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요소 - 그게 원래 모습이다
글이 흘러가는대로 쓰다보면 도대체 무슨이야기를 한건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 그것을 수정할 것이냐 말것이냐를 두고 봐야 한다면 그냥 두기를 선택하겠습니다. 왜냐면 과오나 실패라고 할지라도 수정되어선 안될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끄럽더라도 직면해두면 다음번엔 조금은 덜 부끄럽지 않을까하는 단순함입니다. 이런 단순한 경험을 통해서 더 배우는게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이전 발행글인 2번째 요소를 찾아보려고 무리해서 글을 쓴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대로 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싶어서 낙담하던 찰나에 번뜩 지나친 생각은 '아 아직도 나는 그냥 내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 수 있을만한 준비가 잘 안되어 있구나'를 느꼈습니다.
마치 내가 실제로 있었던 일을 그럼 세세하게 풀기 시작했을때, 이런 내용들이 과연 얼마나의 객관적인 사실을 담고 있을 수 있을까 고민됩니다. 어떤 대상이 특정되고 어떤 시간이나 공간 사실이 특정을 해놓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면 과연 이것을 설명하는 나라는 사람이 정말 객관적일 수 있는건지, 그런 객관적이라는 권한은 누가 부여해준건지. 근거는 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비딱하게 바라보니까 답이 없어져 깜깜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정말 잘못되었던거야라고 직장을 소재로 한 글을 쓰려다보니 이런 글은 쓸 수 없다고 결심했습니다. 왜냐면 글을 쓰는 저 또한 누군가에게는 그저 답답한 사람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런 행위 또한도 '남탓'하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고 제가 그러한 행위를 경멸한다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직장의 생활을 표현하고자 했던 글들이 신중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쓰고자 했던 소재의 글들의 발행을 잠시 멈추게 되고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시간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사람이 나빳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내가 잘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남은 글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한심하구나! 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코끝이 찡해지곤 합니다. 결국 내가 겪은 이야기에 내가 솔직하지 못할 정도로 예민해진 걸까 싶어서요. 나한테도 감출 필요가 없는데 왜 이걸 못하고 있을까라는 자기연민과 함께 그래도 이야기해보자. 결국 이야기를 계속하다보면 내가 이런 생활이 맞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가 드러나게 되겠지라는 마음에 다시 자리에 앉아 자세를 가다듬고 저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화이팅을 외쳐보면서 (쓸데없이 비장해지긴 싫지만) 노트북을 두드려 보게 됩니다.
3. 갈등
생각해보면 팀원들끼리나 상사끼리의 감정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 일들을 팀원시절부터 많이 관찰했었습니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직장생활 속에서 직접 상사나 팀원들과 갈등을 겪어보기도 하고 각자 다른 대상들의 갈등관계를 관찰도 해봤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타 팀에 속했던 직장동료가 제가 속했던 팀장에게 격앙된 분위기로 업무소재의 책임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했던 점이 인상깊게 남아있습니다.
정확한 상황은 아니지만 일단 팀장이
1) 팀장이 잘못된 정보를 누군가에게 전달했고
2) 그 누군가가 직장동료가 오류의 주체를 직장동료인것으로 오해했고
3) 직장동료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을 누군가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한
4) 그러나 그 누군가가 직장동료와는 꽤 업무적으로 이어진 사이라는 사실
이런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나긋하고 얌전하게만 생각했던 직장동료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팀장의 파티션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고 소리를 치고 있을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장 처음드는 생각은
'잘잘못을 따지기전에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조직사회가 관료적이진 않겠지만 상사와 하급자라는 패러다임에 박힌 우리들은 아마 이것을 하극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뭐가 됐든지간에 그럼 쓰나라고 하는 것에는 어쩌면 깊게 박힌 우리 관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누가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서 이러한 갈등 풀이방식은 그렇게 좋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분은 만약 오해를 사게 되었을 때, 어떤 방식을 택해오셨나요?
문제해결은 항상 완벽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한들 언제나 오해나 기분나쁜 요소가 항상 생기기 마련인데 저는 그때마다 항상 '침묵하기'를 선택했습니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은 아무래도 무례한 질문이나 웃음에는 어떤 대답이나 분위기 맞추기용 웃음 등등의 모든 내용들을 거부하기를 택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부터는 점심시간 조차 그 사람과 마주하길 거부하는 방법을 주로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욕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에 맞춰서 움직여주지도 않겠다, 반응 조차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었을까요. 뭐 그런 겁니다.
업무적인 내용이었다면 이해하겠습니다만 사실 생각해보면 업무를 빙자한 지적이 직장내에선 많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어떤 생활이나 가치관, 선택등에 대한 사람에 대한 신념, 태도 등에 대한 내용들이 주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런 짓을 하느냐'라고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참여하지도 않았습니다.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포지션을 취하지도 않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무슨일있나? 왜 이러지시지' 라는 생각으로 침묵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 뒤에 무례함, 공격적인 말 등등의 내용들이 느껴졌을때 더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제게 있어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자신을 꼭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침묵의 시간은 괴롭지만 그 나름대로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동떨어질까 두려웠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자신이 어쩌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원래 직장은 그런 모습인거 같습니다. 행복을 찾지만 행복이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곳, 그 중 어쩌다 마주친 행복에 따뜻한 햇살같은 미소를 잊지 않는 한켠의 여유를 가진 나 자신을 몇번이고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