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 캐스트 Acquired
스타벅스 한 줄 설명
스타벅스. 진출한 국가만 80여국이 넘고, 점포 수는 39000개다. 최근 수익은 360억 달러이고, 순이익은 41억 달러. 종사자는 45만 명. 한 번이라도 근로한 종업원 수로는 5백만 명. 은행을 뺨치는 돈을 굴리고 있기도 하다. 소비자가 스타벅스의 기프트 카드를 구매한 후 아직 사용하지 않은 금액만 170억 달러(24조 원)다.
스타벅스의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하워드 슐츠"를 빼놓을 수 없다. 팟캐스트 Acquired가 세 시간이 넘는 분량의 대담을 올렸다. 팟캐스트 진행자가 현재 미국사회에서는 스타벅스가 "당연한 미팅장소(Default Meeting Place)"가 되었다는 말을 한다. 이런 결과에는 슐츠의 공헌이 절대적이었다.
스타벅스의 시초
오리지널 스타벅스의 역사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시애틀이다. (우리나라의 스타벅스는 1999년에 이대 앞에 오픈한 1호점이 최초) 스타벅스는 제리 볼드윈, 제프 시겔, 고든 보우커 세 사람이 시애틀에 설립한 커피원두 도매점이 시초였다. 즉, 커피를 볶아서 다른 상점에 공급했지, 처음부터 커피를 내려 직접 고객들에게 제공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워드 슐츠는 1982년에 마케팅 디렉터로 스타벅스에 영입되었다. 그전에는 "제록스"라는 회사에서 워드 프로세서를 파는 영맨이었다. (박물관에 가면 볼만한 물건인데, 스크린 없는 전동 타자기 같은 것이다.)
슐츠는 에스프레소 커피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태리를 방문하면서 지금의 스타벅스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동네 곳곳에 있는 에스프레소 바가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는 모습에 영감을 얻고는 스타벅스의 비전을 그리게 된 것이다. 직장과 집 사이에서 사람들이 휴식하며 커피를 즐기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슐츠는 장인과의 일화를 처음으로 고백한다. 아내가 임신 6개월이었을 때, 장인 장모가 오하이오에서 찾아왔다. 장인은 사위에게 산책을 가자고 하고는 한마디 한다. "자네가 뭐를 하든 나는 그걸 존중하네. 하지만 그건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거 취미 아니야? 남자가 직장을 구해야지. 내 딸은 지금 임신 중이고, 일도 하는데 자네는 일을 안 하고 있네." 슐츠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지금이야 슐츠 같은 사람이 "스타트업 창업가" 같은 대우를 받지만, 그때는 택도 없는 소리였던 것이다. 아내에게 돌아와 장인과의 일을 고백하는데, 아내는 불같이 화를 내며 전적으로 남편 편을 들어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타벅스의 시작은 1987년
슐츠는 1987년 오리지널 스타벅스를 사게 된다. 사실 우리가 아는 스타벅스는 여기서부터가 진짜라고 봐야 할 것이다. 비전을 실현할 자금에 목말라 있던 슐츠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 빌 게이츠의 아버지였다. 슐츠는 스타벅스를 매입할 1.6백만 불이라는 돈이 없었는데, 빌 게이츠 시니어가 몇 마디 확인하고서는 선뜻 투자를 도와준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가문이 큰손이었다는 점을 처음 알았다.)
슐츠는 재밌게도, 기본부터 바꾸려는 시도로 시작한다. 바로 컵과 사이즈다. 먼저 컵이다. 그전까지 미국 매장에서 주로 쓰던 컵은 흰 스티로폼 컵이었다. (styrofoam 슐츠가 스타이로폼이라고 해서 뭔가 했는데 스티로폼이었다.) 당시엔 종이컵이라는 게 없으니, 뜨거운 물을 부으면 음료의 맛과 색깔까지 바꿔버렸던 부실한 스티로폼 컵 일색이었다. 뚜껑도 변변치 않았다. 그런 와중에 스타벅스는 새롭게 종이컵과 뚜껑을 들여온다. 슐츠는 카페에서 사용하는 언어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그란데, 벤티 즉, 우리가 아는 스타벅스의 음료 사이즈를 부르는 말을 독창적으로 고안한 것이다.
스타벅스의 성공 비결
스타벅스 역시 갑작스러운 확장과 경쟁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슐츠는 회사의 근본 가치와 미션을 고집하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슐츠가 처음부터 생각했던 기본, 스타벅스를 찾는 고객들에게 환대와 공동체적 감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슐츠는 스타벅스가 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가 되면서 수익만 추구하는 업체로 변해버리는 것을 늘 경계해 왔다고 말한다.
스타벅스에게 최악은 수익만 쫓는 공장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프랜차이즈로서 그저 똑같은 음료를 생산해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을 멀리해야 한다는 의미). 규모가 커지고 여기저기 프랜차이즈가 늘면서 복잡함도 커져만 가지요. 이 복잡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효율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비즈니스에서 여전히 중요한 것은 고객과 바리스타를 우선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좀 더 고양되는 것입니다. -슐츠
스타벅스 직원들을 파트너라고 부른다. 직원들과의 상생을 중시했던 슐츠였다. 기업공개를 앞두고 직원들에게 기본급의 14%를 스톡옵션으로 나누어 주었다. 기업과 직원이 공동체가 되는 순간이었다. 파트타임 직원들에게 건강 보험을 제공한 것도 스타벅스가 처음이었다. 슐츠 자신이 건강보험이 없던 가정에서 자랐다. 슐츠는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코스트코와의 전략적 협업도 빼놓을 수 없다. 스타벅스는 코스트코 매장에 원두를 넣기 시작한다. 스타벅스가 미국 코스트코 매장 곳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어 저변을 확대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성공요인이었다. 이를 계기로 매출과 수익이 급증한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메뉴의 개발도 당연히 스타벅스의 성공을 견인했다. 푸라푸치노가 대표적이다. 얼음을 갈아 커피와 섞고, 휘핑크림과 초콜릿 드리즐을 얹은 음료에 고객들이 열광했다. 푸라푸치노 하나로 수익의 7% 가까이를 끌어올렸다.
일본 진출은 스타벅스가 미국 밖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일본에는 도토루 커피라는 기존 브랜드가 성업 중이었다. 당시 이사회에서는 현지 현황을 잘 아는 이에게 분석을 맡겨보자고 했고, 그 결과 스타벅스의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결론이었다. 일본에서는 누구도 커피를 손에 들고 걸을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슐츠는 달랐다. 일본 진출을 밀어붙였고, 대성공이었다. 스타벅스 컵을 들고 돌아다니는 일본인들은 이제 쉽게 보게 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곤두박질에서 스타벅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업가치는 300억 달러에서 70억 달러로 급강하했다. 영업점 1000개 정도를 닫았다. 대량폐업과 대량해고 속에서 슐츠는 여러 지역에서 수많은 미팅을 가졌고, 가는 곳마다 눈물을 흘렸다. 스타벅스가 인수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슐츠가 마지막까지 붙잡은 것은 "휴머니티 humanity"였다. 여전히 사람이었던 것이다.
스타벅스의 모바일 앱 또한 신의 한 수였다. 식음료를 제공하는 업체가 모바일 앱을 런칭한 것은 스타벅스가 최초였다. 핸드폰으로 음료를 주문할 수 있게 되어 고객의 편의성이 증진되었다. 기프트 카드를 만들어 소비자들이 구입하여 선물하게 하고, 사용하지 않은 카드로 현금이 쌓이면서 유동성 또한 확 늘어났다. 다만, 최근들어 모바일앱으로 인해 고객과 바리스타 간 접점이 줄어드는 것에 대하여 슐츠는 우려가 크다.
마지막 한 줄
인상 깊었던 그의 마지막 멘트로 글을 정리해본다.
스타벅스가 단지 거래만 하는 곳이 되어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커피는 개인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커피를 제공하는 음료회사가 아닙니다. 스타벅스는 사람들을 서빙하는 커피회사입니다. (I don't want Starbucks to become transactional. Coffee is personal. We are not a beverage company serving coffee. We are a coffee company serving peo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