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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Sep 08. 2021

01. 나는 왜 전원주택을 꿈꾸었나.

왜 단독 주택이어야만 했을까...

7살,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인천에서 서울 신림동으로 이사를 왔다. 앞마당에는 각종 꽃과 나무가 피어있고, 한쪽으로는 장독대가 묻혀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진입로 옆으로는 초록색 잔디가 깔려있었다. 그리고 현관 앞에는 '똘똘이'라 불리는 누런색 진돗개가 지키고 있었다. 똘똘이는 우리가 가까이 가면 꼬리를 치고 몸에 올라타 놀자고 짖어댔다. 가끔 현관이 잠겨 있을 때면, 다른 사람들이 세 들어 있는 반지하 단칸방으로 갈 수 있는 쪽대문을 통해 들어가 낮은 담을 넘어 우리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 생일 때는 친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생일잔치를 열고, 마당에서 숨바꼭질과 무궁화 꽃이 놀이를 했다. 모두가 마당이 있는 우리 집을 좋아했다. 괜스레 어깨가 으쓱했다. 우리 집 주위로 마당이 있는 집이 2-3채 있었다. 나머지는 마당이 없는 단독 주택들이었다.


 잔디밭 한쪽 곁에는 커다란 철봉 두 개가 있었다.  두 살 차이의 오빠와 나는 하릴없이 그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곤 했다. 그러다가 군대에서 휴가 나온 이십 대 초반의 주인집 아들(그땐 아저씨라고 불렀다)이 군복을 입은 채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향해 웃으며 아는 척해주면, 이상하게 가슴이 콩닥대고 얼굴이 빨개져서 얼른 철봉에서 내려와 딴 청을 하곤 했다.  비가 온 후에는 오빠와 나는 잔디밭 옆 장독대를 묻어놓은 흙 밭에서 지렁이 잡기 놀이를 했다. 그러다가 가끔 어디서 인지 생쥐도 나왔다. 생쥐는 우리의 손을 피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아났지만, 우리는 호수로 물을 뿌려대며 생쥐가 가는 곳마다 공격하며 쏘아 댔다. 곧 생쥐의 행방을 알 수 없어지면, 허탈해하며 지렁이 잡기 놀이도 시큰둥해져 집에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 주인집 할머니에게 장독대 흙 밭을 물이 질척이는 진흙밭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들키면, 어김없이 어여쁜 우리 엄마가 한바탕 핀잔을 들어야 했다. 초록 잔디가 돋아난 예쁜 잔디밭에 앉아 한참 소꿉장난을 할 때에도 주인집 할머니는 잔디 상하니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셨다. 그러면 나는 주인집 할머니가 외출하실 때를 틈타 잔디밭에 들어가 더 힘 있게 꼭꼭 잔디를 밟아 주었다. '이렇게 예쁘고 폭신한 잔디는 밟으라고 있는 거라고!'


 이년에 한 번씩 주인집 할머니가 엄마를 불러 전셋값을 더 올려달라고 할 때면, 엄마의 한 숨이 늘어가는 걸 느꼈다. 그렇다. 우리는 넓은 잔디 마당과 계절마다 꽃과 나무가 피는 그 전원주택 한 층에 전세살이 중이었다. 너른 잔디 마당과 장독대가 심긴 흙밭과 진돗개 똘똘이는 엄연히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집착 때문이었을까? 나는이때부터 이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잔디 마당이 있는 마당에 꽃과 나무를 심고, 커다란 반려견 한 마리를 키우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내게 전원주택을 꿈꾸게 한 또 한 가지는 드라마였다. 1997년 드라마 '프러포즈'였다. 하얀색 옷을 입은 배우 원빈이 자신의 반려견 그레이트 피레니즈와 함께 주인공인 배우 김희선의 묘령의 이웃집 남자로 등장한다. 초록 잔디 위에서 반려견과 반쯤 누워 휴식을 취하고 산책을 하는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이다음에 전원주택에 살면서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털이 긴 대형견을 키우겠다고 결심했다. 이왕이면 나의 반려견은 시베리안 허스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반려견이라기보다는 나를 지켜줄 멋진 남자 친구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멋진 그와 함께 하늘하늘한 시폰 원피스를 입고 동네를 산책하겠노라고 다짐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지금은 학원가로 유명한 중계동 은행사거리에 막 새 아파트가 대거 들어서고 있을 때였다. 그때 엄마와 택시를 타고 다니면 택시 아저씨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가 다 논, 밭이었는데, 대단지 아파트가 다 들어섰네요.' 하는 소리를 들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서로의 집에 놀러 다니면서 점점 번화해져 가는 은행사거리의 학원가와 맥도널드, 도서관을 누비면서 그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입시 공부를 끝으로 꿈에 그리던 대학에 들어갔다. 자유였다. 여대에 들어간 나는 한 주 걸러 한 번 미팅을 했고, 술을 마셨고, 클럽에 갔으며, 방탕한 생활을 1년간 이어갔다. 그리고 그 해 12월, 홍대 건축과 학생을 만났다. 어쩌다 보니 수능 점수에 맞추어 건축가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그는 건축과의 특성상, 자주 밤을 새우며 건축 모형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 했고, 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그 모형을 들고 와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정작 자신은 건축 설계에 소질이 없다고 토로하면서도 수업 시간에 배운 건축가와 건축물에 대해서 내게 이야기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건축'의 '건'자도 모르고, 홍대가 건축과로 유명한지 알턱이 없는 나는 그렇게 반 강제적으로 건축에 '건' 정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와 만나면서 막연히 어렸을 적부터 가지고 있던 그 꿈이 다시 꿈틀댔다.


‘나만의 집을 짓고 꾸미고 싶어. 내가 커피를 좋아하니까 집은 카페 같은 분위기였으면 좋겠어. 정원은 좀 넓었으면 좋겠어. 정원에서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워야 하니까... 시베리안 허스키가 마당에서 뛰어다닐 정도는 되어야겠지? '


......


'나도 나만의 집을 짓고 싶어. 내가 설계한... '  


그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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