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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Jul 16. 2023

투르 드 프랑스: 과몰입 유발 넷플릭스 시리즈

넷플릭스에 "투르 드 프랑스"를 다룬 8편짜리 시리즈가 올라왔다. 자전거를 즐겨 타다 보니 별생각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이건 정말이지 근래 본 시리즈 중 최고다. 오징어 게임에 필적하는 몰입감이라고 하면 과장 일려나. 그만큼 손에 땀을 쥐며, 손뼉 쳐가며, 때로는 환호성을 질러가며 보았다.


아내는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밖에서 자전거 타고 돌아 다니는 것도 모자라 집에서도 자전거 타령이냐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이 인간이 왜 저러나 싶었는지 옆에서 보기 시작하더니 나하고 같이 과몰입하기 시작했다. “여보, 다음편 빨리 틀어봐.“ 이런 주문이었다. 아내는 자전거를 전혀 타지 않는다.


투르 드 프랑스가 무엇인지 잠시 살펴보자. 불어로 Tour de France다. 프랑스를 일주하는 자전거 대회다. 3주 정도 프랑스를 일주하고 마지막 피니시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에서 치른다. 시리즈는 2022년의 투르 드 프랑스 대회를 되돌아본다. 매일매일의 대회를 불어로는 에따프(etape, 영어로는 스테이지)라고 한다. 3,328 km의 거리를 21개의 에따프로 나누어 대회를 치렀다. 각 스테이지별로는 우승자를 가린다. 그리고 스테이지 기록을 합산해서 가장 기록이 짧은 선수가 대회 종합 우승을 차지한다. 1등을 하는 친구는 노란색 상의(저지라고 한다.)를 입고 출전한다. 경기 중에 유일하게 입을 수 있는 특권이다.

경기는 대부분 이런 산악 등반과 하강이다. 하루에 보통 150킬로를 완주해야 한다. 그것도 3주 내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출발해서 파리에서 끝나는 경기 루트

사실 투르 드 프랑스의 실제 경기 중계는 지루할 수 있다. 금년 2023년 경기도 지금 치러지고 있다. 3주 가까이 최소한 4시간 되는 라이브 중계를 매일 같이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마라톤 경주를 3주간 계속 시청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넷플릭스의 에피소드는 임팩트 있게 구성되어 있다. 인기 많았던 F1 제작진들이 고스란히 투르 드 프랑스편을 만들었다고 한다. 매일매일의 개별 스테이지 공략은 하나의 전투다. 제작진은 팀 버스 안에서의 전략회의, 호텔방에서의 선수들의 모습, 가족들과의 통화 장면 등 은밀한 순간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개별 선수들과 감독들도 계속해서 인터뷰한다. 팀 성적을 우선시하는 감독의 생각과 자기가 돋보이고 싶은 선수들의 생각은 어떻게 불꽃을 튀기는지, 다른 팀들과의 라이벌 관계, 타는 듯한 목마름과 포기하고 싶은 끝없는 오르막 길, 경기에서의 긴장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승리의 환희와 패배라는 고통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1편은 "파비오 야콥슨"이라는 선수의 모습부터 시작된다. 그는 20년에 경기 중 사고로 엄청난 부상을 당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중 장애물에 부딪혀 허공에 한참 뜬 채 공중제비를 하고 땅에 처박혔다. 그가 선수로 되돌아 오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얼굴에는 수술 자국으로 흉터가 가득한 파비오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나타난다.


“원점에서 아니 그보다 더 아래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을 알게 되었어요. 앞날을 백퍼센트 아는 건 불가능해요. 일단 출발선에 다시 서야죠” 그의 컴백 이유다.


선수들의 속도는 어마무시하다. 선두그룹을 “펠로통”이라고 한다. 군부대 단위인 소대라는 뜻이다. 드론에서 촬영한 모습으로는 펠로통의 속도를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근접 촬영 장면을 보면 평속 45-50 킬로는 그냥 찍는다. 실제로 내 앞에서 보면 그냥 휙~휙~지나간다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나는 평지에서 힘껏 달려도 30을 겨우 넘기는 정도다. 투르 드 프랑스의 각 스테이지는 산악 클라임이 절대다수로 많은데, 다운힐에서 선수들의 최고속도는 시속 100킬로를 훌쩍 넘긴다. 선수들은 브레이크를 잡지도 않고 그냥 수직강하 한다. 초를 다투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순간의 실수나 돌부리로도 비명횡사다. 사고 장면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의도적으로 삽입한 측면도 있겠지만, 보는 이도 움찔하게 된다. 저거... 죽지는 않았나? 싶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기에 중독성이 있는 것이다. 자전거 대회라는 스포츠에 대한 이해도가 높건 낮건 충분히 몰입해서 즐길 수 있는 요소다.


2022년의 종합우승은 "윰보-비스마" 팀의 "요나스 빙에고르(덴마크)"가 차지했다. 빙에고르는 덴마크 시골공장에서 얼음박스에 생선을 포장하던 촌뜨기였다. 인간극장에 나올 법한 승리다. 얼굴은 왜그리 착한 송아지처럼 생겼는지 원. 그는 마지막 스테이지에서도 우승할 수 있었지만, 팀 동료 "아웃 반 아트(벨기에)"에게 양보한다. 스테이지 우승을 할 수 있었음에도 속도를 일부러 줄이고 피니시 라인을 들어온 것이다. 먼저 경기를 끝낸 반 아트는 중계를 보다가 빙에고르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눈물을 보인다. 그리고 서로가 진한 포옹을 한다. 투르 드 프랑스 경기가 팀 플레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선수들의 스포츠맨십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가장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는 4화다. 2022년 투르 드 프랑스의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는 "타데이 포가차르(슬로베니아)"였다. 아랍에미레이트 팀 소속이다. 오일 머니로 두둑히 스폰서십을 제공하는 팀이기도 하다. 4화에서는 노란색 저지를 입은 1등 포가차르를 팀 공략으로 제치는 장면이 나온다. 윰보 비스마 팀 선수들이 앞뒤로 붙어 달리며 포가차르를 번갈아 공격한 것이다. 그 결과로 그를 지쳐 떨어져 나가게 만들었다. 마치 세렝게티에서의 맹수들의 사냥을 보는 듯 했다. 이 승부는 대회의 터닝 포인트였다. 빙에고르가 우승을 따내고 노란 저지를 가져왔다. 내가 윰보 비스마 팀의 팬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파리 샹젤리제에서의 마지막 경주는 영화의 한 장면이나 다름이 없다. 각 팀에는 스프린터들이 있다. 이 선수들은 단거리 경주에 특화되어 있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다. 무조건 풀 파워로 달리는 것이다. 선수들은 피날레 우승을 위해 젖먹던 힘까지 쥐어짠다. 


반전의 피니시 스테이지 우승장면은 직접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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