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연 Sep 10. 2021

06. 식물에 죽고 식물에 살다

정원 가꾸기

 


 단독주택에 이사오고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아파트에 살면서 둘 다 맞벌이를 하다보니 화분에 물 주는 것을 수시로 잊어버려 우리집에 오는 식물은 항상 죽어나가기 일수였다. 가끔은 큰 화분을 관리하기가 힘들어 밖에서 비라도 맞으며 크라고 아파트 화단에 내 놓았다가 그야말로 찬 바람이 들때까지 까맣게 그 존재를 잊어버리고 마는 그야말로 식물 '유기' 도 종종 했었더랬다. 그렇게 해놓고는 일말의 가책도 별로 없었다. 애완 동물처럼 살아 숨쉬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늘 초록 잔디가 푹신하게 깔려있는 정원을 가진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 살기만을 꿈꿨다. 하지만 그 정원을 ‘내가’직접 매일 가꿔야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나는 정말 식물과 정원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고요했던 겨울을 지나 식물이 마음껏 생장하는 따뜻한 봄이 오면, 파릇파릇한 잔디와 더불어 온갖 '잡초'들이 함께 올라왔다. 무시하고 지내고 싶었지만, 무시하기에 그들의 번식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실 밖의 잡초 핀 정원이 우리집 거실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문을 열고 정원에 들어서면, 거실에 아이들이 널부러 놓은 장난감들처럼 그 잡초들이 거슬리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로 머리에 잡념이 많고 스트레스가 많은 날이면 나는 주말 아침부터 때로는 네 시간씩 쪼그리고 앉아 호미로 잡초를 캐기 시작했다. 잡초가 뿌리채 뽑혀져 나올 때는 스트레스가 떨쳐져 나가는 것 같은 쾌감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일부분만 할 생각을 했지만 한번 시작한 잡초 제거는 내 눈앞에 잡초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어느 날은 잡초 제거를 마치고 일어나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다음날 부터 첫 아이를 낳고 발생한 허리 디스크 통증이 다시 스물스물 시작되었다. 나는 한동안 물리 치료에 의존해야 했다. 정원 일을 하다가 골병이 들 뻔한 것이다.


 그 후로는 정원 일도 내 욕심대로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잡초 제거기'라는 것이 있었다!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여지껏 쪼그리고 앉아 손톱에 흙물을 들여가며 잡초를 제거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정원 도구에 대해 차츰 알아가기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정원 도구의 종류와 기능은 다양했다. 처음에는 죽은 잔디를 긁어주는 '괭이' 라는 도구를 몰라, 인터넷 검색창에 내 마음대로 잔디를 긁는 것이니 '긁개'라고 신나게 검색을 해댔지만, 내가 원하는 도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내가 찾는 것은 '괭이'였다. 사실 처음에는 죽은 누런 잔디를 긁어내 주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집 잔디만 유난히 누릿누릿해 보였다. 알고보니 죽은 누런 잔디는 초봄에 괭이로 긁어주어야 했다. 늦게 긁기 시작하니, 누런 잔디가 더 일어나 긁어도 긁어도 끊임없이 나왔다. 더 일어난 누런 잔디 덕에 잔디는 더 누래보였다.


우리의 처음 정원은 잔디 마당이었다.


 의존할 곳이 없었던 나는 '정원', '꽃', '식물' 가꾸기에 대한 책을 잔뜩 사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대부분의 모든 지식을 항상 '책'으로 익히는 스타일이다. 육아를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고, 궁금한 것이 생길 때 마다 나는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거나 또는 서점에서 관련 책을 구입해서 무조건 읽어댔다. 하지만 '정원 가꾸기'에 대한 책은 정말 한정적이었다. 또한 '조경'에 관한 지식 서적은 내가 읽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식물' 키우기에 대한 책은 요즘 사람들의 관심에 맞게 대부분 '실내 식물'과 '베란다 텃밭'에 관한 책이었다. 노지 식물 키우기와 정원 가꾸기에 관한 정보는 쉽게 책으로 찾아볼 수 없었다. 다행히 그 중에 '오경아' 정원사의 책이 있어 많은 도움을 얻었다. 속초에서 '정원 학교'를 운영 중이라고 하는데, 나이를 더 먹어 나에게 시간과 여유가 더 생긴다면, 속초에 머물면서 꼭 제대로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모야모' 앱이었다. 준공 식물로 소장님께서 임시로 집 주변에 심어주고 가신 과일 나무들과 초화들을 한참 지난 후 옮겨 심었는데 당최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럴 때 이 '모야모' 앱에 들어가 '이름이 뭐에요' 하고 물어보면 거의 5분도 안 되서 식물 고수들의 정확한 답변이 달린다. 그러면 그 식물의 이름으로 인터넷에 검색해서 식물의 특징에 맞춰 관리해 줄 수가 있다. 또한 매일 신경을 쓰고 있는데도 식물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말 못하는 식물에게 뭐가 문제인지 물어볼 수도 없고, 마냥 답답할 따름이었다.이럴 때도 이 앱의 '식물 클리닉'에 들어가 사진을 올리면, '과습' 때문인지, 또는 과도한 '햇빛' 때문인지 '식물 고수' 들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세상 좋아졌다.



책과 온라인 외에 식물 키운는 법에 대한 지식은 '식물 고수'를 직접 만나 친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내 또래의 젊은 사람들 중에서 '식물 고수'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가 매일 유치원 버스에서 아이를 픽업할 때마다 마주치는 아이 할머니와 친해지게 되었다. 이 분은 인근 아파트에서 유명한 그야말로 식물 고수이시다. 10년 지나 이끼만 끼어 있던 아파트 상가 옥상을 일구어 온갖 씨를 뿌려 꽃밭을 만들어 매일 가꾸시는 분이다. 할머니는 아파트 주민 모두에게 꽃을 통해 이렇게 작은 기쁨을 나눔하신다. 할머니는 내가 꽃 모종을 돈 주고 사는걸 이해 못하신다. 지천에 널린게 꽃 씨인데, 왜 모종을 사냐며... 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유치원을 다니지 않는 지금도 이 식물 고수 할머니와 함께 씨앗과 묘목을 나눔하며 지낸다. 꽃이 많이 피는 봄이 오면 어김 없이 전화가 오셔서 ‘와서 가져다 심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하고 연락을 주신다.



 전에는 모든 식물이 무조건 햇빛과 물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정말이지 그게 다 인 줄 알았다. 나는 단독 주택에 산 뒤로 집 안 인테리어 용으로 잔뜩 사 놓은 크고 작은 식물 화분에 한동안 관심을 가지고 물도 주고 햇빛도 보여주고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식물들은 나의 손에서 죽어나갔다. 슬펐다. 뭐가 문제인지도 몰랐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때부터 나는 식물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빛을 좋아하는 식물이 있고, 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음지 식물이 있었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 있는 반면, 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식물이 있었다. 나의 문제는 주로 식물을 정성껏 보살핀다고 물을 너무 많이 주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빛과 물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통풍'이었다. '바람'..... 바람을 쐴 수 없는 환경이라면 선풍기라도 틀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위 식물이 '질식'을 한다고 한다.


 흔히 화원에서 식물을 사올 때 주인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이 식물은 키우기 쉬우니 일주일에 한 번씩만 물을 주라는 덧이다. 하지만 식물을 키우면서 깨달은 것은 '정해진 것은 없다.' 는 것이다. 식물이 날씨가 습하고 통풍이 적은 곳에 있다면 물을 적게 주어야 하고, 날씨가 건조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있다면 물을 많이 주어야 한다. 주로 손 끝으로 흙을 찔러보아서 흙이 말랐을 때 준다. 하지만 나 같은 문외한은 처음에는 흙을 손가락으로 찔러본들 이게 물을 줘야 하는 것인지조차 잘 느낌이 오지 않았다.


식물도 목이 마르면 잎이 축쳐진다. 물이 정말 고프다는 뜻이다. 이때 물을 저녁에 흠뻑 주고 나면 아침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잎이 빳빳하게 다시 위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이렇게 물을 주는 것의 위험성 하나는 이 식물의 싸인을 보지 못하고 하루 이틀 더 지나 잎이 마르기 시작하면, 식물을 영원히 보낼 수도 있다.


 그래서 식물을 잘 키우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햇빛도 물도 통풍도 아닌 '관심'이라고 했나 보다. 매일 물을 주지는 않더라도 매일 한번씩 눈 맞춤해 주는 것이다. 알리섬의 보라색 작은 꽃 봉우리가 어제보다 더 맺혔는지, 꽃 봉우리가 어제보다 더 마르거나 무르지는 않았는지 확인한다. 새벽에 비 소식이 있으면, 건조한 환경을 좋아하는 다육이들의 잎이 무르지 않게 실내로 들여놨다 비가 그치면 정원에 다시 내 놓아 햇빛 샤워를 할 수 있게 내놓는다.


 일기예보를 미쳐 확인하지 못하고 밤새 비가 와 아침에 이미 물러버린 다육이들을 바라보면서 가슴 아파본 기억이 있으면, 새벽... 비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옷 바람으로 우산도 안 쓴 채 정신나간 사람처럼, 정원으로 뛰쳐나가 내가 아끼는 다육이 화분들을 현관 처마 밑으로 황급히 옮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05. 북한산! 북한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