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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갈 Jan 09. 2025

[리뷰] 2025 그림책이 참 좋아 [전시]

글 없이 동화책 읽기


12월부터 예술의전당에서 특별한 그림책 전시가 열린다. 340평 공간에서 250여 점의 원화 및 미디어 아트존을 선보이는 2025 그림책이 참 좋아 전이 24년 12월 20일부터 25년 3월 2일까지 관객들을 맞이한다. 2025 그림책이 참 좋아 전에서는 최숙희, 윤정주, 김영진, 유설화 등 국내 최고의 그림책 작가 20여 명의 대표작뿐 아니라 시드니 스미스, 구도 노리코 등 세계적인 해외 작가의 작품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동화책의 세계는 동화 같지 않다

우리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것, 그러므로 비일상의 장면을 맞이했을 때 ‘동화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떠올려보자.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의 세계는 정말로 동화 같았는가? 가족으로부터의 구박, 친구와의 갈등, 부자의 횡포, 극복할 수 없는 운명. 난관에 부딪히는 것은 동화책 속 어린이만의 일은 아니다. 동시에 어린이의 세계 역시 아름답지 못하다. 처음 맞닥뜨리는, 나의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 나는 어떻게 느끼고 생각해야 할까. 동화책은 마찬가지로 동화 같지 않은 어린이의 일상을 지킨다. 그런 점에서 동화책은 더욱 두껍고 빽빽한 글을 읽기 위한 중간 단계에 머물지 않는다. 긴 글을 읽지 못해 그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림과 글이 함께 하여 그림책이라는 고유한 영역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인이 되어서 동화책을 읽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포근한 것이다.


글 없이 동화책 읽기

동화책의 세계관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림이 필요하다.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동화책의 서사는 글이라는 기호가 중심이 아닌, 그림 자체가 소통의 매체가 되는 장르이다. 그럼에도 글과 책이라는 형식이 제외되어 그림만을 전시 형태로 마주하게 된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었다. 책이라는 형식에서 나온 그림은 전시가 되었다. 따스하고 직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해 주는 작품들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 그림책 작가 구도 노리코의 작품이었다. 현재까지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그는 야옹이들이 여러 일상 공간에서 겪게 되는 갈등 상황과 모험을 그려낸다. 전시 이후 구도 노리코의 동화책을 살펴봤을 때는, 초등학생 저학년과 고학년 어린이를 위한 섹터가 나뉘어 있었다. 그림으로 만났던 야옹이들을 더욱 오밀조밀한 책의 형태로 보았을 때의 감상은 색다르기도 했다. 그림책의 그림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는구나, 동시에 그림책이라는 형태 역시 예술이었구나.


모두를 위한 전시를 바란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출산율은 0.7명 수준이다. 언젠가 튀르키예를 놀러 갔을 때 골목마다 뛰어노는 어린이들과 골목마다 있는 아동복 전용 매점을 마주했을 때 생경한 기분을 느꼈다. 우리 동네에서 아동복 판매장은 내가 중학생이 될 때쯤 멸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어린이가 아니게 된 젊은 성인인 나는 성인이 아닌 존재가 나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존재하지 않음은 총체적 수준이다. 상호작용의 대상뿐 아니라 내가 주로 지나치는 길거리에도 어린이는 자주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키즈존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당황도 잊지 못한다.


해당 전시를 본 날은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설 때부터 어린이들과 어린이들의 보호자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이런 곳은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소소한 배려도 있었다. 한참 전시를 보는 중에 허리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그림 설명과 그림들이 다른 전시에 비해 조금 낮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바로 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좌식 코너와 체험형 부스가 길목마다 위치한 것도 인상 깊었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어린이와 함께하는 가족 단위였던 것은 맞으나 나와 같이 어린이와 함께하지 않는 관람객들도 종종 있었다. 체험형 전시와 어우러져 지루함 없이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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