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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Jun 26. 2023

발표가 죽기보다 싫은 당신을 위한 시크릿

미국 초등학교와 TED가 주는 아이디어

딸은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에 간 두 번째 해에는 이사를 해서 학교가 바뀌었는데, 전학간지 얼마 안되서였다. 초청장이 날라왔는데, 학생들의 발표행사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역사 수업이었다. 그날 하루는 학년 전체 학생들이 각자 선택한 역사 속의 인물이 되어보는 것이었다. 옷도 그럴싸하게 맞춰 입는다. 딸아이는 평범하게 셔츠에 타이 차림이었지만, 제대로 플렉스 한 아이들도 많았다. 링컨으로 분장한 아이는 얼굴에 수염도 붙이고, 위로 긴 중절모를 쓰고 양복도 갖춰 입었다. 빌려온 티가 대번에 났지만 말이다. 시간을 100년 전으로 되돌린 듯한 낡은 드레스를 입고 분장을 한 아이도 있었다. 


학생들 앞에는 호텔 체크인 데스크에 가면 보게 되는 벨이 하나씩 놓여있다. 학부모들은 돌아다니다가 흥미로운 인물이 보이면 그 앞에 서서 '딩동'하고 벨을 누른다. 그럼 마네킹처럼 서 있던 아이는 그 인물에 대하여 큰 소리로 읊는다. 앵무새처럼 톤의 변화도 없이 외운 대로만 반복하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팔을 휘이저는 등 동작을 섞고, 말투도 어른스럽게 흉내 내며 제법 열심히 준비한 아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사투리를 흉내 내는 아이도 있었다. 


내성적인 아이들이나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미국이라고 없었겠는가? 하지만 잘하건 못하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고, 행사를 즐긴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날 학부모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아이들에게는 나중에 상을 주었다. 신선하기 이를데 없는 경험이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발표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체험학습이 반복되니 자연스럽게 미국 학생들은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TED를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미국에 기반을 둔 ‘TED 콘퍼런스’의 TED는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약자다. 지식형 콘서트를 표방한다. 최신 기술은 모두가 흥미로워 할 수 있지만, 사실 테드가 다루는 대부분의 분야는 따분할 수 있다. 교육, 철학, 사회과학이나 의학을 주제로 한 내용을 꽤 깊이 있게 소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테드가 인기 있는 것은 '쇼 비즈니스'가 무엇인지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테드의 연사들은 연단의 귀퉁이에 있는 포디엄에 서지 않는다. 보통 콘퍼런스하면 정면에는 커다란 슬라이드가 올라와 있고, 연사는 한쪽 포디엄에 서서 가져온 스크립트를 보고 읽는다. 이 경우 청중들은, 


'어라? 발표자가 그냥 슬라이드를 보고 읽네? 내가 그냥 슬라이드 읽는 게 저 사람이 말하는 거보다 더 빠르겠다. 쯧쯧!' 하며, 콘퍼런스에 대한 흥미를 읽어버리게 마련이다.

테드에서는 그런 장면을 볼 수가 없다. 연사는 무대 한가운데로 나와 청중들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한다. 시간은 최대 18분이다. 이 시간을 넘어가면 청중들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초대되는 강연자들은 유명 인사와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중에는 빌 클린턴, 앨 고어, 모니카 르윈스키, 노벨상 수상자들도 있지만, 전혀 생소한 사람들도 많다. 


한가지 더, 테드에는 이야기가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연사는 남 얘기만 하고 끝내지 않는다. 자신이 체험한 경험이 꼭 나온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현장에 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다음과 같은 오마쥬를 바쳤다. 


″어렸을 때 제가 영화 공부할 때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을 하신 분이 있었는데요. 바로 여기 있는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콜세지가 한 말이었습니다.” 


그렇다. 청중들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연사의 내밀한 본인 이야기 말이다. 바로 그것이 청중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호소력과 직결된다는 것을 테드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발표가 죽기보다 싫은 사람들이 많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자리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 생각만해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왠만하면 남이 대신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야 하는 상황이 분명 닥친다. 어서 빨리 때워버리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기왕 하는거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발표를 잘하는 시크릿은 무엇일까?

.

.

.

미안하다. 그런 것은 없다. 당신의 "연습"만이 조금 더 낫게 도와준다. 그런 거 말고 다른 비법은 없냐고? 불행히도 없는 것 같다. 


딸은 발표를 앞두고 초긴장 상태였다.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데, 동급생도 아니고 미국 학부모들 앞에서 발표한다고? 나라도 움츠러들겠다. 자기 방에서 '중얼중얼, 중얼중얼' 혼자 벽 보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지나가는 학부모를 내가 맡고, 엄마는 촬영을 하고, 아이는 발표를 하는 시뮬레이션을 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해했으나, 여러 번 반복하니 아이도 자신감이 붙었는지 안정이 되었다. 그날의 발표 영상을 다시 꺼내보니, 지금 봐도 기특하다. 비록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잘 해냈다. 


스티브 잡스의 신제품 발표 동영상을 안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청중들이 아이폰 출시에 너도 나도 환호하는 그 영상 말이다. 잡스가 그날 아침에 그 발표를 준비했을까? 아니다. 잡스는 발표 시나리오를 수없이 고치고 또 고쳤다. 심지어 중간에 물 먹는 타이밍까지 계산했다. 테드의 연사들은 어떤가? 그들은 저절로 발표를 잘하게 된 것인가? 아니다. 피나는 연습을 한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내 제안을 따라해보자. 


어렵지 않다. 핸드폰으로 셀프 동영상을 찍어보는 것이다. 


뭐라고 하는지 잘 안들리는 당신의 목소리, 우물쭈물하는 발성, 생각보다 훨씬 길어져 버린 발표 시간, 어디를 보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불안한 시선, 다리를 덜덜덜 떠는 습관 등 고칠 것들이 여기저기서 드러날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보고 코멘트를 해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당신만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첨가해 보라. 핸드폰을 뒤지고 있던 청중들이 고개를 들고, 그들의 눈이 순간 반짝일 것이다. 


장담한다. 연습으로 당신의 발표는 이전 보다 훨씬 나아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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