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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Jun 29. 2020

길 위의 흔적

날은 잿빛 구름을 몰고 있어 꾸무럭하다.

6월의 막바지로 향하는 시간의 흐름은 거침이 없다.

흐린 날 덕분에 선선하다. 서둘러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 가까이에 하천을 끼고 잘 조성된 산책로가 있어 틈나는 대로 애용하는 중이다.

물은 물대로, 길은 길대로 제갈 길을 향해간다.

내 마음은 흐르고 싶은 대로 흐르건만 가는 길은 길 따라 이어짐을 이미 알고 있다.

길가에 고운 자태로 피어있는 노란 금계국과 파란빛 수레국화가 다소곳하게 반긴다.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정감 어린 접시꽃의 흔들림은 추억의 영상 속으로 나를 이끌고 친구가 들려주던 사랑스러운 그 말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의 꽃과 잎은 더 아름답게 피지 못한다고 안달하지 않는다고 해. 자기 이름으로 피어난 거기 까지가 꽃과 잎의 한계이고 그것이 최상의 아름다움이라고 여긴다는 거지. 사랑도 마찬가지야.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사랑하지 못한다고 애태우지 말라는 거야. 마음을 다해 사랑한 거기까지가 한계이고 그것이 아름다움이래.”  

만남도 뜸해지고 우정도 엷어져서 인연의 끈마저 아련해진 친구와의 아름답던 기억도 시간의 더께가 쌓일수록 서서히 묻혀가지만, 그저 사는 동안 맘속에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곱게 간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다.  

  

길의 끝자락은 또 다른 시작을 말하듯 길 위의 흔적이 이어진다.

사는 것도 그렇다. 시작과 끝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인생은 늘 현재 진행형이다.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이제는 인생에 무엇을 더 채우려고 애쓰기보다는 무엇을 더 비울 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언제부턴가 입에 달고 사는 단어도 과유불급이다.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그런 삶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예나 지금이나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닌지라 검소한 생활은 이어지고 지만 그래도 지향하는 바가 있으면 마음가짐이 달랐.





조용하던 밖이 갑자기 술렁거리고 산만해진다.

빗속에 요란한 굉음을 지르고 냅다 달리는 오토바이 때문이다.

평화롭던 나의 공간이 순식간에 현실로 복귀해버린 듯 뒤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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