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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May 31. 2024

슈슈와 뭉게

반려견과의 만남과 이별

"시츄가 새끼를 두 마리 낳았어. 한 마리, 데려갈 생각 있어? 요즘 강아지들 때문에 집안이 엉망이야. 한 마리 꼭 좀 데려가."


회사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침 아이들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던 차였다. 이 얘기를 했던 걸 잊지 않고 있다 연락을 주셨다.


녀석을 데리러 갔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주말 어느 날 슈슈 어미가 살던 단지에 차를 대놓고 기다렸다. 녀석이 나왔다. 빨간색 구두 상자에 흰 타월이 깔려있고 어른 주먹 두 개 정도 합친 크기의 시츄가 꼬물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탐스럽고 부드러운 털이 일품이었다. 수컷이었다.  


이름은 "슈슈"라고 아내가 지었다. 불어로 양배추란 뜻이다. 털을 한 번도 안 깎아서 눈이 털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런 생김이 양배추 같아서 붙였나 보다. 그날 이후 슈슈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집에 온 날

강아지를 처음 키워보는 우리였다. 좌충우돌이 당연히 많았다. 내가 첫 산책을 데리고 나갔던 날이었다. 목줄을 채우고 2층 아파트 현관 계단을 내려가는데 슈슈가 꼼짝을 안 하는 것이었다. 집 앞은 놀이터였는데, 안고서 나갔더니, 또 바닥에 착 달라붙어 꼼짝을 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버럭 화를 내면서 억지로 놀이터 여기저기를 끌고 다녔다. 슈슈는 어찌나 힘을 주어 저항했는지 나중에는 발바닥에 피가 날 지경이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누구에게나 처음은 낯설고 두렵다.


바깥세상이 무섭고 산책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아서 어리둥절한 슈슈였다. 내가 처음부터 무리한 요구를 했던 것이었다. 한번은 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여기저기 몰래 볼일을 보던 슈슈를 혼내다가 냉장고 위에 올려놓은 적도 있었다. 녀석도 잘못한 것을 알기에 고개를 푹 숙이고 호통치는 내 눈치를 봤다.


'나에겐 시간이 필요해요.'


말 못 하는 슈슈에게 가장 간절한 한 마디 아니었을까?


슈슈는 나를 언제나 사랑해 주었다. 퇴근 후 2층인 집까지 몇 개 안 되는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그러면 내 발걸음인 줄 용케 알아챈 슈슈가 다다다다 뛰기 시작한다. ”왈왈” 짖어대며 현관문으로 달려오는 게 훤히 보였다. 역시나 집에 들어서면 내 품에 온몸을 던져 뛰어들었다. 안아주면 내 얼굴을 미친 듯이 핥았다.


'주인님, 내가 하루종일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요?'


마치 그러는 것만 같았다. 슈슈의 사랑은 그렇게 늘 무조건이었다. 녀석은 차도남이기도 했다. 내가 기분이 좋아 계속해서 이뻐해 주면 슬그머니 내 손을 벗어나 무심하게 전용 방석에 올라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흥, 평소에 잘해줘야지요.쳇!‘

그랬던 걸까?


"너에게 배운 예를 들면 고구마를 대하는 자세"라는 책이 있다. 필명 "예예"라는 작가의 책이다. 작가는 본인이 일러스트레이터다. "뭉게"라는 흰 말티즈를 반려견으로 맞이하면서 그 녀석과의 시간을 책에 녹여냈다. 작가의 뭉게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다.


"우리 둘은 사랑하게 될 운명이었을 거야. 날 단숨에 알아보고 그렇게 찾아온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는 만나자마다 동그란 두 눈을 맞추고, 축축한 코를 기분 좋게 벌름거리며 사랑이 가득한 뽀뽀를 해 줄 리가. 나를 이렇게 가득 사랑해 줄 리가."

  

급기야 저자는 내 수명 10년을 줄 테니 뭉게 너는 5년만 더 살아달라는 간절한 외침을 건넨다. 그럼에도 뭉게는 2024년 1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슈슈와의 이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데리고 온 지 일 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 나를 포함한 온 가족이 미국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이사 가는 미국의 아파트가 반려동물 금지였다. 수소문 끝에 내 고등학교 동창에게 슈슈를 맡기게 되었다.


세월은 그새 10년이 흘렀다. 슈슈를 맡긴 동창을 얼마 전 만났다. 애가 넷이나 되는 집이니 사랑을 듬뿍 받았을 것이다. 조금 안심이 되는 대목이었다. 슈슈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1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슈슈는 초로의 강아지가 되어 있었다. 내 기억 속 슈슈는 에너지가 넘치는 강아지였는데 말이다. 요즘과 같은 일 년에 몇 번 없을 것만 같은 날, 슈슈를 포함한 온 가족이 나들이를 했더랬다. 슈슈는 초등학생이었던 큰 녀석,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 녀석 그리고 나와 함께 달리기를 했다. 일등은 매번 슈슈 몫이었다.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었다.

그날의 슈슈

그랬던 녀석이 주름과 윤기 없는 털이 가득한 얼굴로 핸드폰 카메라 화면을 외면하고 있었다. 다 귀찮다는 고갯짓으로. 슈슈를 지금 다시 만나면 이 녀석이 나를 기억하긴 할까? 아들은 지금도 핸드폰 배경화면을 슈슈로 쓴다. 거실 바닥에 앉아 자기를 쳐다보는 사진으로 말이다.


"아들, 슈슈 만나러 한번 가볼까?"

"싫어"


피천득의 수필 인연의 마지막이 떠오른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뭉게 만큼이나 슈슈를 사랑했던 아들이다. 아마도 슈슈를 다시 마주한 뒤의 감정이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슈슈! 내 품에 뛰어들던 너의 활기와 온기, 너와 함께한 수많은 산책길들, 너의 신비로우면서도 맑은 눈망울과 한없이 부드러운 털, 너의 모든 흔적들이 행복한 추억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다. 짧았던 시간이지만, 고마워 그리고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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