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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Jun 21. 2023

킬러 문항

아이가 고3이다. 며칠 전 터진 킬러 문항에 대한 논란으로 아이는 멘붕이다. 수능은 오늘부로 148일 밖에 안 남았다. 수능을 주관해야 할 평가원장은 갑자기 그만두어 버렸다. 얼마 남지도 않은 수능시험을 총괄해야 할 이가 무책임하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사임의 압력이 있었다는 것일 지도.


"킬러 문항"이 화제다. 수능의 킬러 문항은 시험의 변별력을 높이는 문제다. 국어 수능시험의 킬러 문항을 하나 가져와봤다. 유명한 BIS 비율과 관련한 문제다. 나는 대학원에서 국제법으로 석사를 받았으며, 현재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고 BIS 비율의 변천에 대하여도 지식이 있다. 시험이니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 것이고 기초지식이 나에게 이미 있으니 한번 읽어보고 푸는 것으로 했다.


결과는?


반 밖에 못 맞췄다.


킬러 문항의 칼침을 맞은 학생의 대처는 두 가지 일 것 같다. 풀어서 맞추든가, 아니면 찍고 다른 문제에 집중하든가. 그런데 이 킬러 문항을 날려버리면 좋은 등급(1-2등급) 받기가 어렵다. 일정 등급 이상이 나와줘야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지원할 수 있다. 그러니 상위권 아이들은 꼭 맞춰야 하는 문제들이다. 풀어서 맞추기 매우 어렵다는 것은 위의 사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Killer. 사람을 죽이는 킬러. 이 무시무시한 말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본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 무기징역,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것이 우리의 형법이다. 킬러는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사람을 죽인다. 고의로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악의도 명백하다. 그의 살인의 댓가는 돈이다.


우리 입시에서 킬러 문항을 사주한 자들은 누구인가? 학교에서 킬러 문항 대처가 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이러한 기대가 무너진 지는 오래다. 우리 교육 시스템에서 이제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는 그냥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번 일에 대치동 일타 강사들이 '학생들만 불쌍하다'며 들고 일어날 일은 더더욱 아니다. "킬러"의 "칼 안 맞는 비법"이 있다며 그 큰돈을 벌어온 것 아닌가? 그들이 수출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이들도 아닌데 수십 수백억원을 번다는 점 자체가 코미디다. 기울어도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증거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 자체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킬러 문항이 이렇게 문제가 있으니 앞으로 이렇게 바로잡겠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그 적용도 내년 수능으로 했어야 했다. 교육 백년지계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지 않은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교육정책의 변화에 학부모와 학생들의 피로감은 극심하다. 학벌 중시의 우리 문화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보완이 없이는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희생은 학생들과 학부모들만 오롯이 져야 한다. 일말의 기대를 해보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건데 큰 기대는 하지 못하겠다.


내 아이가 무사히 입시를 마치기를 기도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해줄게 없다는 점이 그저 미안하다.


 

참고로, 킬러가 좋은 표현이 아니긴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다. "How to Give a Killer Presentation"이라는 제목의 글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도 올라와있다. "남들과 다르게 끝내주는 발표를 하는 방법" 정도로 번역될 수 있으니, 변별력이라는 의미로 쓰는 것이 자극적이긴 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콜린스 코빌드 사전에는 'something devastating, difficult, hard to cope with, etc'라고 정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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