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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랏차차 Jun 07. 2024

사회가 만든 섬, 그 섬을 나가는 힘

음악극 섬을 보고

나의 일기장에게, 2024. 6. 6. 수요일의 이야기야


엊그제 국립정동극장에서 <음악극 섬>을 보고 왔다. 과거 한센병 환자들이 살았던 소록도 이야기라는 정도만 알고 갔는데, 다 보고 나서 하루가 꼬박 다 지난 지금도 극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음악극 섬은, 1930년대 소록도의 한센인, 1960년대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한 마리안느와 마가렛, 2010년대 서울의 발달장애아 지원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로 다른 시대지만 여전히 지속되는 차별과 편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1930년대 사람들은 한센병 환자들을 소록도라는 곳으로 몰아넣고, 육체적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차별하고 혐오했다. 지금의 차별은 다르다. 고지선(지원이의 엄마)의 가족들은 지원이를 시설로 보낼 것을 권하고, 지역 주민들은 지원이와 같은 발달장애아를 위한 학교 설립에 반대하고 대신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자고 한다. 지원이와 같은 아이들은 매일 왕복 3시간을 걸려 특수학교를 간다. 그렇게 사회에서 더 멀고 좁은 곳에 갇히게 된다.


2016년 여름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혼자 유럽 여행을 했다. 여행 중 독일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작은 도시에 불시착(?)하게 되었는데, 카우치서핑으로 중년의 독일 부부 집에서 딱 하루 신세를 졌었다.


카우치서핑: 잠을 잘수 있는 쇼파를 의미하는 카우치와 파도를 타다는 서핑의 합성어로, 숙박 혹은 가이드까지 받을 수 있는, 배낭여행객을 위한 커뮤니티이다. 호스트는 숙박을 위한 작은 공간을 제공하되 돈을 받지 않고 대신 서로 문화를 교류하고 여행의 경험을 나누는 것에 목적이 있다. 나는 교환학생들이 사는 플랫의 거실 쇼파에서 자거나, 어린 아이들을 둔 가정집의 작은 방에서 카우치서핑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용감했다.


당시 독일 부부는 이미 성인이 된 아프가니스탄 난민 청년을 입양하였고, 그날 난민을 처음으로 만났다(생각해보니 이때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고, 로스쿨을 가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들 가족은 식사 중 나에게 '한국에도 난민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아마 없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 자리에서 구글링을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수의 난민이 있었다. 그때 만난 난민분은 독일 정착을 위해 기초교육을 받는데 특히 수학이 재밌다고 말했다. 뉴스에서 보던 난민과는 달리 따뜻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사람이었다. 그 날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난민 NGO 활동을 하고 동두천, 대림 등을 돌아다니면서 난민 인터뷰를 했다. 작은 소록도였다. 소외와 차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문제는 더 곪아버린다.


섬을 나가는 방법


음악극 섬에서 지원이 엄마 고지선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원이와 함께 지하철을 탄다. 지원이는 길게 뻗은 지하철을 뛰어다니고 싶어 하고, 고지선은 지원이를 붙잡을지 그대로 뛸 수 있게 둘지 고민한다. 지원이를 붙잡으면 지원이는 높고 낮은 소리를 반복하면서 가는 길 내내 소란을 피우겠지만, 지원이에게 잠깐의 자유를 주면 금새 충동을 해결하고 나아질 것이었다.


고지선은 지원을 뛰게 하기로 하고, 대신 그 뒤에서 "제가 뒤에 있습니다. 위험한 상황이 생길 것 같으면 곧바로 엄마인 제가 개입을 할 겁니다."라고 온 몸으로 표현하면서 지원이와 함께 달린다. 그러자 놀랍게도, 지원의 소란에 이목을 집중하던 사람들은 단 5분 만에 지원이에게 익숙해진다. 발을 펴고 앉아 있던 학생은 지원이가 넘어지지 않게 지원이가 지나갈 때즈음 다리를 접고 지원이가 지나가면 피길 반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더 이상 지원이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지원이들을 더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봤던 난민분은 반짝이는 눈을 가졌었다. 동두천에서 만났던 토니아는 요리 솜씨가 참 좋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여러 공익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했던 것은 이타심이 아니라 익숙함 같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편견 어린 시선과 소외가 어떤 건지 곁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좀처럼 다가가지 않는다. 대놓고 하는 차별이 아니라 은근한 소외와 거리 두기들이 더 대처하기 어렵다. 나는 그 이유가 '알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아주 짧은 교감이라도 해볼 수 있길 바란다. 단 5분의 진심이 담긴 대화와 눈맞춤으로도 우린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보통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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