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안 하던 일 하면 꼭 일이 터지지

by 창가의 토토


그냥 살던 대로 살아야 하는 건데~


낮잠을 잘 자고 일어나니, 뭔지모를 죄스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하루 종일 뭐라도 한 가지도 해 놓은 게 없으면 불안함과 죄책감이 느낀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남편이 출근을 하고 혼자 집에 있는 날, 남편이 전화해서

“잘 쉬고 있어?”라고 물으면

“응 잘 쉬고 있어.”라고 말하면 될 것을

“쉬긴 뭘 쉬어~ 집안일이 얼마나 많은데~

세탁기 돌리고, 청소기 돌리고 얼마나 바쁜데~. “

이러면서 꼭 일한 것을 생색내려 들고,

‘내가 집에서 놀고 있는 게 아니야.’라고 어필했다.

난 집에서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걸 잘 못한다.



무튼, 낮잠을 늘어지게 잤으니 뭐라도 해야 하는데..

하다가 애들이랑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보통 대청소를 해도 ‘절대로’ 안 건드리는 구역이 있다.

누가 봐도 건드리기 ‘귀찮은’ 구역

괜히 건드렸다가 일이 많아질 것 같은 그 구역

그 구역을 큰딸이 건드렸다.

뭔 안하던 대청소를 한다고 ..


대청소도 끝내고 저녁도 먹고 딸이랑 영화도 한 편 보고, 나름 훌륭한 주말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씻고, 얼굴에 보습을 하는데..

무슨 의식의 흐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불현듯!!! 어??! 그 서류!!!!

그거 어딨었지? 하는 생각이 번뜩 들더니..

아 설마 아까 대청소할 때 버린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콩닥콩닥.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만 불가능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최대한 머리를 차갑게 했다.




이번 달에 딸이 재외 동포청에서 주관하는 ‘모국 초청연수’에 가게 되었는데 딸이 아직 미성년자라 부모 동의하에 출국한다는 서류를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미성년자일 경우 납치나 또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을 불법적인 거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보호책이다.

한국에도 이런 서류가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그 서류를 받기 위해 대사관에 들러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고 이민국에 들러 서류에 인증 도장을 받고 그걸 들고 부모가 둘 다 참석하에 공증 기관에 들러 본인

확인 절차 후 서명을 하고 도장을 받아야 한다.

남편이 이 나라에 오는 날 딸이 출국하기 때문에 그 서류를 잃어버리면 딸은 그냥 한국에 못 가는 거였다.

서류를 다시 할 시간이 없다.

딸은 초청 연수에 뽑힌 날부터 지금까지 한국을 간다는 생각에 흥분 상태였고, 우리는 이미 비행기 티켓을 구매한 상태였다.

초청 연수 일정에 100프로 참여한다는 전제하에 일정이 끝난 후 일정 금액을 지원해 주는 시스템인데, 못 가면 딸이 얼마나 실망할지 그리고 날려 버릴 돈도 너무 아깝기 때문에 반드시 찾아야 한다.

바보 같이 그 중요한 서류를 버린 거다.

예전부터 버려야지 버려야지 맘먹고 있는 서류 더미들을 한 번 싹 내용 확인하고 버리는 게 귀찮아서 계속 쌓아만 뒀는데 , 그 서류 더미들 속에 딸의 서류가 있었다.

사실 큰딸이 그 서류더미를 나에게 줄 때, 한 번 확인할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다 모아서 쓰레기통으로 버렸다.

이 나라는 아직 분리수거가 자리잡지 않아서 다 모아서 입주민 쓰레기통으로 버리면 그만이다.

물론 병이나 캔 또는 옷가지 같은 재활용이 가능한 품목은 따로 모아두지만,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의 구분은 따로 없다.



다시 그 불현듯 생각이 난 시점으로 돌아가서..

현지어에 능통한 큰딸에게 경비실에 연락을 넣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게 했다.

당장 입주민 쓰레기장으로 가야 한다고 쓰레기통을 뒤져야 한다고 했지만, 그곳의 열쇠를 갖고 다니는 담당자가 지금 없어서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은 아파트 각 층마다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있고 그곳을 통과해서 지하 1층에 쓰레기가 모이는데 그곳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이다.

문도 잠겨있다.

마침 토요일 저녁이라 오늘 쓰레기 차가 지나가진 않았고, 내일 일요일도 쓰레기차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월요일에 쓰레기를 수거해 간다고 했지만..

난 일요일 아침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불안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할 것이다.

다시 딸이 부탁을 했다.

혹시 오늘 밤에 쓰레기장을 갈 수는 없겠냐고.

경비가 그럼 혹시 여분의 열쇠가 있는지 찾아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키가 하나 더 있다며 지하에서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쓰레기장이 어마 어마 넓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흔히 영화 같은 데서 쓰레기장 뒤지는 장면을 보면 쓰레기가 얼마나 많이 모여있던가.

나는 재빨리 마스크를 챙겨서 딸 둘과 함께 지하로 갔다.

그때가 거의 밤 11시였다. ㅎ

경비 아저씨가 문을 열어줬는데 쓰레기들이 동별로 모이는 곳이라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지도 않고 의외로 깨끗했다.

미친 듯이 쓰레기통을 뒤졌다.

그런데 여러 개의 봉투 중에 그 봉투만 없는 거다.

. 난 분명 여러 개의 서류봉투를 쇼핑백 한 곳에 모아서 테이프로 봉인을 했는데 쇼핑백은 열려 있고 몇몇 서류는 바깥에 나와 있었다.

누구 손을 탄 것 같았다.

남편은 서류를 버릴 때 꼭 찢어서 버리라고 했는데 난 그런 남편을 보고

“오버하지 마 누가 쓰레기를 확인하겠어~”

그랬었는데

이 분들이 호기심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서류를 꺼내서 확인한 흔적이 있었다.

앞으론 나도 서류 버릴 때 조심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좌절감에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없어.. 없어 … 없어...”

말만 되풀이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서류를 다시 훑어보니

있다!!!!!

그 서류가 있다!!

처음에 너무 흥분해서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하여튼 나란 사람은..

항상 먼저 흥분하는 게 문제다.

머리를 차갑게 하는 것이 잘 안 된다.


서류를 찾아들고 경비 아저씨께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으로 왔다.




가족 단톡방에 이런 에피소드를 풀었더니

언니가 꿈 얘기를 해줬다.



아빠가 중요한 서류라고 가슴에 품고 다니시다가 언니한테 줬단다.

꿈을 꾸고 나서는 뭔 꿈인가 싶었는데 내 얘기를 듣고 나니 그 서류가 그 서륜가 싶다며

아빠가 잘 지켜주신 거라고 했다.


아빠가 정말 지켜주셨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꿈이랑 일맥상통하는 게 있으니 난 아빠가 그 서류를 지켜주신 것만 같다.

돌아가셨지만, 우리 옆에서 항상 지켜주시는 기분이 들었다.

아빠~ 감사해요!!

항상 지켜서 너무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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