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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 Jan 23. 2022

훌라

나만의 명상

작년 여름 일터에서 만난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마사키 다카시라는 분을 알게 되었다. 그의 저서 『나비문명』을 읽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갇히지 않고 열린 눈과 마음으로 진리에 다가가 그에 걸맞게 행동하고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그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1부 마지막 꼭지인 '하와이안 르네상스'.


1898년 하와이는 미국 영토가 되었다. 미국은 하와이를 문명화한다는 명목으로 하와이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훌라, 서핑 같은 전통문화도 금지했다. 그러나 1960년대 미국 본토에서 일어난 흑인 공민권 운동의 바람을 타고 원주민들의 문화 부흥, 자치권 회복 운동이 일어났다. 이렇게 의식이 고양되어 가는 동안 하와이뿐만 아니라 폴리네시아 전역으로 확산된 '카누 르네상스'가 계기가 되어 사람들은 독자적인 문화에 눈뜨게 되었다. 원주민들은 하와이 말을 복원하고, 훌라, 서핑을 불러왔으며 타로토란을 재배하였다. 이를 '하와이안 르네상스'라고 한다.


자연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인이었으나 존재 기반인 자연으로 되돌아가 그라운딩한 마사키 다카시는 하와이 사람들을 생태 그 자체로 보았다. 타로토란을 심고 파도타기를 즐기며 노래를 부르고 꽃목걸이를 걸고 춤을 출 뿐, 바람과 놀고 숲과 숨바꼭질하고 폭포를 경외하며 불을 소중히 여기며 파도와 친구가 될 뿐, 자연에 안겨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에게 사랑받으며 자연을 사랑할 뿐, 그들은 생태 생태 하고 소리치지 않는다.(『나비문명』 책세상, pp.88-89)


이 책을 읽고 나는 종종 하와이에 가서 꽃목걸이를 걸고 훌라를 추는 상상을 했다. 자연에게 안겨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에게 사랑받고 자연을 사랑하고 싶었다. 타로카드를 배우는 친구에게 점을 보았다. 내가 내년에 하와이에 가서 훌라를 출 수 있을까? 친구는 점괘를 읽어주었다. 맘먹으면 갈 수 있지만 목적을 모르겠다고 했다. 계획 없이 목적 없이 가면 고생할 것 같다는 말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답변이다. 하와이에 가서 훌라를 배우는 상상을 현실로 옮기려는 상상은 싱겁고 멋없게 여기서 끝났다.


그러다 지난 12월, 1년 내내 매달렸던 프로젝트를 끝내고 쉬고 있던 차에 우연히 훌라댄스 수업 인스타 광고를 보게 되었다. 바로 등록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네 번 가는 수업이었다. 첫 시간에 선생님은 훌라는 잘 추고 못 추고 하는 춤이 아니라 각자만의 훌라가 있을 뿐이라며 바다를 상상하며 즐기면 된다고 말해주셨다. 지금까지 수업은 6번 했고 두 곡째 배우는 중이다. 연습은 매일 한다. 12월에 첫 번째로 배웠던 곡은 Bing crosby의 Mele Kalikimaka였고, 이번 달에는 Don Ho의 Lovely Hula Hands라는 곡을 배우고 있다.


훌라의 손동작은 바다를 어루만지는 듯한다든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묘사한다든지 절벽을 손으로 그린다든지 파도를 흉내 낸다든지 하는 식이다. 새의 날갯짓을 묘사하기도 한다. 손으로 이야기를 표현하기 때문에 시선은 주로 손을 향한다. 그리고 활짝 웃기.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새로운 동작을 어느 정도 익힌 후 연습을 할 때 나는 진짜 바다를 어루만지는 상상을 하며 춤을 추고 새가 되어 날갯짓을 한다. 상상 속 배경은 언제나 바다이다. 있는 그대로 완벽한 자연이 되어 춤을 추다 보면 나 자신도 있는 그대로 완벽해진다. 명상은 잠시 멈추고 생각을 비워 불필요한 불안감을 없애준다고 생각하는데 훌라 출 때도 그런 느낌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면서 나를 사랑하게 된다.


훌라 선생님이 올여름 하와이에 가는 프로그램이 열린다는 공지를 해주셨다. 나의 상상은 정말 현실이 되나? 너무 신기하고 신이 났다. 그러다 문득 타로점을 본 기억이 났다. 나와 비슷하게 커리어를 시작한 동료들은 경력을 쌓아가면서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졸업하고 있는데 나는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나, 놀고 싶은 건가, 놀고 싶은 마음을 따라가고 있는 건가? 아직 결정은 못 내렸지만 아마도 나는 하와이에 갈 것 같다. 생태 생태 외치는 대신 생태가 되고 싶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라운딩한 상태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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