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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는 아첨을 좋아하지만, 아첨꾼을 신뢰할까?

2025-02-03 FT

by 스티뷴

"직장 내 아첨꾼은 언제나 존재한다. (The office sycophant will always be with us)"


Financial Times의 칼럼니스트 "필리타 클락 (Pilita Clark)"의 글을 좋아한다고 했다. Business Life 섹션을 기고하는데, 오늘 기사 제목이 눈길을 확 끈다.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한번쯤은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아첨꾼들 때문에 진절머리가 나본 경험이 있을 거다. 일은 안 하고, 업무능력도 떨어지면서 하루종일 상사 생각만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상사의 심기경호에 올인하는 사람들 말이다.


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칼럼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기업 CEO들이 나눈 대화를 예로 든다. 2가지 반대되는 사례를 가지고 말이다. 먼저, 초대형 미국 은행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CEO인 "브라이언 모이니핸(Brian Moynihan)"은 마이크를 잡는다. 트럼프가 다보스를 처음 방문했던 5년 전을 상기시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다.


"당시 우리는 전 세계 150명의 CEO들과 함께 걸으며, 대통령님과 정책에 대해 논의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경제 성장을 유지할 방안을 묻는 순간, 분위기는 급변했다. 트럼프는 특유의 두서없는 답변을 하던 중 갑자기 모이니핸의 은행이 보수적인 고객을 배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당신들이 하는 일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는 즉석에서 이렇게 말하며, 즉각 시정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세련된 아첨꾼은 트럼프의 정책을 긍정적으로 언급하며 친근한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지만, 오히려 트럼프의 예상치 못한 공개 질책을 받은 것이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또 다른 거대 은행인 "산탄데르"의 "아나 보틴(Ana Botin)"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님께서는 제 패널 동료들만큼 저를 잘 아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은행이 얼마나 큰지 강조하며, "우리 은행의 고객 수는 1억 7천만 명입니다. 제 친구 브라이언(모이니핸)이나 제이미(다이먼) 보다 많죠." 이 말에 좌중은 웃음을 터뜨렸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고 나서 보틴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통령님께서는 규제를 완화하고 관료주의를 줄이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목표를 얼마나 빠르게 달성하실 계획이십니까?"


이에, 트럼프는 그녀의 은행을 잘 알고 있다며 칭찬을 보냈다. "당신은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물론 변덕스러운 트럼프가 언제든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있지만, 보틴의 절제된 독립적인 태도는 아부 없이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는 뉴욕의 패션 잡지 <런웨이(Runway)>에서 일하게 된 신입 직원 앤디(앤 해서웨이)가, 유명한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메릴 스트립) 밑에서 혹독한 직장 생활을 겪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앤디는 저널리즘을 꿈꾸는 촉망받는 신입이지만, 패션에 관심도 없고, 아첨하는 것도 싫어한다. 상사 미란다는 냉정하고 무자비한 보스로, 부하 직원들에게 불가능한 수준의 업무를 요구한다. 한편, 동료인 에밀리(에밀리 블런트)는 미란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아첨을 하며 헌신적으로 일하는 캐릭터다.


영화는 직장 내 권력관계, 아첨, 그리고 생존 전략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재밌게 들여다보는 수작이다. 미란다에게 충성하는 직원들은 그녀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며, 그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온갖 아첨을 한다. 에밀리가 대표적이다. 상사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의 건강과 사생활까지 희생하면서 말이다.


그런 에밀리를 보며 앤디도 살아남기 위해 자신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패션 감각을 익히고, 업무 태도를 바꾸며, 아첨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자신의 본래 가치관을 잃어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커리어와 인간적인 삶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 끝에,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는 길을 택한다.


재밌는 것은 아첨과 충성심은 성공의 열쇠가 될 수도 있지만,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란다에게 헌신했던 에밀리는 결국 앤디에게 자리를 빼앗긴다.


권력자들은 아첨을 즐길 수도 있지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는 사람을 더 인정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리더도 사람이다. 아첨에 흔들릴 수 있다. 내가 모시던 상사도 편한 자리에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구 알지? 그 친구 아부를 참 잘해. 지금 나한테 아부하고 있다는 게 뻔히 보여. 그런데 그게 싫지는 않더라고."


그러나 칼럼은 과도한 아부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클락은 역사적으로도 권력자들에게 아첨하며 주변을 무시했던 인물들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경고하며,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의 조롱 섞인 별명인 Henry Ass-Kissinger를 예로 든다.


결과적으로, 아첨이 단기적으로는 유용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아 반가웠다. 그러니 아첨의 기술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낭중지추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주머니 속의 송곳은 때가되면 드러나는 법이다.


사진은 영화 국내 개봉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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