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옆의 흰머리는 찐이래요!

나의 프리다이빙 입문기

by 청연

“언니, 귀 옆에 흰 머리는‘찐’이래요!”

출근 준비를 하다가 귀 옆에 흰머리를 발견했다. 몇 가닥 뽑으면 그만이었던 흰머리는 어느새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회사 후배에게 귀 옆에도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고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내 몸은 평생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다. 집안 내력이었다. 한 마디로 뼈대 약한 집안이다. 이십대에 입은 옷이 아직도 몸에 잘 맞았지만, 날씬한 몸이 다는 아니었다. 옷은 몸엔 잘 맞았지만, 얼굴과 맞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민소매나 다리가 드러나는 옷은 입을 수가 없어졌다. 친구들도 피부에 가해진 중력의 힘을 거스르기 위해 의학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

이제 갓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둘째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왔다. 뭐가 되고 싶냐니. 지금 나는 뭐가 되긴 되었던가. 아직도 뭐가 될 수 있는 걸까?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어려서는 부모님이 정해준 꿈이 나의 꿈이고 목표인 줄 알았다. 그렇게 살아야 잘 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성취보다는 후회가 훨씬 많았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사는 게 허탈하게 느껴졌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면, 이유 없이 눈물이 뚝 떨어지곤 했다. 그리고 그 허탈함은 인생은 무엇인가 대한 물음으로까지 치달았다. 그때쯤 인생과 관련한 책을 많이 읽었다. 특히 ‘마흔’에 관한 책은 서점에 넘쳐나도록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마흔을 인생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아이들의 백만원이 넘어가는 학원비는 아깝지 않으면서 한 달에 십만원하는 나의 요가 학원 비용은 아까웠다. 그러나 이제는 날 위해 쓰는 비용이 아까워 망설여질 때면, 나는 얼굴도 뵙지 못한 시아버님을 떠올린다. 어릴 적 남편의 아버지는 맛있는 것이 있으면, 아이들보다 본인이 먼저 드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아이들 좀 먹게 남기라고 하면,“쟤들은 앞으로 나보다 살날이 많아서, 훨씬 더 좋은 걸 많이 먹을거야!.”하고 본인이 입 속으로 남은 것까지 쏙 집어넣으셨단다. 아버지의 선견지명은 불행히도 맞아떨어졌고, 그는 예순의 나이에 하루아침에 승천 길에 오르셨다. 아버님은 오랜 지병이 있으셨다. 남편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것은 막둥이인 자신이 취업하자마자 마치 이젠 안심하고 떠나도 되겠다는 듯 홀연히 떠나버리신 아버님에 대한 유일한 남편의 위안이었다. 건강한 운동선수였던 지인의 사십 대 남편이 하루아침에 세상을 떴고, 자궁질환으로 수술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위와 장의 용종은 덤이요, 간과 쓸개의 결절도 예외는 아니었다. 건강하게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는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물음에 나의 꿈을 떠올렸다. 어려서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 진학 시에 국어국문과는 취업이 쉽지 않다는 말에 해당과의 진학을 포기했다. 틈틈이 혼자 글을 쓰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또 다른 꿈이 떠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간 태국 여행에서 피피섬 호핑 투어를 갔다. 구명조끼를 입고 스노클을 한 채 바닷속에서 눈을 떴을 때의 충격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수족관으로만 봐오던 환상적인 광경이 그곳에 펼쳐지고 있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머리가 하얗게 센 유럽에서 온 어르신들이 구명조끼도 없이 편안하게 유영하며 깊은 물속에서 얼굴만 내민 채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일 년에 한두 차례씩 파도 한 점 없는 에머랄드 빛 바다 위에서 맨몸으로 편안하게 떠 있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잠에서 깨고 나면 마치 프로포폴이라도 맞은 듯 한동안 그 황홀함에 몸을 일으켜 나오기 힘들었다. 동네 키즈풀 수영장에서 오전에 어머니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영을 배울수록 잘하고 싶은 욕심이 계속 생겨났다. 수영 강습 시간 외에도 수영 유투브를 찾아보며, 원리와 이론을 이해하고 머릿속으로는 시뮬레이션을 했다. 침대에 누우면 어느새 천장은 풀장이 되었다. 침대에 걸치고 다리와 팔을 허우적댔다. 함께 자려고 문을 열었던 아이가 이상한 자세의 엄마를 발견하고 한참을 굳은 채 서 있었다.‘얘야, 이건 단지 드라이 트레이닝이라고 하는 것일 뿐이란다.’나는 그렇게 1년 만에 수영을 마스터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1.5미터 풀장이 아닌 곳에서 나의 수영 실력은 무용지물이었다. 다리가 바닥에 닿지 않으면 물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리가 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몸이 굳었다. 그 좋은 바다에 왔지만, 해변에서 파도만 맞을 뿐 구명조끼 없이는 수영을 할 수가 없었다. 구명조끼를 벗어 제끼고 싶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폭풍 검색을 했다. 뭐라고 검색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바다수영’이라고 했던가. 그때 ‘프리다이빙’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호흡 장비 없이 무호흡으로 수중에서 하는 활동’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프리다이빙에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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