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녜스 May 14. 2020

올봄은 이대로 충분하다

뿌연 황사도, 미세먼지도 비켜간 듯 날씨가 청명하다.

바라만 봐도 행복감을 안겨주는 대상이 많아진다.

초록빛으로 풍성해진 나뭇잎들의 흔들림 사이로 맑고 향긋한 아카시아 꽃향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담장 가에 핀 붉은 병꽃나무는 화사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며 오월의 향연을 누리라 한다.

무르익은 봄빛과 푸르름, 포근한 바람, 정갈하고 소박한 자연의 색 그 오묘함에 매료된다.

계절마다 자연은 숨겨둔 매력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아름다움의 완벽함이란 더 할 게 없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더 이상 뺄 것이 없다고 했던가. 그래서 자연의 완벽함은 귀하고 값진 선물처럼 신비롭다.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그리운 척, 외로운 척 앓는 듯한 고민은 낭비요, 부질없음이다. 다만 구김 없는 표정으로 가슴에 희망과 기쁨을 담아둘 일이다.

무심히 지나가는 바람도 아쉬운 짧은 봄이 가고 있다.

코로나 19의 소용돌이 속에서 버터 준 작고 여린 꽃무리도 그래도 올봄은 이대로 충분하다고 춤을 추듯 잔물결을 이룬다.    


너무 소중해서 감사드려야 할 게 많은 오월이면 바깥나들이가 빈번해서 시간에 포위당해 끌려 다녔건만 이제는 한 템포 늦춰놓은 일상이라 크고 작은 여운을 남기고 지나간다.

예전에 맘 편히 보러 다니던 전시회며, 영화, 연극, 일 년에 열 손가락에 꼽을까 말까 하는 음악회며 틈틈이 챙겼던 그런 시간들이 유독 그립긴 했다.

변화된 모든 것이 덤덤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낯설지 않은 익숙함이 베어 든다.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들과 어울려 희희낙락하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만성이 된 듯 편하다.

체념이란 것이 묘해서 뜸을 들이면 막연하지만 결정하기는 쉽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단념하게 만들었기 때문인가? 어쨌든 경험상 체념을 기껍게 받아들이고 나면 너그러워지는 마음도 따라온다.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상황이 회복된다 해도 별 대책이 없는 한 내 생활은 이 모습 그대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시간이 많이 흐른 나중에는 나이로 인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들이 한두 가지 더 생기겠지만.  

드라마 도깨비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봄날이 스쳐간다. 서서히 저물어가는 봄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다소곳이 바라볼 수 있어 좋다. 그걸로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하고 있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