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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렛검 Jul 12. 2021

작별인사

늦었다고 생각할 때를 바꾸는 방법

7월의 장마가 어느 정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날이었다. 

금일부로 마지막 출근인 날에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퇴사 일정이 정해지고 난 이후로부터 누구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르는 직장 속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던 날로 기억한다. 


나는 줄곳 한번 얽힌 관계의 고리는 "알렉산더의 매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수레에 묶여 도저히 풀지 못하는 그 매듭을 두고 사람들이 고심하거나, 힘들여가며 그 문제를 고민하거나 시도하고 있을 때, 칼을 뽑아서 그 매듭을 내쳐버렸던 그 단호함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다. 


퇴사가 3일 앞으로 다가온 그때, 


무미건조한 회사생활의 끝을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도 여러 퇴사 글들을 섭렵한 결과, 인수인계는 필수적으로 여러 시간을 들여서 작성했다. 다음에 오게 될 직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최대한 자세하게 쓴 글이 장황하게 여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 이외에 남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며 '이제 이 산업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 마음을 먹었다. 

내가 학생 시절 돈이 많이 들어서 하고 싶은 것을 못했던 경험이 있어, 퇴사 후 여행이라던지 내게는 현재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양하고, 퇴사 당일의 치킨만을 계획하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강의나 책을 구입하는데 큰 지출을 들였다. 앞으론 다른 공부를 하리라. 뒤돌아보지 않으리라.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고 앞으로는 다시는 이 망할 산업에서 배웠던 것들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당장 경제적으로 얼마나 버틸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모든 부조리나 불합리함, 그리고 무시와 포기의 분위기라는 정체된 조직에서 벗어나 이렇게라도 내가 나를 지켜야만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빠른 결단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모든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듯이 퇴사일에 나에게 출장일을 도와달라고 하는 직원이 있었다. 

마침 냉랭하고 가시방석인 사무실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그 의뢰를 흔쾌히 수락했고 


퇴사 당일, 그 직원과 출장을 나가게 되었다. 




그 직원은 비가 쏟아지는 차창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다소 어색하게 아무 말 없이 이어졌던 오전 출장 업무를 마치고, 자신이 선뜻 점심을 사겠다며 인근 갈비탕집을 찾았다.

그 직원은 갈비탕과 영양갈비탕의 차이에 대해서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직원의 설명은 길었지만 이 차이가 단지  대추 4알 차이에 3000원이나 더 비싼 바가지라는 사실 같아서 부득 갈비탕을 먹겠다고 하는 나에게 영양을 챙기라면서 기어코 영양갈비탕을 권한 이 직원은 


퇴사 이전에 자신에게 내 업무가 배정되어감에 따라 제일 먼저 부담을 표했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었다. 심한 말은 한건 아니었다. 다만 이 일이 나한테도 부담이었을 텐데 왜 이 업무를 자신이 속한 팀이 맡아야 하는지, 팀을 대변해서 이 문제를 팀장에게 건의하려고 하지 않은 나의 태도를 지적했었다. 

이처럼 문제에 직면하기보단 가급적 우회하고 싶어 했으며, 본인이 알지 못하는 업무에 대해서 도전이 아닌 효율을 중요시했던 직원이라고 생각했다. 


" 노바 디씨, 그동안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알겠어요. 실제로 일도 많았고... 근데 저는 노바 디씨가 아니라서 이걸 제가 한다고 해서 잘 될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그 결정 이해해요. "


그녀도 처음 공부를 유치원 교사로 시작했으나 적성이 맞지 않았고 

30줄이 지나간 나이에 다시 대학공부를 시작 합격하여 주위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여러 차례 옮기었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해 일했던 곳에서 늘 자신의 가치관과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들로 인해서 그녀 또한 퇴직을 반복했고 그 직책은 정규나 계약관계를 따지지 않았다고 했다. 


비슷한 듯, 그러나 이제는 어찌 보면 회환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씁쓸한 웃음으로 맞으며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질긴 갈비를 입에 밀어 넣으면서 점심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꽤 실제로 비슷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의 벽 같은 것이 느껴졌고 노바 디씨가 이젠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서 망설였어요."


오후 출장 또한 마치고 대접받은 터라 커피를 주고, 이야기를 더 했다. 그동안 침묵으로 인해서 쌓인 이야기가 둑을 만들었던 건지, 그 당시의 상황과 감정들이 물밀듯이 터져왔다. 

마음의 벽이랜다. 그동안 알던 나와의 모습과는 달라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는 이 이유가,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일전에 그렇게 표정이 어두웠었던 나를 봤다면

누가 나서지도 않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오죽했으면 기간제 직원에게 돌렸겠냐는 팀장의 야속한 한마디를 알았고 그 내용을 조금이라도 예측했다면

매번 일이 바쁘다는 내용으로 아무도 서로를 챙기지 않는 이 분위기를 그래도 바꿔보자고 뜻이라도 함께해봤다면 내가 왜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를 알았을 테다.  


오늘과 같은 결론은 나지 않았을텐데 하며 다시 한번 얼음이 담긴 쓰디쓴 커피를 달그락거려본다. 

그래도 이젠 늦었다고 생각한 나에게, 이미 칼을 빼서 잘린 매듭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에게 


망설였지만 그동안 고생했고, 이해한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후 5시, 퇴근을 찍고 사원증을 이제 갓 일한 지 2주가 경과한 운영 팀원에게 맡겨둔 뒤 회사를 떠났다. 그리곤 뒤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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