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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소 Aug 26. 2016

감사는 ‘수단’이 아니다.

2014/10/31 _ 사사키 후미오 블로그 번역

출처: http://minimalism.jp/archives/342



사람은 누구라도, 시한장치가 붙어있는 강력한 독을 마시고 있다. 방심하면 장치는 자주 작동하여, 점점 사람을 병에 걸리게 한다. 그것은 난치병으로, 걸리게 되면 사람은 행복으로부터 멀어져 버린다. 



독의 이름은 ‘익숙함’, 병의 이름은 ‘당연함’ 



인생에서 경험한, 최상의 기쁨조차, 계속해서 기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점점 익숙해져, 차츰 ‘당연하게’ 되어버린다. 그 스피드는 경이적이라는 것을 심리학자들은 자주 이야기하고 있다. 



테니스에서 골든 슬램을 달성한 앤드리 애거시의 인상적인 인터뷰가 있다. 1992년에 윔블던에서 우승한 후 애거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윔블던에서) 우승한 저는,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승리의 기쁨은 패배의 고통에는 필적하지 못한다. 그리고 행복한 기분은 슬픈 기분만큼 길게는 계속되지 않는다. 비슷하다고마저 할 수 없죠.”(앤드리 애거시의 자서전에서) 



그리고 하버드 대학에서 가장 인기있는 강좌로 유명한 심리학자, 탈 벤 샤하르의 에피소드도 이것과 비슷합니다. 그는 16살에 스쿼시로 이스라엘 챔피언이 되었다. 챔피언을 목표로 하여, 매일 6시간에 달하는 5년간의 하드 트레이닝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러나, 우승 축하 파티 후, 귀가한 그는 자기 방에서, 오랜 세월의 꿈이 이루어진 행복이 벌써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극히 적은 사람만이 얻을 수 밖에 없는, 그런 가치의 기쁨조차 아차 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 자기 안에 순간적으로 깊이 넣어버려 ‘당연함’의 경험으로 변한다. 목적을 언젠가 달성할 수 있다면, 행복하게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하여 사람은 노력한다. 행복의 ‘조건’만 달성할 수 있다면, 행복하게 ‘될 수 있다’라고 믿으며.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면, 고수입의 동경하던 직업을 가진다면, 이상적인 연인과 결혼할 수 있다면, 아이들과 함께 가정을 이룰 수 있다면, 세계 넘버원의 스포츠 선수가 된다면, 할리우드의 스타가 된다면, 누구나가 뒤돌아보는 미녀가 된다면, 총리대신이 된다면, 대통령이 된다면. 



복권에 당첨된다면, 행복하게 ‘된다’라고 생각하여, 희미한 기대를 계속해서 안고 간다. 복권 당첨금으로 태양 빛이 내리쬐는 곳의, 훌륭한 저택에 살 수 있다면. 시시한 일을 그만두고, 아무 불안도 없이 살 수 있다면, 수영장 옆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영원히 느긋하게 지낼 수 있다면. 본인이 계속 가보고 싶었던 장소에 들러, 온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면. 



그러나, 목적을 달성하여, 겨우 다다른 것처럼 보이는 행복은 ‘익숙함’, ‘당연함’의 먹이가 되고 만다. 목적을 달성한 것만으로는, 행복하게 될 수 없다. 행복은 도착할 수 있는 정상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행복은 ‘되는’ 것이 아니다. ‘익숙함’이라는 독, ‘당연함’이라는 병으로부터 ‘행복’을 살려내어, 느끼고, 쌓아갈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 



유일한 해독제는 ‘감사’라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이든 간직해놓고 싶어한, 전혀 무언가를 버릴 수 없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내 방에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을 때, 나는 불만의 화신이었다. 



조금만 자신의 물건을 둔 것 정도로, 가득 차 버리는 방. 쓸데없는 물건 때문에 청소도 밀리기 일쑤, 방은 완벽히 더러워져 있었다. 물건을 모으면 물건을 더욱 가지고 싶어 진다. 물건의 부족함만을 보게 되어버린다. 쌓아둔 물건에 대해서도, 소홀히 다룰 수밖에 없다. 사고 싶은 물건도 사지 못하고, 두고 싶은 물건도 두지 못하는, 좁은 방이 ‘싫어’ 진다. 방을 부지런히 청소할 수 없는, 몹쓸 자신도 ‘싫어’ 진다. 넓은 방과 비교하여, 초라한 기분이 되어버린다. 



언젠가 수납할 곳이 잔뜩 있는, 넓은 방에 살 수만 있다면. 그러면, 두고 싶은 물건을 제대로 정리해서 놓자. 청소도 부지런히 하여, 자랑하는 수집품을 장식하자. 넓은 방에 살기만 한다면, 나는 행복 해질 텐데. 



이상적인 넓은 방에 이사했다고 하자. 다음에 할 일은 하나다. 공간에 여유가 생겼으므로, 더욱 물건을 모으게 된다. 넓은 방이 ‘익숙해지고’, ‘당연하게 되어’, ‘질리고’, ‘모자라게’ 되어, ‘싫어’ 진다. 그리고 더욱 ‘더’ 넓은 방을 찾는다. ‘더욱’이란 ‘익숙함’이나 ‘당연함’의 말기 증상이다. 



물건을 버리고, 미니멀을 마음에 새기면서부터 나는 자연스레 ‘감사’하는 기회가 늘었다고 생각한다. 물건을 적게 하면 적게 할수록, 하나씩 물건에 대해 의식이 가게 된다. 그것도 없어, 이것도 부족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방에는, 침대가 있고, 책상이 있고, TV가 있고, 에어컨조차 있었다. 푹 잘 수 있고, 샤워를 할 수 있고, 요리를 할 수 있고, 취미도 즐길 수 있는, 안심하고 편히 쉴 수 있는 방이 있다. 



깔끔한 방에서, 침대에 뒹굴며 천장이나 벽을 바라본다. 이상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방에 비나 바람을 막아주는 지붕이나 벽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감사는 긍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족을 하나하나 세는 것이 아닌, 타인과 비교하는 것도 아닌, ‘이것으로 괜찮아’, ‘이걸로 충분’, 하다고 ‘긍정’하는 것이다. 컵 안의 물을 ‘반이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순간, 반이 남아있는 물에게 감사하는 것이겠지. 



목적을 달성해도, 최종적으로는 ‘더욱’이라는 마수가 살며시 다가온다. ‘더욱’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없애는 것이 가능한 것이, 감사다. 감사를 잊으면, 남은 반의 물을 찾아다니게 되어버린다. ‘되는’ 것이 아닌, 이미 ‘있는’ 행복. 그 행복은 감사에 의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영속적으로 행복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젠가’ 행복하게 되는 것도 할 수 없다. 행복은 매일 ‘쌓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느끼는’ 것 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감사’야 말로 행복하게 되기 위한 비결이다. ‘감사’를 잊지 말고 습관으로 만들자. 



그렇게 실감하기 시작한 마침 그때…… <하느님과의 수다>라는 책을 읽고 놀랐다. 

‘감사할 때야말로 행복하다’ 

깊이 끄덕인다. 맛있는 요리를 먹었을 때, 멋진 여행을 즐기고 있을 때, 릴랙스 하여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행복해~~!!’라고 무의식적으로 입에 내고 말듯한, 알기 쉬운 행복한 상황에서, 우리들은 무의식 중에 감사를 하고 있다. ‘감사할 때야말로 행복하다’라는 말은, 감사를 해보면, 당장 실감할 수 있다. 



감사는 행복을 구성하고 있다. 감사는 ‘행복’의 비결이 아닌, 도구도, 수단도 아니다. 아무래도 ‘행복' 그 자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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