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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Nov 07. 2024

브래들리 쿠퍼가 죽을 때까지 듣겠다는 음악

말러 교향곡 2번

사진: AP Photo


브래들리 쿠퍼를 좋아한다.

내게 그의 첫 영화는 "행오버"였다. "숙취"라는 뜻이다. 총각파티를 벌인 세명의 남자들이 거하게 한잔 걸치고 다음날 기억을 잃어버린다. 밤새 이들 진상들에게는 온갖 기상천외한 일들이 펼쳐진다. 한마디로 골 때리는 영화다. 이후 난 브래들리 쿠퍼를 코믹 배우로만 알았다.


나를 깜짝 놀랬켰던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영화 "스타 이즈 본"이었다. 쿠퍼는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록 스타 "잭슨 메인" 역을 맡는다. 술을 몇 잔 걸치고 들른 동네 게이 바에서 그는 밤무대 무명가수를 우연히 만나고 이내 사랑에 빠진다. "앨리"(레이디 가가)다. 애인의 놀라운 재능을 알아본 남자는 여자를 일약 스타로 만든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내리막길이었다. 인기도 시들해지고, 팬들의 박수와 함성도 사라져 버린 무대에서 내려와 퇴물 가수로 전락하는 씁쓸한 모습을 기막히게 연기했다. 마지막에 피아노를 치며 아내 앞에서 부르는 I'll never love again은 중년 남자의 눈가를 적실 정도로 뭉클했다. 2018년이었다.


미국 CBS에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 (Late Show with Stephen Colbert)"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내 또래에는 데이비드 레터맨 쇼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텐데, 콜베어는 그의 바통을 이어받아 진행자가 되었다. 화면 오른쪽에는 머그 컵이 한잔 놓여있고, 정장을 차려입은 콜베어가 셀럽을 불러 단둘이 이야기한다.


2022년 초였다.

레이트 쇼에 브래들리 쿠퍼가 출연했다. 쇼에는 밸런스 게임이 꼭 나온다. 콜베어 질문지(Colbert Questionert)다. 진행자는 출연한 셀럽들에게 15개의 질문을 던지고 즉시 대답할 것을 요구한다.  

레이트 쇼와 브래들리 쿠퍼

질문들은 뜬금없다. 브래들리 쿠퍼에게 물어본 질문도 이런 것들이다.


-당신에게 베스트 샌드위치는 뭔가요?

-창가 또는 복도 중 뭘 선호해요?

-스마트폰에서 가장 자주 쓰는 앱은 뭐?

-개, 고양이 중 뭐가 좋은지?


그런데 이런 질문이 있었다.

You get one song to listen to for the rest of your life, what is it?
(남은 인생 동안 한 곡만 들을 수 있어요. 뭐 들을 건가요?)

정작 브래들리 쿠퍼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말러라고? 그것도 어려운 2번 부활을? 그는 스타 이즈 본의 ost를 스스로 부를 만큼 노래에 진심이다. 그런 그가 밥 딜런도 아니고, 말러를 꼽다니.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이 나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는 감독이자 주연배우로서 6년 넘게 말러 2번에 미쳐 있었던 것이다. 말러 지휘의 대가인 레너드 번스타인의 전기영화를 찍으려 빙의가 되어 있었으니, 남은 인생 말러 2번만 듣겠다고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노릇이었다.

번스타인의 말러 2번 피날레 실황@영국 엘리 대성당

엘리 성당(Ely Cathedral)은 영국 런던에서 북쪽 캠브리지로 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마을 엘리에 있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으로 지은 이 성당은 연간 20만 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엘리 대성당은 "부활"이 연주되기에는 맞춤인 장소다. 석조성당 특유의 어두운 내부 톤이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하는 말러 2번을 연주하기에는 이상적이다. 기다란 네이브 또한 공연장으로서 청중들이 앉아 있기에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도 안에 들어서면 속도감 있게 솟구치는 고딕 특유의 천장이 우리 인간을 주눅들게 만들면서도 계속 시선은 윗쪽을 향하게 한다. 피날레 마지막 가사를 들으며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 본다고 상상해보자. 엄청난 감동이 밀려올 수 밖에 없다.

엘리 성당의 내외관 @브래태니카, 엘리 성당 공홈
내가 받은 날개를 달고 날아 오르리! 나는 살기 위해 죽으리라! 부활하리라, 내 영혼이여. 너는 일순간 다시 부활하리라! 그대가 받은 고통, 그것이 그대를 신에게 인도하리라!

합창단이 부르는 피날레 마지막 부분의 가사다. 1973년에 번스타인의 실황이 녹화되었고. 무려 50년이 지나 브래들리 쿠퍼가 같은 장소에서 번스타인을 연기했다. 야닉 네제 세갱이라는 걸출한 동시대인 지휘자가 있다. 그는 브래들리 쿠퍼의 지휘 연습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멘토이기도 했다. 세갱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브래들리 쿠퍼의 열정과 노력을 칭찬한다.  

번스타인으로 빙의한 브래들리 쿠퍼


이쯤 되면 말러 2번 교향곡이 과연 어떤 마력이 있길래 브래들리 쿠퍼마저도 이렇게 긴 시간 그리고 깊이도 빠져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최근 서울시향 음악감독 츠베덴 지휘자를 만났던 적이 있다. 츠베덴은 원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런 그가 지휘자로 전향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츠베덴의 고백은 놀랍게도 쿠퍼의 대답과 일치하는 점이 있었다.


번스타인이 지휘한 말러 2번 부활 실황 연주를 접하고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말러는 인간 감정의 롤러 코스터입니다. 번스타인이 표현한 그 강렬한 느낌이 지휘자에 도전하게 했어요. 꼭 한번 들어보세요.


서울시향이 2025년 시즌 패키지 예매 일정을 공개했다. 반갑게도 말러 2번 교향곡이 들어있다. 실황 녹음도 예정되어 있다. 말러 1번과 같이 애플 뮤직을 통해 단독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패키지 예매는 해본 적이 없고, 적은 돈도 아니다. 그래도 놓치면 후회할 것만 같은 공연이다. 손가락 빠른 딸이 예매 전쟁에서 한몫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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