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발표된 가수 윤수일의 아파트가 로제의 아파트로 재탄생해 화제다. 이런 재건축 아파트도 없다. 40년 넘은 구축 아파트가 최신식 아파트로 탈바꿈 했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말춤의 폭발적인 유행을 생각나게 하는 전 세계적 확산이다. 싸이가 당시 스스로 밝혔듯 인기의 성공문법은 B급 정서다. 아파트와 말춤에서 고급스러운 정서를 느끼는 이는 없다. 아파트의 단순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비트는 이내 따라서 흥얼거리게 만든다.
작곡가 구스타브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태생도 음악도 다른 이들이 무슨 관계인가 싶지만 말러의 음악과 아파트는 유사점이 있다. 세기말 청중이 볼 때 말러의 교향곡 1번은 아파트 만큼이나 키치스러웠기 때문이다. 말러는 작곡가보다는 지휘자로서 역량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28세에 작곡한 첫 번째 교향곡을 초연했을 때 당시 반응은 혹평일색이었다.
당신 신문카툰을 보면 가운데에는 지휘자 말러가 있다. 주변에서는 온갖 동물이 짖고, 현 악기는 박살 나고, 관악기는 돌격 앞으로, 마지막으로 청중은 실신 중이다. 그럴 법도 한것이 점잖고 우아하게 차려입고 공연장에 왔더니 동요, 트로트(‘랜틀러’라는 민속음악), 군악대가 짬뽕되어 흘러나왔으니까 말이다.
아래 악보가 그 동요다. 음표를 따라가다 보면 귀에 익은 가락이다. 쟈끄 형제(Frere Jacques)라는 프랑스 동요인데, 미국에서는 Brother John,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서로 학교길에 만나면, 만나면~웃는 얼굴하고 인사 나눕시다. 얘들아 안녕~'하여 번안하고 있다.
이같이 말러는 기존의 음악문법을 깨뜨려 버렸다. 방랑으로 유명한 보헤미아 지역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난 그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배경이 통념(通念)을 거부하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닐까 싶다. 말러 1번의 부제는 ‘거인(Titan)’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이 먹구름처럼 몰려오다가도 이 모든 것을 극복하려는 듯 환희를 향한 갈망이 격정적으로 터져 나온다. 삶의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운명에 저항하는 거인의 모습이 말러 자신의 일생과 흡사하기도 하다.
말러 1번의 가장 큰 특징은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금관악기와 타악기의 폭주다. 특히 4악장에서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 승리로 질주하는 부분에서는 결승점을 향해 미칠 듯이 달리는 경주마와 같은 느낌을 준다. 아도르노가 말한 '개파'인데, 영어로는 breakthrough로 번역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쓰지도 않는 개파라는 단어보다는 '돌파나 약진' 같은 영어 번역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내 귀청을 때리지만은 않는다. 목가적인 풍경이 낭만적인 선율로 펼쳐져 이러한 서정성을 이유로 말러 1번을 찾는 이도 있다.
말러의 음악은 처음들을 때는 낯설고 시끄럽다가도 몇 번 들으면 계속하여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여러 말러공연을 관람하러 다녔다. 정명훈의 서울시향과 말러교향곡 전곡 사이클 시도로 유명했던 부천필 모두 좋았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공연은 베네수엘라 출신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1981-)의 예술의 전당 내한공연이었다. 그는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2008년 12월 12일 말러 1번을 지휘했다.
베네수엘라는 저소득으로 인한 청소년 마약과 매춘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터, 기적의 오케스트라를 배출한 ‘엘 시스테마(El Sistema)’를 도입하였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곳곳의 빈민 청소년들에게 클래식 악기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를 ‘엘 시스테마’라고 한다. 두다멜은 이 시스템이 낳은 천재다. 가난을 숙명으로 안고 태어나는 베네수엘라의 어린이들에게 음악, 악기, 그리고 오케스트라는 탈출구이자 희망의 다른 이름일 것이며, 그렇기에 그들의 음악적 성취가 한층 감동적이다.
28살의 구스타보(말러)가 작곡한 1번 교향곡을 공교롭게도 또 다른 28살의 구스타보(두다멜)가 그날 지휘했다. 두다멜은 통상의 오케스트라 보다 2배 이상의 인원을 편성했다. 무대는 차곡차곡 연주자들로 채워져 중간에 움직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당일 공연은 콘서트홀 전체에 벼락을 내렸다. 피나는 훈련으로 다져진 엘 시스테마의 정예들은 자신감으로 넘쳐났으며 지휘자와 한 몸이었다. 4악장 피날레가 끝나고 2분 넘게 정적이 흘렀다. 지휘자, 연주자, 관객 모두가 감전된 듯 꼼짝을 하지 않았다. 이른바 ‘(끝난 거) 안다 박수’도 없었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이 날 이후 다른 말러 1번 공연을 찾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음반을 열심히 듣고 있다. 서울시향의 신임 지휘자인 네덜란드 출신의 얍 반 "츠베덴"이 애플뮤직과 독점 발매한 말러 1번이다. 10월 18일 발매된 따끈따끈한 음원이다. 애플 스토어 명동에서 쇼케이스가 열렸다. 츠베덴과 부악장 웨인 린, 그리고 공간음향 녹음을 담당한 테크니션 최진, 총 3명이 와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들을수록 연주와 음향이 매력적이다. 두다멜만을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서울시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