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삼매경 (원작 함세덕,연출 이철희, 2025)

국립극단 신작, 함세덕의 <동승>에서 <삼매경>으로

by 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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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희곡의 고전으로 불리는 함세덕의 <동승>이 연출가 이철희가 재창작한 <삼매경> (원작 함세덕, 재창작·연출 이철희)로 국립극단에서 새롭게 관객 앞에 선보여진다. 깊은 산 속, 자신을 두고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동자승 도념의 이야기를 그린 <동승>은 불성과 인성의 갈등, 운명과 인연을 반복시키며 인간의 주체적 의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러한 <동승>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삼매경>은 원작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분절하고 파멸하기도 하면서 연극이라는 예술의 존재 의미에 질문을 던진다.


도념은 도념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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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은 글로 되어 있음에도 읽히기보다 행해지기를 기대받는 텍스트이다. 희곡을 연극이 되기 위한 예비적 텍스트만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희곡을 꼼꼼히 뜯어 읽는 것은 연극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배우는 대사와 지문이라는 활자에만 존재하던 인물을 현실 세계로 소환하는 자이다. 자신의 육신을 통해 한 인물을 빚어낸다는 점에서 배우는 무대에서 신보다 직접 접신/트랜스해야만 하는 무당에 가깝다. 배우는 글 속의 인물을 어떻게 자신의 몸으로 구현하기에 이르는가. 연극 <삼매경>은 이 과정을 여러 명의 도념을 등장시켜 연출한다. 연극의 첫 장면에서 도념을 연기하는 배우 지춘성과 지춘성의 관념 속 ‘진짜 도념’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신다. 이 장면에서 1991년 박원근이 연출한 <동승>에서 스물다섯이었던 지춘성 배우는 59세에 이르러 본인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연극 속 인물은 실재한다. 그렇지만 연극 속 인물을 무대 위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배우뿐이다. 그러나 배우는 그 인물이 아니다. 그 간극과 긴장감을 나이가 든 배우와 여전히 어린 인물을 함께 무대 위에 올림으로써 연극 <삼매경>은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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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삼매경>은 시간과 공간을, 또 인물을 뒤섞어 연출한다. 어린 도념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친 채 산속 사찰에 살아가는 고독함에 대하여 배우 지춘성은 질문한다. 이어서 배경은 그가 1991년 연극 <동승>을 준비하던 지하 연습실로 뒤바뀐다. 물이 똑똑 떨어지는 지하 연습실. 그것은 연극 <동승> 속 산속과도 비슷한 형상이다. 연출은 젊은 배우인 지춘성을 호되게 꾸짖는다. 산속에서 고독한 도념의 처지와 연습실에 처박혀 배우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너의 처지가 다르지 않음을 알라고. 꾸중의 목소리는 주지 스님의 목소리와 겹친다. 와중에 어머니의 부고를 듣는다. 그제야 어린 도념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실마리를 느낀다. 이러한 뒤섞인 연출의 결과로 관객은 <동승>의 세계관을 연극의 세계관으로 유비하여 이해하게 된다.


삼매경, 그 끝에 무엇도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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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경. 불교 용어인 삼매경은 ‘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로, 이 경지에서 바른 지혜를 얻고 대상을 올바르게 파악’한다는 의미이다. 전체 연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자면, 연극 말미 지춘성 배우가 <동승>의 대사를 나지막이 독백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59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도, 그 순간 지춘성 배우는 사라졌고 오직 어린 도념만을 나는 보았다. 시각장애인 문자 해설 화면을 보며, 나는 지춘성 배우가 이전의 장면에서 대사 실수를 종종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체 전개에 큰 지장은 없었고 어색함도 없었으며 첫 공연이라 더 그러했다고 생각했기에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독백만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도념의 말을 도념이 되어 전했다. 벌써 30년이 훌쩍 넘은 과거에 했던 그 대사들을 그에게 남았던 것이다. 말 그대로 삼매경.


한 배우가 인물에게 다가가는 과정, 그 결과로써의 물아일체. 연극은 시간과 같아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지만, 어떤 순간에 다다랐었다는 자신의 기억만이 몸에 남는다. 연극 <삼매경>이 고전 <동승>뿐 아니라 연극과 연극 하는 이들에 대한 헌사로 기억 남을 이유다.




*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6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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