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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갈 Apr 15. 2024

[도서] 절망은 너무 쉬워 하지 않으려 한다

책 <세상은 이렇게 바뀐다> (단요) 리뷰.

“어느날 사람들의 머리 위로 수레바퀴가 떠올랐다. 이 수레바퀴는 정의를 상징하는 청색과 부덕을 상징하는 적색 영역으로 이분된다. 두 영역의 비율은 삶의 행적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수레바퀴는 환경과 동기를 참작하면서도 이를 면죄부로 삼지 않으며 부분적으로는 개인적인 실천 이상의 변화를 요구한다. 최종의 순간의 판결은 확률에 맡긴다.”

* 본문은 책 <세상은 이렇게 바뀐다> (단요)의 줄거리 및 일부 장면 묘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림설명 시작. 책 <세상은 이렇게 바뀐다>의 표지이다. 그림설명 끝.

단요의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수레바퀴라는 천국과 지옥을 갈 확률을 표시하는 원형판이 떠오른 이후 다양한 사람들의 상황이 르포작가인 일인칭 관찰자의 시점으로 묘사한다. 수레바퀴는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이고 전폭적인 변화를 발생시킨다. 이제 사람들은 연봉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옥에 갈 확률을 낮추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며 자본주의를 폐기하자는 주장을 한다. 난민을 더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며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자동차 소유를 금지한다.


그렇지만 작중 서술자가 르포작가로서 포착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태도는 이러한 지구적 경향성보다 복잡하게 구성된다. 수레바퀴의 등장 자체는 인간에게 새로운 철학적 고민을 던진다. 수레바퀴가 모종의 도덕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윤리학자 K는 그래도 지금의 세계가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이 더 나아진다 하더라도 그 원인이 수레바퀴라면 언짢은 기분이 든다는 수학자 P도 있다. 누군가는 이러한 변화 앞에서도 수익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개발자 T는 이러한 와중에도 수레바퀴 추적 관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돈을 벌어들이며 천국에 갈 적정률을 높여주는 일종의 코디네이터 사업을 하는 법인 대표 F도 존재한다. 법률가들은 자신의 적색 혹은 청색 수치가 선임에 영향을 주는 것을 난감해한다. 동시에 적색 수치가 높은 인물을 변호하는 일 앞에서 직업윤리를 고민한다. 어린이들은 너무 똑똑하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높아지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감안하여 아무것도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수레바퀴는 이 소설에서 핵심 장치로 사용되지만, 르포 취재라는 작가의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수레바퀴라는 원판은 정작 금방 잊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단요 작가가 수레바퀴를 통해 규명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지겨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수레바퀴는 약간의 긴장감을 줄 뿐이다. 지겨워서 당연하게 여기면 안될 것들마저 당연하게 여기곤 하는 우리에게 수레바퀴를 통해 당혹감을 안겨준다. 그것은 바로 우리와 사회와 그것들의 윤리적 긴장과 변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결말을 아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살아 숨 쉬는 존재로서의 결말은 죽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이는 살아서는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며 죽음 이후의 감각에 대해서는 각자의 믿음만 있을 뿐 실증적으로 알 수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수레바퀴의 등장으로 인하여 우리가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결말이 아닌 억겁의 시간으로 넘어가는 관문이 된다면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한의 세계에 머물면서도 무한을 사고해야 하는 삶은 행일까 불행일까. 아니면 이미 이 세계가 유한의 것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을까.


한편 우리 위에 수레바퀴가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세상의 결말을 모르는 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온 보편의 미래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 기후위기는 가속화될 것이다. 기후위기는 보편의 현상이지만 그 피해는 차별적일 것이다. 재작년 반지하에 거주하던 일가족은 침수 피해 탓에 사망했지만, 같은 시각 누군가는 배달 노동자에게 만 원을 주고 배달을 기다렸으니까. 기후위기로 인해 녹은 북극해는 자본에게는 새로운 이윤 창출의 기회로 계산된다. 우리는 일하다가 죽을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너무 많이 일해서 죽거나 다치며, 그것으로 세상은 굴러가지만, 우리의 일은 변변치 않은 것이라고 반복해서 들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평생 쓰지도 못할 돈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가져가지만, 누군가는 보증금이 없어 강남의 평당 시세보다 비싼 금액을 쪽방에 써야 할 것이다. 0.72명이라는 한국의 출산율은 높아지기는커녕 앞으로 더 낮아질 것이다. 이미 정규직 여성의 출산율이 비정규직 여성의 출산율보다 4배가 높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증명되었다. 가난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아이를 낳더라도 그것이 아이에게 죄를 저지른 것처럼 느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아이를 낳자고 말하기에 우리는 그들을 위한 어떠한 전망도 없으며 이미 장성한 소중한 생명들은 날마다 괴로워하며 보내고 있다.


위기가 가속화될수록 정치적 해법의 필요성은 높아져만 가지만 역설적으로 경제사회 분야의 위기는 사람들을 자기 삶밖에 생각하지 못하게 하여 문제 해결의 역량을 약화할 것이다. 이 모든 위기가 자명함에도 우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몇 년 전에는 사회의 문제를 말할 때 각자도생이라는 말을 빈번히 썼던 것 같다. 위기가 강화될수록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애쓰기보다 자기의 삶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 되는 시류를 비판하기 위하였음이라.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나 충분한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각자도생에도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강한 절망이 모든 의지를 앞선다.   


세상은 이렇게 바뀔까 


그렇기에 책을 읽으며 한편으로 수레바퀴가 등장했을 때 세상의 혼란함이 이 정도로 유지되며 변화가 이토록 급속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다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들이 죽어서의 지옥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꿈쩍할 수 있다면 그 변화의 몫을 수레바퀴에 만으로는 돌리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냐고도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상 가능한 우리의 근미래 앞에서도 쉽게 변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또한 수레바퀴가 가정하는 도덕이 다수에게 이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흔히 말하는 정의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원판의 형식으로 인간 행동이 제약된다는 것은 꺼림칙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인간의 선한 행위의 총합이 인류의 지향할 방향성이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석탄 발전인 문제이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것은 그 자체로는 맞는 말일지라도 발전소 노동자들에게는 정리해고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난민을 수용하는 것은 시급한 일일 수 있으나 청색 점수를 높이고자 식민주의의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각각의 최선을 다하는 선한 사람들의 세계가 그럴듯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수레바퀴의 가정이 그나마 다정한 미래임을 고민하게 만든다.


나는 가끔, 어쩌면 가끔 보다는 자주 이러한 절망감이 온몸을 아프게 한다고 느끼곤 한다. 그리고 또 가끔 괜찮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최근에 괜찮아진 여러 이유 중 하나는 한 책에 인용된 김연수의 소설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한 구절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노력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이 시대에는 절망이 너무 쉽기 때문에 절망을 하지 않으려 한다. 수레바퀴가 나타난다고 해도 세상은 바뀔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원치도 않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를 위한 최선이 아니라 그것이 모두의 최선일 수 있도록 하는 각자의 최선일 것이다. 온갖 절망 속에서도 단요 작가가 르포작가인 서술자의 기대 시대를 살아가는 각자의 입장을 새겨놓은 이유가 이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트인사이트에서 확인하기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9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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