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감의 예술

신춘문예

by toddted

시가 읽고 싶어 서점에 갔다. 2017 신춘문예 당선집을 야심차게 골랐으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간으로 가득차 갈 곳을 잃었다.


'기성 시집이나 보자'


황인찬, 한강, TS 엘리엇, 이병률 이런 이름들은 낯익었지만 글은 낯설었다. 황인찬은 내가 좋아하는 아주 예쁜 시를 쓴 시인인데, '구관조 씻기기'에서는 찾지 못했다.


사실은 내 상태가 영 별로였다. 증후군이라 부를만한 만성 피로에, 요즘엔 사람이 가득찬 곳에 있으면 종종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낀다. 특히나 무색무취의 생활인들 사이에 섞여있을 땐 더욱 그렇다. 페이지 넘기는 소리, 조용히 하려 애써서 더 신경쓰이는 통화소리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음을 실시간으로 증명해준다.


최악은 출퇴근 시간의 9호선 급행열차인데, 땀냄새 믹스쳐의 그 알싸한 향은 표정을 찡그리기도 모호하고 흡입하기도 애매한 impression을 갖고 있다. 그러다 가끔은 공황이란 게 이런 건가 싶을 때도 있다.


'앞으론 막히더라도 차를 가지고 다녀야지'


아무튼 윤동주 시집을 골랐다. 그게 제일 좋았다. 나는 한자어를 좋아한다. 그 빛바랜 노란 종이같은 어감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과거는 미화되기에 나의 감정도 미화된다.


8시가 다 되어 9호선 김포공항행 급행열차를 탔다. 오늘도 생활인 디퓨저는 모호한 impression을 남겼으나 확실히 좋지는 않다. 그러다 마시멜로 실험이 생각났다. 성공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 중 가장 정확한 게 자기 조절능력이라고 했다. 15분을 기다려 마시멜로 2개를 먹은 아이들은 평균 연봉이 높았다.


'참아야 한다'


역시 급행을 타든 돈을 많이 벌든 남보다 앞서려면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아마 이 칸에 탄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참고 있겠지. 몇몇은 심지어 눈을 감고 있는데도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다들 고생 많았다고 그래도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성공의 끝은 사회 공헌이라는데, 이해 안 되던 그 말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나의 목적지는 가양역이지만 갑자기 김포공항까지 가고 싶어졌다. 아니 기왕이면 인천공항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