자체라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아. 너무 빠르게 달려가다 보면 행복을 지나쳐가게 되는 것 같아. 나는 요새 계절에 맞는 음식을 찾아서 먹는 것,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천변을 눈에 담으면서 느리게 달리는 것,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깨끗한 이불에 누워서 재즈 음악을 듣는 것이 좋아. 지금은 Chet Baker의 음악을 들으면서 브런치를 쓰는데, 행복해.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어,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할 줄.


나의 올해 첫 번째 자랑거리가 연극을 해본 것이었잖아, 기억나? 다들 직장인이거나 학생이었는데, 그중에 연기에 진심인 친구들이 있거든, 아니 글쎄 그 친구들이 처음으로 연극 오디션을 보고 왔대. 지금까지 해오던 길을 벗어나 모험을 나선 친구들 너무 멋지지. 오디션을 본 그날의 두근거림을 말해주는 친구들 눈이 반짝여서 이쁘더라. 각자가 만들고 있는 '나다운 오늘'들이 반짝이고 있었어. 사람들이 환호하는 경주로가 아니라, 느리더라도 나의 속도대로 방향대로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하자, 행복은 천천히 쌓이고 우리의 시간도 흘러갈 거야.

나의 오늘, 너의 오늘이 행복하길!




p.s. 경각심을 가지자는 의미에서, 독서모임 톡방 이름을 '성실한 바통주자는 되지 말자'로 바꿨어. 바통을 넘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야 인마(=나에게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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