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릴 때는 내 시간 한 번 가져 보는 게 소원이었다.
아이 둘 다 거의 돌 때까지 완모를 했기 때문에, 그리고 남편이 나이에 맞지 않게 (?) 고지식했고, 게다가 자기는 밖에서 돈을 벌어온다는 이유로 애 둘을 100프로 독박 육아했었다.
이민 나온 후에 아이들을 낳았기 때문에 친정이나 시댁식구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었다.
큰 애가 두 살쯤 되었을 때 한국에서 전집을 몇 질 사다가 책을 읽어줬는데 다행히 책을 참 좋아했다.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애들을 재우기 위해 책을 읽어주던데, 우리 큰애는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면 눈이 더욱더 말똥말똥해지고 밤 12시가 돼도 잠잘 생각은 않고 책꽂이에서 책을 계속 빼오곤 했었다.
큰애 가졌을 때 남편이 야근이 잦었고, 일주일에 한 번은 밤샘근무여서 집에 못 들어왔었다. 나는 겁이 많아서 남편이 올 때까지 혼자 못 잤었다. 그래서 새벽까지 잠 못 자기 일쑤였는데,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잘못된 태교 탓인지) 큰 애는 완전 야행성이다.
스물몇 권짜리 전집 중에서도 유난히 좋아하는 책들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제목을 불러주면 그 책들을 용케 찾아오는 게 신기했고, 또 나중에는 어떤 책은 아예 통째로 외워서 내가 읽으면 같이 따라 하기까지 했다. 큰 애가 그렇게 재밌어했는데, 어떤 때는 정말 너무너무 읽어주기 싫었다. 너무 피곤했고, 제발 좀 나도 내 시간을 갖고 싶었다.
큰 애가 두 돌이 될 때까지 외출다운 외출을 한 번도 못해보다가 두둘 정도 됐을 때 딱 한 번 남편한테 맡기고 잠시 나갔던 적이 있었다.
다녀오니까 집은 엉망이고, 무엇보다 나는 굉장히 자제시키던 과자를 다 풀어놓고 남편과 딸이 함께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남편은 애가 뭘 먹는가 보다 자기가 편하게 애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내가 정말 화가 났던 건 나중에 육아 문제로 싸울 때면 남편이 “애 보는 게 뭐가 힘드냐”라고 했는데, 자기처럼 두 시간 정도 티브이 틀어주고, 과자를 먹고 싶은 대로 다 주면서 눈으로만 보는 육아를 해 본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닐 텐데!!
둘째를 키울 때는 그냥 쉽게 키우는 게 장땡!!! 마인드였는데 큰 애 때는 최대한 미디어 자제시키고 과자며 탄산이며 사 먹인 적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덕분에 지금도 우리 애들이 탄산음료를 잘 안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키울 때는 그렇게 고생스러웠는데 이제 애들이 대학생, 고등학생이 되다 보니 내 시간이 많이 생겼다.
처음에는 애들이 자기네 방으로 쑥쑥 들어가 버리는 게 서운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나도 적응이 돼서 편하다.
남편이랑은 솔직히 적당한 무관심이 제일 편하다. 말을 오래 섞으면 다툼이 생긴다. 내가 뭐 딱히 남편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적당한 거리유지가 필요하다.
근데 내 시간이 많아지니까 할 일이 없다.
그간 나를 위한 시간을 안 줘 봤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더더욱 모르겠고.
처음에는 티브이에 빠져 살다가 요즘에 내가 빠진 건 코바늘 뜨기이다.
시간을 투자하면 결과물이 또박또박 나오고 , 시간이 참 잘 간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하고 나면 눈이 침침하다. 초기 노안이 왔는데 코바늘 한다고 초점을 오랫동안 가까이에 두면 나중에 ‘멀리 보기’가 힘들다. 멀리 보려면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곁들여서 허리랑 손목도 많이 아프다. 원래 뭐 하나에 빠지면 질릴 때까지 하는 편이라 아예 시작을 안 하는 게 좋은데, 하지 말아야 하지 하고 코바늘 상자를 숨겨놓으면 어느샌가 나에게 ‘어서 다시 시작하라~’고 속삭인다.
멈출 수 없는 중독적인 유혹..
실력이 뭐 특별할 게 없어서 기초만 하다 보니 맨날 원형 뜨기만 하다 보니 남아도는 게 코스터들
집에 남아도는 게 코스터들~ 그리고 소소한 미흡한 작품들 ㅎㅎ
나의 먼~미래의 모습이 상상이 간다.
볕 좋은 날 흔들의자에 앉아 안경 쓰고 바느질하는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