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동 한옥마을과의 만남...
처음 신혼생활을 했던 곳은 신도림이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산은 없었고, 공기 또한 좋지 않았다. 커다란 공원에 가려면 여의도 공원까지 나가야 했다. 하지만 지하철 1,2호선이 있는 역세권으로 교통이 좋고, 주위에 커다란 백화점과 쇼핑몰이 많았기 때문에 신혼생활을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곳이었다. 차를 타고 30-40분 정도면 용인, 과천, 인천, 송도 등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원이나 동물원 또는 쇼핑을 위한 아울렛까지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우리는 주말마다 그렇게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녔다. 금요일 퇴근길에는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갈 곳을 검색하는 것이 일과였다.
아이가 5살쯤 되자, 어린이 박물관에서 놀이공원, 키즈카페, 실내 동물원, 어린이 체험전 등 안 가본 곳이 거의 없었다. 여름 방학, 겨울 방학 시즌이 오면, 다시 장소만 바꾸어 체험전을 했고, 몇 년이 지나 가보아도 내용은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내가 만약 블로그를 했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간 곳만 소개해도 나는 파워블로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또래 친구들에게 아이들 갈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물어보면, 대답으로 돌아온 곳은 거의 다 가 본 곳이었으니까.
주중에 다른 엄마들처럼 함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워킹맘으로서의 죄책감도 섞여 있었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 아이들과 나갔고, 마치 그것이 주중에 아이들과 보내지 못한 시간에 대한 큰 보상이라도 되는 양 생각했다. 또 한 켠으로는 어렸을 적의 온갖 자극과 체험이 창의적인 아이를 만든다는 육아서의 한 줄이 나를 자극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주말이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 금요일 저녁이면 "이번 주는 어디가?"라고 물어봤다. 어쩌다가 나가지 않는 날은 울기까지 했다. 2, 5살의 아들 둘을 데리고 아파트 내 집에서 하루 종일 있는 것 또한 고역이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왜 우리는 '우리 집'에서 마음껏 놀 수가 없는 것일까?' '뛰어노는 것이 아이의 잘못도 아닌데, 왜 나는 뛰는 아이에게 노심초사 뛰지 말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아파트 1층이나 테라스 하우스를 떠올렸다. 큰 아이가 학교가 갈 때가 다가오기 때문에 기왕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다 있는 대단지 아파트가 좋을 것 같았다. 아이가 대학 가기 전까지 앞으로 약 20년 정도 살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리고 산을 좋아하는 나는 되도록 주위에 산이 있고 집에서 산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남편과 나의 직장은 서울 중심지에 있었다. '충무로'와 '광화문'. 서울 어디에 살아도 출퇴근을 1시간 이내로 할 수 있는 거리였다. 직장이 가까운 옥수동도 생각했다가, 한참 뜨고 있는 위례 신도시도 생각했다. 가장 쉬운 선택으로는 신도림에서 근접해 있는 목동이 있었지만,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 다니는 엄마들과는 달리, 나는 교육열이 너무 높은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이의 아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경험하게 해 주면서 어려서부터 학업으로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했다. 또 하나 목동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구도심보다는 깨끗하고 잘 구획된 신도시가 나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의 고민을 남편이 지인과 얘기하던 중, 지인이 '그럼, 은평 뉴타운에 가봐.'라고 말해주었다. 서울에 살았지만 '은평구'는 사실 태어나 처음 듣는 낯선 곳이었다.
그 후 회사 일에, 육아에 정신이 없어 '은평 뉴타운'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치과 검진 중 발견한 큰 아이의 치아 치료가 시급해졌다. 처음으로 맞딱들인 아이의 충치. 동네 키즈 치과에 가봤지만, 값비싼 레진 치료를 권했고 그마저도 예약이 밀려 몇 주 뒤에나 치료가 가능했다. 동네 키즈 치과는 갈 때마다 전쟁이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은평구 응암동에 치과를 개원한 고등학교 친구가 생각이 났다. 아주 오랜만에 친구에게 슬쩍 연락을 하고, 처음으로 맞딱들인 아이의 충치 치료에 믿을만한 진료와 상담이 절실했던 나는 아이의 충치치료를 위해 주말, 남편과 함께 구로에서 은평구 응암동까지 차를 운전해서 갔다. 만족스러운 진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남편이 말했다. "은평뉴타운 가볼래? 여기에서 가까워." .....
"그럴까?"
'은평뉴타운'이라는 곳에 도착하자, 모든 것이 새로웠다. 32층 아파트의 20층에 살고 있던 우리들은 대부분의 아파트가 최고층 7층 정도의 낮은 층수와 깨끗하게 정비된 대단지 아파트에 주변은 북한산 자락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을 보고 나는 한눈에 반했다. '이런 곳이 서울에 있다니! 아니 여기가 서울이라니!' 대단지 아파트에는 초, 중, 고교가 모두 있었고, 아파트 사이사이 공간과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곳곳에 주민들을 위한 공용시설과 놀이터들도 만족스러웠다. 아파트 한편에 차를 세워두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잠시 놀게 하는 동안에도 놀이터에 인접한 숲에서 숲 내음이 느껴졌다. 테라스 하우스들도 곳곳에 눈이 띄었다.
아파트 상가에서 잠시 점심을 먹고, 둘러보다가 모델하우스가 눈에 띄었다. "한번 들어가 볼까?" 초등학교 바로 앞에 지어질 테라스 하우스였다. 4층으로 된 이 테라스 하우스는 1층은 넓은 테라스를 이용할 수 있었고, 4층은 옥상을 덤으로 가질 수 있었다. 옥상에 옥상 텃밭을 만들고 그네를 놓으면 근사한 옥상 정원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남은 빚을 청산한 우리의 가계 경제에도 합리적인 금액이었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집을 보고 온 우리는 마을을 한 바퀴 구경한 후, 송추 IC 쪽에서 하나 고등학교 방향을 지나고 있었다. '한옥 박물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온갖 박물관과 체험전에 최적화된 우리들은 바로, '가볼까?' 하며 골목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여기저기 분양 중이라는 팻말과 공사 중인 한옥 몇 채와 주택 몇 채가 눈에 띄었다. 각종 공사 차량들과 공사 자재들로 매우 어수선했다. 우리는 곧, 이곳이 SH에서 분양 중인 한옥 및 단독주택 부지라는 것을 알았다. 북한산이 병풍처럼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곳이었다. 호기심으로 부동산 팻말을 보고 연락을 했다. 마침 아저씨가 사무실에 계시다며 들르라고 하셨다. '한옥박물관'은 어느새 잊고, 우리는 부동산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이곳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16년 3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