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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갈 May 02. 2024

이토록 다양한 클래식
-세르게이 말로프

세르게이 말로프 내한 공연 <21세기 바흐의 음악을 만나다>

세르게이 말로프의 내한 공연 <21세기 바흐의 음악을 만나다>가 2024년 4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되었다. 세르게이 말로프는 바이올린, 비올라, 바로크 바이올린과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 등 여러 악기를 다루는 다재다능한 연주자이다. 연주 범위 역시 넓은 시대를 아우르는데 초기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 음악의 세계 초연까지 말로프는 자신의 해석을 만들어낸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는 전통적인 바이올린 외에도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와 전자 바이올린, 루프 스테이션을 활용한 공연을 펼쳤다. 



프로그램 구성

토카타와 푸가 D단조 (전자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단조 (바이올린)

Ⅰ. Adagio

Ⅱ. Fuga

Ⅲ. Siciliana

Ⅳ. Presto


모음곡 6번 D장조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

Ⅰ. Prelude

Ⅱ. Allemande

Ⅲ. Courante

Ⅳ. Sarabande

Ⅴ. GavotteⅠ&Ⅱ

Ⅵ. Gigue


정해진 프로그램을 마치고도 두 곡의 앵콜곡을 추가로 연주하고 나서야 전체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이토록 다양한 클래식


전자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첫 번째 곡 토카타와 푸가 D단조는 공연의 좋은 시작이었다. 강렬하게 쏟아져 내리는 듯한 도입부는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관객들을 순식간에 연주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전자 바이올린은 기존 바이올린에서 울림통을 제거한 생김새를 지녔다. 엠프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음역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래서 하나의 악기만으로 현악기가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음역을 표현할 수 있었다. 묘하게 거칠어지는 듯한 특유의 음색도 흥미로웠다. 전자 바이올린과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 사이에는 바이올린 연주가 있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첫 번째 전자 바이올린 연주가 끝난 뒤 말로프는 소나타 1번 G단조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했다. 앞서 전자 바이올린의 신기한 생김새와 쏟아지는 듯한 연주에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었다면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소나타는 가볍고 우아했다.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로 연주한 바흐의 모음곡 6번 D장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는 완전 5도 간격으로 조율된 다섯 현으로 이루어진 악기로, 가죽끈을 이용해 악기를 어깨 앞에 메고 활로 현을 그어 연주하는 현악기이다. 연주하는 모습은 마치 기타를 어깨에 메고 활을 통해 음을 낸다는 인상이었다. 크기가 비올라와 첼로 사이인 만큼, 포괄하는 음역 역시 전체적으로는 낮은 편이다. 비올론첼로 다 스딸라라는 악기를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바이올린보다 비올라의 음색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색다른 매력을 가진 악기로 다가왔다. 비올라보다 음역이 낮지만 동시에 바이올린처럼 높은 음역도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프는 활로 현을 긋기도 뜯기도 튕기기도 하면서 풍성한 음악적 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해 주었다.


현악 독주를 실제로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연주하는 사람은 혼자였지만 독주만으로도 무대가 가득 차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말로프의 탁월한 곡 해석 능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모험적인 시도들로 가능했다는 생각을 한다. 기술적으로는 루프 스테이션이 이를 보조했다. 루프 스테이션은 소리 일부를 녹음해 반복 재생하는 장치이다. 루프 스테이션을 클래식 공연에서 활용하는 것 역시 처음 본 광경이었다. 말로프는 악기를 손으로 두들기는 소리, 발을 구르거나 현을 튕기는 소리를 실시간으로 녹음하여 소리를 쌓아나갔다. 현악기의 매끈한 음색으로 시작한 연주는 곡의 중간부터는 웅장한 합창으로 나아갔다.


시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으로 클래식을 듣는다


나는 문학 중 서사 장르를 좋아한다. 소설과 희곡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가 조직한 세계관에 깊이 들어가는 경험은 내가 느끼는 문학이 주는 즐거움이다. 상대적으로 시와 수필은 깊이 좋아하지 못한다. 섬세한 한 단어 한 단어를 제대로 집중해 감상하기에는 내가 너무 조급하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예술이 그렇지만, 그걸 좋아한다고 해서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그냥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도 아무 문제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작년부터 왠지 시가 주는 세계관을 받아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공들여 모은 언어의 집합이 줄 수 있는 위안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을 나도 즐길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기 때문이다. 클래식 또한 나에겐 시와 비슷하다. 클래식을 즐기지 못한다 해도 문제 되는 것은 없지만 어쩐지 조급한 내가 클래식이 그려줄 수 있는 세계에 닿을 수 있다면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생각한다. 말로프의 이번 공연은 나에게 그러한 의미 있는 하나의 점으로 남았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9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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