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말이 그리 어려웠나요.

by 창가의 토토


전라도 끝자락 태생이신 우리 부모님.

두 분 다 무뚝뚝하기 대회에 나가시면 수상감이시다.

내 나이 50이 될 때까지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던가?

표현이 서툰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도 별 반 다를 것이 없다.

부모님께 살가운 딸도 아니고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 본 적이 없다.

간혹 엄마에게는 카톡으로나마 ’ 사랑한다 ‘고 전한 적이 있지만 아빠에게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이민을 나와 떠돌이처럼 살다가 이민 n연차에 드디어 우리 이름의 집을 장만했다.

항상 힘들게 살았던 모습만 보였던 불효를 저질렀기에 새 집을 장만하고 1순위는 당연히 부모님을 초청하는 일이었다.

비행시간만 쳐도 하루가 꼬박 넘게 걸리는데 그 먼 길을 부모님께서 오셨다.

부모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나도 한국을 오갈 때마다 항상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다리가 붓는 느낌이 들고, 요즘은 또 기후 변화로 인해 난기류도 심해서 기분이 불쾌해지도 한다.

한 번은 엄마께 여쭤봤다.

그 먼 길을 어떻게 오셨냐고. 얼마나 힘드셨냐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도 힘든지 몰랐다.

자식 볼 욕심에 하나도 안 힘들었어. “


부모의 사랑은 정말로 크다.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하셨는데, 그런 불편함을 그 큰 사랑이 다 덮을 수 있는 것이었다. 수하물 가방에는 자식들 먹이실 욕심에 김장김치에 고춧가루에 자식들 입힐 옷에… 가방이 넘치도록 꽉꽉 채워오셨다.

우리 집에 오셔서 우리 새 집을 보시고 어찌나 행복해하시던지..

부모 말고 나의 기쁨을 나보다 더 기쁘게 여기는 사람이 또 있을 수 있을까?

그중에서 엄마는 우리 집 식탁을 아주 맘에 들어하셨다.

남편과 나는 원목 식탁을 사고 싶어 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훨씬 비쌌다.

그러다가 우연히 백화점에서 대폭 세일하는 상품이 있어서 구매했는데 엄마는 그 식탁을 보실 때마다 쓰다듬으시며 예쁘다고 하셨다.

난 사실 그저 그랬는데 엄마 눈엔 저게 저렇게 예쁜가? 그렇게 생각하고 시간이 흘렀다.


2년 전 한국에 갔을 때 언니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엄마 집을 깨끗이 정리해 드리자는 말이 나왔다.

언니가 수납장을 구매해야겠다며 같이 골라주라고 해서 따라갔는데 거기에 예쁜 식탁이 눈에 띄었다.

엄마집에는 엄마가 다리 수술 후에 최대한 좌식을 피하시도록 큰언니가 선물해 드렸던 오래된 식탁이 있었다.

원래도 짙은 갈색이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왠지 색은 더 어두워진 느낌이었고 그 식탁 때문에 집안 공기가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만약 흰색 베이스에 검은색이 적당히 섞인 식탁을 둔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았고, 무엇보다 엄마가 너무나 좋아하실 것 같았다.

그런데 어르신들 고집은 또 혹시 몰라서 구매 전에 엄마만 모시고 그 가구점으로 가서 식탁을 보여드렸다.


“엄마, 이거 어때?”

“잉?? 이쁘다!! 너무 이쁘다!!! 근데 이 식탁이 우리 집에 들러갈런가?”


엄마 집은 작은 평수라 기존에 2인 식탁이 놓인 자리에 4인 식탁이 들어갈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셨다.

그건 미리 재 봤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고, 엄마가 맘에 드시면 됐다 생각하고 구매했다.

아빠께 말씀드렸다. 식탁을 구매했다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아빠는 화부터 내셨다.


“그럼 지금 있는 이 식탁은 어쩌라고야?

이거 버리는 게 쉬울 것 같냐?

의자랑 식탁이랑 다 동사무소 가서 스티커 사다 붙여야 하고 그것도 다 돈이다!”


하….. 어쩜 저렇게 반응을 하실까.

고맙다는 말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막상 저렇게 반응하시니 참 서운하고 아빠가 미웠다.






부모님은 친척들과 정기적인 계모임이 있으셨다.

아빠가 그 모임에 가셔서 막내딸이 식탁을 사주셨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셨다고 했다.

‘응?? 내가 괜한 식탁 사드려서 싫으셨던 게 아니었어?’

난 좀 이해가 안 갔다.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아빠의 70년도 넘는 친구분께서 말씀하셨다.

아빠가 돌아가시는 그 해에 마치 뭘 준비하시기라도 하신 듯이 친한 친구분들과 여행을 가셨는데, 그때 그 여행에서 외국서 사는 막내딸 자랑을 그렇게나 하셨다고.



몰랐다.

그저 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아빠들처럼 우리 아빠도 자상하고 따뜻하고 표현도 잘하는 그런 아빠였으면 하고 바랬었다.

그래서 아빠의 입에서 꼭 “고맙다” 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때로는 “왜 이런 걸 사 왔냐”라고 못 마땅한 말투로 언성을 높이셔도 그것이 아빠의 언어로는 “고맙다”의 표현인 것을..

한 번도 “네가 자랑스럽다.” 말하시지 않았어도, 아빠는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아빠의 언어가 통역이 된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