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었다. 다른 선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콘클라베(Conclave)다. 교황 선거 절차를 부르는 말이다.
영화 콘클라베가 곧 국내 개봉한다. 미국에서는 지난 11월 15일 개봉했다. 물론, 글래디에이터 속편도 아니고, 관객수도 얼마 안 될 거다. 그래도 나 같은 궁금한 이가 있다. 영화가 궁금해 원작 소설 콘클라베를 읽었다. 그 여운과 감동이 영화를 소개하게 만든다.
원작자는 영국 출신의 로버트 해리스다. 기자와 칼럼니스트 출신인 그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스토리를 창작하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존 독일군 암호해독가의 이야기 "에니그마", 스탈린의 숨겨진 일기장 이야기 "아크엔젤"은 모두 영화화했다.
콘클라베는 교황이 서거하거나 퇴임하는 경우 후임 교황을 선출하는 절차를 말한다. 바티칸에 전 세계의 100명이 넘는 추기경들이 모여 투표를 한다. 일정 수 이상의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한다. 보통 5번 안에 선출되는 경우가 많지만, 길게는 열흘 넘게 지속되는 때도 있다. 투표를 했지만 선출에는 실패하는 경우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를, 교황이 선출되는 경우 흰 연기를 피운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앞 광장은 새로운 교황이 테라스에 나오는 장면을 보려는 사람들과 매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면 광장에는 탄식이, 흰 연기가 보이면 환호로 가득찬다.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로멜리 추기경이다. 영화에서는 잉글리시 페이션트로 유명한 "랄프 파인즈"가 연기했다. 로멜리(영화에서는 로렌스) 추기경은 콘클라베 전체 일정을 진행하는 단장 역할을 맡는다.
원작에서는 교황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추기경들의 권력암투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아데예미 추기경은 흑인이다.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교황이 되고 싶어 한다. 트랑블레 추기경은 단정한 짙은 은발에 날씬한 몸, 그리고 유머감각을 지녀 호감을 자아내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이다. 그는 권모술수의 일인자이기도 하다. 방송의 생리와 돈의 속성을 꿰뚫고 있다. 테데스코 추기경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대주교로 전통주의자이자 원리주의자이다. 강력한 교황후보다. 여기에 가장 젊은(67세) 베니테스 추기경이 깜짝 등장한다. 그는 의중 추기경이라고 해서, 교황이 비밀리에 임명한 필리핀 마닐라 출신의 추기경이었다. 주인공 로렌스 추기경은 정작 교황자리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는 콘클라베의 주관자로서 주님의 뜻을 시시각각 애써 찾으며 그에 맞는 교황을 추대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그도 마지막에는 선출 경쟁에 참여하게 되고 교황을 꿈꾼다. 영화라고 다르진 않을 것이다.
원작에서 감동스러운 장면이 몇 있는데, 스포일러가 될 테니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초반의 한 장면은 소개한다. 교황이 서거하고 나서 로렌스 추기경(랄프 파인즈)은 미사를 집전하게 된다. 독서자가 성경을 읽고 나서 그의 강론이 시작된다. 추기경단 전원은 반원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고 그 주변에는 수녀들과 바티칸의 종사자들이 앉아 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처음에는 그도 기계적으로 읽어 내려갔다.
"이제 추기경들의 영적 고민과 더불어 새로이 교황을 점지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이 시간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약속을 기억합시다."
진부한 표현과 상투적인 문장들로 가득 찬 강론이었다.
놀랍게도 순간 그는 미리 써온 원고에서 눈을 떼어 고개를 들고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잠시 마음속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즉흥 강론을 하는 것이다.
원문을 실어본다.
“My brothers and sisters, in the course of a long life in the service of our Mother the Church, let me tell you that the one sin I have come to fear more than any other is certainty. Certainty is the great enemy of unity. Certainty is the deadly enemy of tolerance. Even Christ was not certain at the end. 'Eli Eli, lama sabachtani?' He cried out in His agony at the ninth hour on the cross.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Our faith is a living thing precisely because it walks hand in hand with doubt. If there was only certainty, and if there was no doubt, there would be no mystery, and therefore no need for faith.”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 교회에 봉사하는 동안,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종국에서 확신을 두려워하시지 않았던가요? '주여,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 십자가에서 9시간을 매달리신 후 고통 속에서 그렇게 외쳤죠. 우리 신앙이 살아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신앙도 필요가 없겠죠."
그러고 나서는 의심하는 교황을 보내주십사 주님께 기도하자고 한다.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고 또 실천하는 교황을 주십사 기도하자고 끝맺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한대 맞은 듯 크게 놀라면서도 천주교 신자로서 감동했다. 나만이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는 확신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얼마나 많은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가? 새삼 깨닫기 때문이다.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는 감독이 "서부전선 이상 없다"로 이미 검증된 에드바르트 베르거이기도 하지만, 랄프 파인즈부터, 교황 후보로 등장하는 여러 명배우들(스탠리 투치, 존 리스고)의 연기가 불꽃을 튀길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삭막했을지도 모르는 당신의 마음을 적셔줄 대사들이 극장에 울려퍼질 것이다. 아름다운 바티칸의 풍경,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그린 필생의 역작,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는 덤이다. 원작에서는 결말이 너무 나가버렸는데,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