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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렛검 Jul 06. 2021

오만과 편견

좋은게 좋은거 아니야?

우리는 글을 쓴다. 보통은 제목부터 쓰고 

그에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는 편이다. 

그러나 간혹은 제목이 입끝에서 맴도는 현상이 발생한다. 어떻게 제목을 지어야 할 지 모르겠는 경우가 생긴다. 하고 싶은 말도 분명히 있었는데 머리속에서 사라지거나 하는 현상도 간혹 있다. 


그럴 땐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다시 그 주제라는 그릇에 생각이 차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글을 씀으로써 현 상황의 구원이나 위로를 바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선택이 합당했던 건지, 기억에서 놓친것은 무엇인지 

혹은 지금처럼 잊어버린 생각이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건지

눈으로라도 봐야 '아 그런건가?'라는 인지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감정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은 표현


여전히 나도 하고 있지만 가급적 조금더, 조금만 더 

호응이나 문장을 연습해보는게 어떨까싶다. 





내 글쓰기는 오만에서 시작했다. 


한 학년에 1개의 반으로만 구성되고 

자동차 소리나 도시 소음이 아닌, 비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오히려 더 들리며 

넓다고는 볼 수 없지만 농부들의 풀 자르는 소리 등, 

트랙터가 통통대는 소리들을 오히려 더 듣고 자랐다. 


작은 분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다행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몰라도 좋은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나를 외롭게 하는 점은 

학생들 사이에서 발휘되는 개인의 장점으로 인해 그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는데 

나는 그런게 모자랐다는 점이다. 


환경이 좋아서, 아름다워서 그리고 당시엔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내용이 없어서 친구들은 산으로 들으로 마치 염소들마냥 뛰었고

달리기, 멀리뛰기, 축구 등등 몸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는 이 초등학교 출신들이 굉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도 적극적인 선생님들의 권유나 열정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도 대회, 전국대회에서 꼭 수상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자신감이 있었고, 항상 금상, 은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에 비해 잘하는게 없었던 당시의 나는 

키는 컷지만 몸이 약하고 항상 코피가 나는 약한 친구였다. 

얼굴도 하얗고 키는 큰다 마른 체형.

공을 잘 차는 것도 아니고, 달리기가 빠르지 않고, 장애물을 뛰어넘기에도 문제가 있는 

그 흔한 허들조차도 뛰어넘지 못하고 

모두가 잘 수행하는 허들위에서 구르기조차 못하는 좀 특이한 아이였던거 같다. 




그런 와중에 모두가 한번 쯤은 경험해봤을 

"백일장"에서 산문 분야에서 우수상을 받은 경험이 있다.

당시에 지금은 흔하디 흔한 그 햄버거를 먹을 기회가 없었는데 

꼭 대회 같은 곳에 참석하게 되면 선생님이 햄버거를 사준다더라 하면서 

소문이 돌았던 찰나에 참가하게 된 대회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주제도 모르며 

문장을 훈련한것도 아니었는데 오직 햄버거를 먹기위해서 참가한 대회에서 

우수상이라니 그것도 우습다. 


그 후, 글쓰는 것에 대한 환상이 생기게 되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오만이다. 

정말 인간이 우습게도, 어떤 분야에서 운이 따랐거나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그것을 내 장점으로 믿고 싶은가보다. 

 

그 환상과 오만은 곧 기회가 되었다. 

당시 학교에 글쓰기 수업으로 무슨 책을 냈다고 하는 작가가 국어 과목 선생으로 전입해 왔었는데 

신체 능력이 극에 달해있었던 학교에서 이상하게도 백일장에서 수상한 학생이 정말 수상했나보다. 


간혹 원고지를 주시고는 글을 쓰게 했고

그림을 그리게 했고 기회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 도내 시 분야 대회였던걸로 기억하는데,

글을 쓰기 전에 교외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나를 부른 그 선생은 

앞으로 내 글쓰기를 내가 몇 십년동안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하게 하는 말을 하게 된다.





"노바디야. 이거 들고가서 그대로만 적어"


가을의 낙엽과 잠자리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가인 사람이고 들고 가서 적으라는 말이니까 어린 나는 그대로 했다. 


뒤 늦게 알고보니 이 작가라는 사람은 그 대회의 심사위원이었고

본인이 있는 학교에서 뭔가 성과를 얻고 싶었던건지 

이런 부정을 놀랍게도 학생에게 시켰다. 


결과는, 장원이었다. 


대상보다 위, 명예로운 운문분야의 장원 

친구들이나 학생들은 아침조회 시간에 단상으로 향하는 뜀틀을 넘지 못하는 아이가 저런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의심없이 믿었다. 

부모님마저 이 아이가 가져온 상에 대해서 의아해했지만, 장점을 드러낸 것에 기뻐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이건 내가 아니고 내가 이뤄낸 성취가 아니다. 

그 때부터였던거 같다. 남에게 기대는 꼼수나, 어떤 방법으로든 뭔가를 성취하는 방법도 있구나 

쉽게가는 방법으로도 사람들은 이렇게 가는거구나, 재미없네. 라고 하면서 


노력의 가치를 크게 두지 않았던 거 같다.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쉽게 쓰여진 글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선생이 건낸 쪽지를 찢어버렸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되면 내가 좀더 스스로 이룰 수 있는 성취가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선택이다. 

중요한 선택들은 꼭 몇 가지씩 있다. 


군 생활 시절

이제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야 수병들 중에서 아무나 한 명이 써내라" 라고 한 

충무공 이순신 관련 글짓기 내용 중에서 


엉겁결에 3함대 최우수상을 수상했을 때,


"야 노바디야 니 최우수다, 최우수!"


선박침실에서 다른 수병들과 플레이스테이션을 하고 있을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써낸 글이 좋은 평가를 받아서 어느정도 위로는 받았다고 생각한다. 





오만과 편견은 어떤 순간이든 생길 수 있다. 

오만은 또 다른 기억으로 부수어야 하며

편견은 다른 좋은 기회에서 얻어낸 기억으로 인해서 희미해질 수 있다. 

그건 가능성이니 이런 내용을 놓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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