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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가의 토토 Sep 30. 2024

편식

나에게는 딸이 둘이 있다.

첫째 딸은 여러면으로 감각이 예민했다. 물론 지금도 좀 그런 편이지만, 어릴 때는 그게 훨씬 강했다.


한 예로 어느 날 아침에 유치원 갈 시간이 임박했는데, 양말이 맘에 안 든다고 바꿔야 한다고 때를 쓴 적이 있었다.

아이가 말한 이유는 양말 안쪽에 매듭 부분이 불편하다는 거였다.

난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금 같으면 양말을 뒤집어서 신겨도 되는 건데, 그때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지금보다 더! 신경 쓸 때라서 내가 양말을 뒤집어 신겨 보내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를 먼저 생각했던 것 같다.

특히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나 내가 유치원 선생님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괜히 나를 오해할까 싶었던 것 같다. 또한 지금보다 생각이 유연하지 않았던 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첫 애를 키울 때는 실수투성이었고, 내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경험도 부족이라서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정말 굴뚝같았지만, 방법이 너무 서툴렀다.

임신했을 때부터 육아에 도움 되는 책을 끼고 살았지만, 내 아이는 책에 나오는 아이가 아니었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아이들이 있는데, 책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은 한정적이었겠지.

지금은 우리의 육아 대통령 오은영 박사님도 있고, 아님 여기저기 클릭만 해도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라 쉽게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인데 아무튼 그때는 난 몰랐다.

그저 아이가 유치원을 가기 싫어서 떼쓰는 건가? 정도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금쪽이’를 보면서 무릎을 탁 쳤다. 우리 아이는 기질이 예민한 아이였구나. 내가 그걸 몰랐구나. 모든 걸 내 기준에 맞췄구나. 내가 안 불편하니까 아이도 당연히 불편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또 다른 나 정도로만 인식했던 것 같다.

그 방송을 보면서 아이에게 참 미안했다.

기질적으로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있구나!!!


아이는 촉각만 예민한 게 아니었다.

미각도 후각도 예민했다.

맛에 예민하고, 식감도 예민했다.

새로운 음식을 해 주면 우선 먹어보려는 둘째와 다르게 첫째는 냄새부터 맡아보고, 때로는 둘째한테 먹여보고, 반응을 보고 괜찮으면 먹기도 한다.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다.

아이들 어릴 적에 한국에 데려갔을 때 엄마가 집에서 낙지 탕탕이를 해줬다.

비주얼 적으로 좀 충격적이었을 것 같긴 하다.

살아있는 애들이 막 꿈틀꿈틀 대니까.

첫째는 당연히 먹어보려는 생각이 전혀 없고, 둘째는 호기심으로 접근했다. 둘째는 생각보다 너무 잘 먹었다. 첫째는 자기는 먹기 싫고 그걸 빨리 없애고 싶었던 건지 아님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둘째가 신기해서인지 끊임없이 둘째 입에 넣어주었다. 둘 다 내 배에서 난 애들인데 어찌 이리 다를까 … 참 달라서 신기했다.


이렇게 편식을 하는 것도 아이가 예민해서 그런 건지 모르고, 참 많이 윽박지르고 때로는 절대 하면 안 되는 ‘비교하기’까지 하면서 나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다’라는 명분이었지만, 솔직한 내 속마음은 그냥 나를 좀 덜 힘들게 해 줬으면~ 걍 주는 대로 다 잘 먹어줬으면 했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 아이와 대화 중에 언니 두 아들 중에 큰애가 우리 큰애랑 식성이 많이 닮았다는 말과 함께 둘 다 편식이 심하다는 말을 했더니 딸아이 대답이 “엄마랑 이모가 큰 애들을 그렇게 키웠는가 보네?”였다. 

(오잉??? 내가 생각한 반응이 아닌데???)

물론 그 말도 또 틀린 말은 아니다. 큰 애를 키울 때는 둘째에 비해 뭔가 더 신경을 쓰면서 책도 더 들쳐보고 더 정성 들여 키운 거 같은데, 우리 집뿐 아니라 대부분 첫째들이 쫌 더 까칠한 것 같다. (물론 우리 집 첫째는 세상에 둘도 없이 착한 딸인데, 둘째가 성격이 워낙 좋아버린다.)

암튼 그러한 대화 중에 ‘편식’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귀에 꽂히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편’을 가르다와 같은 ‘편’ 자인지 궁금했다.


출처:네이버

잊어버리기 전에 네이버를 검색해 보니, 어머나 역시나 같은 글자구나.


출처:네이버

엄마 말씀대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더니, 나는 아직까지 이런 기본도 모르는 일자무식쟁이였지만, 이제 뭐 배웠으니 됐다.


우리 아이도 어느덧 스무 살이 돼가니 편갈라서 먹는 편식은 차차 덜하고, 점점 다양하게 먹는다.

이제 애들 이만큼 키우고 나니 얻은 지혜는 때 되면 다 한다~

엄마가 좀 느긋하게 기다려주면 , 결국은 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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