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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 Jan 15. 2022

동물과 시간을 보내는 일

별 뜻 없이 어울리며 순간을 누리기

작년에 업무차 머물렀던 군산에서 ‘글라라’, ‘봉봉이라는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하루에  시간 사계절의 햇빛과 바람을 느끼며 같은 길을 걷는 사이였다. 그들은 대형견이어서 같이 산책할  스마트폰에 한눈팔기가 힘들다. 멀리에서 다른 개가 오는지(싸움 붙을  있음), 고양이는 없는지(  있음), 개를 싫어하는 동네 주민(괜히 욕먹음) 나와 계시진 않은지, 논둑으로 차가 오지는 않는지 살피며 걸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주변 풍경이, 달라진 바람이, 햇살이 자세하게 보였다. 이건 덤으로 받는 아주  선물이다.

 

봉봉은 글라라 아들이다. 머리가 크고 다리가 짧으며 회색빛 털을 가졌다. 숱이 많은 꼬리가 멋진 개다. 사료는 많이 먹는 편인데 낯선 간식은 잘 안 먹는다. 과일도 싫어한다. 건빵과 육포를 좋아한다. 하루 세끼 잘 챙겨 드시는 몸이 굵은 시골 큰아버지 같은 식성이다. 봉봉이 사람이라면 술도 좋아했을 것 같다. 봉봉은 산책 주기가 길어지면 물그릇, 밥그릇을 엎어버리고 거기에 오줌까지 갈긴다. 힘도 무척 세다. 웬만한 목줄은 다 끊고 웬만한 울타리는 다 넘는다. 그래서 그의 목줄은 유난히 튼튼하다. 나무판자로 만든 봉봉이 집은 점점 사라지는 중이다. 봉봉이가 심심할 때마다 이빨로 다 물어뜯기 때문이다.

글라라는 검은색 털에 날렵한 몸을 가졌다. 평소에는 차분하고 우아하지만 다른 동물을 보면 늑대처럼 변한다. 사냥꾼처럼 눈빛과 몸짓이 바뀐다. 집에서 목줄에 매여있을 때 멀리서 고양이가 쳐다보고 있으면 억울한 듯 울부짖는다. 사료는 별로 안 좋아하고 간식을 좋아한다. 새로운 간식에도 열려있는 편이다. 글라라는 물맛에 예민해서 물그릇이 더러우면 물을 잘 안 마신다. 예전에 수술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산책 나갈 때 가슴줄을 매려고 하면 으르렁거린다. 하지만 빗질을 하고 쓰다듬어 주면 기분이 좋아서 배를 보여줄 때도 있다.


내가 숙소에 있는 동안은 그들에게 아침저녁으로 밥과 물을 주고 밥그릇, 물그릇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똥도 치워줬다. 가끔 빗질도 해주고 만져주고 여름엔 선생님들과 차광망도 쳐줬다. 이 정도뿐이다. 내가 글라라, 봉봉에게 해준 것은. 그런데 산책할 때 이들은 나에게 엄청난 신뢰를 보여주었다. 나를 따라주고 나를 기다려주었다. 한적한 시골길을 이 친구들이랑 걸으면 또 얼마나 듬직한지. 나에게 작년 가장 편안한 때를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글라라, 봉봉의 발자국과 내 발자국을 아주 잔뜩 그려 넣을 것이다. 중간중간 뭉개진 자국도 그릴 것이다. 특정 장소에 가면 가끔 풀밭에 드러누워 온몸을 비벼대는 이들의 자유로운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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