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는 ‘소화제’라는 건 내 삶에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뭐든 먹으면 소화가 너무 잘 되는 게 오히려 탈이었는데 요즘 들어 종종 소화가 잘 안 된다.
아빠는 젊은 시절부터 위가 안 좋으셨다.
나에게 사진처럼 남아 있는 아빠의 모습이 있다.
난닝구를 입으시고 알루미늄 통 속에 들어있는 작은 스푼으로 노르모산을 드시는 모습이다.
그게 아마 우리 아빠 40대, 내가 열 살 즈음 때부터니까 우리 아빠의 삶은 노루모산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연스레 노루모산은 나에게 ‘소화제’라는 단어의
동의어 정도로 여겨졌다.
아빠가 거의 40년을 드신 약인데 별다른 부작용이 없으셨기에 나는 그 약에 대해 일종의 신뢰 같은 것이 생겼다.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평소에 내가 먹던 간보다 더 자극적인 엄마의 반찬들을 먹고 또 과식을 하다 보니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도 잘 안 되는 느낌 즉 복부팽만감이 느껴졌다.
아빠의 약상자를 찾았다.
이제 아빠의 노루모산은 더 이상 알루미늄 통도 아니다. 휴대하기 편한 1회용 스틱 스타일이다.
거기엔 노루모산이 3갑이나 있었다.
아빠의 노루모산을 먹었다. 속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한국에서 올 때 상비약용으로 1갑을 가져왔다.
한국에 가면 꼭 사 오게 되는 상비약들이 있다.
누구는 한국 약이 세다고 하던데, 아무튼 한국 약이 잘 듣는다.
감기약이랑 소화제는 꼭 사 온다.
특히 우리 애들은 감기가 오면 목으로 많이 오는데, 이 나라는 목감기 약이 별로다.
보통 목감기 약을 달라하면 주로 프로폴리스를 처방해 주는데, 그걸 수시로 뿌려야 하는데 자주 놓친다.
그리고 아무래도 입 안 깊숙이 뿌리다 보니 가족이라도 공유하는 것은 탐탁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 처음 사서 한 두 번 뿌리다가 날짜가 지나서 버리기 일쑤였다.
이번 해에 한국에 갔을 때도 노루모산을 사 오려고 했는데 이제 약국에서 구하기 어려울 거란 뉴스가 나왔다.
다음날 바로 약국으로 가봤는데 품절이란다.
세상에나 우리 아빠만 노루모산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네.
아쉬운 대로 집에 남아 있던 2갑으로 언니랑 엄마랑 셋이 나눠가져 왔다.
지난주에 갑작스러운 추위가 시작되었다.
바빠서 공복으로 출근할까 하다가 속이라도 따뜻하면 몸이 덜 추울까 싶어서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 서서 거의 마시듯 밥을 먹고 출근했다.
너무 급하게 먹었는지 두통과 울렁거림이 몰려왔다.
체한 것 같았다.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까 기다려봤는데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임시방편으로 엄지와 검지 사이를 눌러봐도 뚫리지 않는다.
직원들에게 소화제가 있냐고 물어보니, 소화제는 없고 대신 뭐가 있다 뭐라 뭐라 하는데 제대로 이해를 못 했다.
나중에 갖다 준 걸 보니 웬 소금통 같은 걸 가져왔길래 번역기를 돌려보니 베이킹소다였다.
엥? 이건 우리가 빵 만들데 넣는 그거 아냐?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일시적인 소화제 역할을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치료제는 아니지만 일시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혹시나 부작용이 있을까 싶어서 주저하는 내게 직원이 말한다.
자기는 지금까지 소화 안되면 꼭 그걸 먹었고, 즉시 효과를 봤단다.
그래도 딱히 먹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서 우리 가족톡 방에 물어보니,
다른 외국에 살고 있는 언니 말이
자기 직원들도 소화 안되면 꼭 그걸 먹는단다.
나중에 톡에 참여하신 엄마도 한 말씀 얹으신다.
예전에 아빠도 노루모산 드시기 전에 시골에서 다 그거 드셨단다.
또 다른 언니가 말한다.
우리가 약국에서 사 먹는 소화제에도 그런 성분이 있는 게 있단다.
이거 지금까지 나만 몰랐던 건가???
그래서 아쉬운 대로 그걸 먹긴 먹었는데 마이너스 플라시보 효과인지?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집에 가서 노루모산 스틱을 2개 먹고 나서야 속이 풀렸다.
남편이 한국 방문하고 올 때 노루모산을 사 오라고 했는데 아직도 시판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요?? 왜 안 파는 거예요?
이유가 뭐예요?
언제쯤 노루모산을 다시 구입할 수 있을지 하염없이 기다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