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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Sep 08. 2021

04. 당신은 우연이라 하고, 우리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집짓기를 결정하기 까지...

 

 우리가 집을 짓기를 결정하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 땅을 '발견' 한 뒤로 우리는 한달 동안 매주 주말이면 이 곳을 방문했다. 이미 지어진 몇 안 되는 집들을 구경하고, 진관동 계곡에도 가보았다. 마을과는 걸어서 5분 거리였다.


 2016년 5월 ..... 그곳에 갈 때마다 날씨는 항상 우리편이었나보다. 우리는 지금도 말한다. 우리가 이곳을 발견한 날이 5월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운명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온갖 봄꽃들이 만발했고 따뜻한 봄 바람이 불어왔다. 이미 지어진 단독 주택의 마당에서는 하얀 강아지 두 마리가 서로 꼬리 잡기 놀이를 하며 초록 잔디밭에서 뒹굴고 있었다. 또 한 집에서는 아이들이 정원에 마련된 모래놀이터에서 모래 놀이를 하고 있었고, 철봉에 매달려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고 있었다. 그 건너편 집에서는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마당에 나와 잔디에 호수로 물을 주며 즐거워 하고 있었다. 2016년 5월의 이곳은 우리를 홀리기에 충분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바비큐 도구를 가지고 나와 온 가족이 와인에 바비큐를 즐기는 모습도 눈이 띄었다. 모든 것이 이상적이었고 완벽했다. 과연, 나도 저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그 때까지만해도 그런 일은 나에겐 꿈과 같은 일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주위의 많은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이 곳에 땅을 사서 집을 짓는 것에 대해 상의를 했다. 우리의 예산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느 한 사람도 좋은 선택이라고 선뜻 말해주지 않았다. 나 또한 그랬다. 절충안으로 테라스 하우스를 생각했다. 물론 테라스 하우스는 완벽한 전원 생활은 아니었다. 하지만 빚을 최대로 내어 집을 짓자는 남편의 의지가 완강했다. 한번 꽂혀버린 그의 마음과 의지는 꺽일 줄 몰랐다. 남편은 홍대 건축과 시절 아는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대학시절 같은 과였던 여자친구와 결혼해 함께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었다. 마침 한옥마을과 가까운 불광동에 살았던 형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땅을 보러 나와 주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비가 내려 둘 다 실망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그 걱정을 비웃기라도 한듯, 우리가 한옥마을에 도착한 순간, 북한산 자락이 운무에 휘감겨 마치 신령님이 산 자락에 내려와 앉았을 것만 같은 그 풍광에 우리는 모두 압도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날, 남편의 동기는 우리가 집을 짓는 것에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져주었다.


우리는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우리에겐 여러 사람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았다. 다수의 동의보다는 한 사람의 확신있는 동의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그저 우리의 계획에 동의해 줄 한 사람을 찾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우리 둘의 마음 속에는 오래전 이 말도 안 되는 결정을 이미 내려버린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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