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란통 분투기
왼쪽 아랫배 부근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 게 몇 달 전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통증에 당황했다. 아픈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일정 주기를 두고 몰려왔다. 몇 번까지는 어리둥절한 채로 있었다. 그러다 곧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몸에서 심각한 일이 벌어지는 듯 했다. 주변을 둘러봤을 때 한 부위가 지속적으로 아픈 건 대체로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처음에 찾아간 곳은 내과였다. 의사의 권유로 위와 대장 내시경을 했는데, 무척 깨끗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이제 내시경 검진은 40살 넘어서 받으라는 말을 들었다. 의사에게 통증의 원인을 집요하게 캐묻다가 원인 모를 증상을 앓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아픈 것보다 아픈 이유를 모르는 게 더 무서웠다. 그때도 아랫배는 계속 쿡쿡 쑤셨다. 다음 병원을 찾아야 했다.
두번째로 여성의학과에 찾아갔다. 문진표를 작성하는데 여자 원장님에게 진료를 받고 싶으면 예약하고 다시 오라고 했다. 한시가 급했기에 지금 당장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원장님으로 등록해달라고 했다. 여성과 진료를 태어나서 처음 받아봤다. 한껏 긴장한 채로 질 초음파를 마치고 역시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들었다. 새로운 이야기로는 비슷한 주기로 아랫배의 한 부분이 아프다면 '배란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정도. 왼쪽 아랫배가 아픈 다음 달에 오른쪽 아랫배가 아프다면 거의 확실했다.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지금껏 배란통이 없었음을 피력했다. 의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노화가 진행되면 신체의 약한 부분에 통증이 생긴다고 답했다. 의사들의 검사 결과를 들었을 때 암일 확률은 거의 없어서 너무나 다행이었지만, 당시에 20대였는데 노화 이야기를 들으니 씁쓸했다. 물론 6년 전의 나는 몰랐다. 쿡쿡 쑤시는 정도의 통증은 고통도 아니라는 걸.
작년 어느 날부터 자다가 깰 정도로 배가 아팠다. 분명히 생리통과 동일한 통증인데 생리하는 날은 아니었다. 자기 전에 진통제를 먹어도 새벽 3시 즈음이 되면 쥐어짜는 통증을 견딜 수가 없었다. 깨면 다시 약을 먹고 잠들려고 노력하기를 반복했다. 새벽녘에 몇 번 더 강제 기상하며 알았다. 잠잠해진 줄 알았던 배란통이 더 크고 강력하게 찾아왔다는 걸.
혹시 몸에 이상이 생겼을까 싶어 6년 만에 찾은 여성의학과에서는 여전히 이상 없음 소견을 받았다. 너무 아픈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인터넷을 뒤졌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리통보다 심한 배란통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여성의 20% 정도가 배란통을 경험한다는데 내가 5분의 1의 확률을 뚫고 당첨됐다. 한달에 며칠씩 생리통에 배란통을 겪고 나면 배가 안 아픈 날이 없다는 글에 크게 공감했다. 다른 글에서는 생리통 때문에 피임약을 먹기도 한다고 했다. 배란통으로 피임약을 먹는 사람은 없는 거 같았다.
인터넷에서 찾은 배란통을 줄여주는 여러 가지 방법들 중에 어떤 게 나에게 효과가 있을지 몰라 하나씩 실험 해보기로 결심했다. 제일 먼저 실행한 건 영양제 먹기. 비타민과 유산균, 마그네슘은 이미 먹고 있어서 다른 종류로 찾아봤다. 여러 사람들이 바이텍스라는 여성호르몬 PMS 영양제를 추전하고 있었다. 바이텍스를 꾸준히 먹고 큰 도움을 받았다는 사람과 효과가 없었다는 사람이 엇비슷한 비율로 갈렸지만 일단 뭐라도 해야했다. 주문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배가 몹시 아파 잠에서 깬 새벽, 아이허브에서 샀다.
바이텍스는 용량이 40mg와 400mg가 있었는데 400mg로 주문했다. 복용법은 하루에 3번 한알씩 8주 정도 먹다가 이후 4주 동안은 하루에 두알, 12주가 지나면 한알씩만 먹는다. 설명서에는 생리 중 섭취에 대한 이야기가 없지만 사람들이 생리 때는 다들 중단한다고 해서 나도 먹지 않았다. 오늘로 37일째 먹고 있는데 아직 큰 효과는 못 봤다. 며칠 전에 굉장히 심하게 배가 아팠다. 적어도 3달은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열심히 먹어 볼 생각이다. 한통에 320캡슐이 들어있는데 이걸 다 먹기 전까지 효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배란통을 줄이기 위한 또 다른 시도는 쑥뜸이다. 생리통으로 고생할 때 한의원에서 쑥뜸을 하고 좋았던 기억이 있었는데 마침 반려인이 본가에서 쑥봉을 챙겨왔다. 찾아보니 질염에 쑥 훈연 좌욕이 효과가 있다는 글들이 보였다. 뜸이 배를 따뜻하게 해주니까 배란통 해소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다. 반려인이 본가에서 챙겨온 쑥봉으로 뜸을 떠봤는데 아주 좋았다. 그 봉들은 아주 작은 사이즈여서 연기가 귀여운 수준으로 났고 환기를 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명상 음악을 들으며 뜸 뜨는 시간이 굉장히 만족스러워서 매일 쑥뜸을 하기로 둘이서 야심차게 결의했다. 여세를 몰아 쑥뜸기와 쑥봉을 추가로 주문하려고 봤더니 연기가 나오는 유연과 연기없는 무연의 가격이 대충 3배 정도 차이가 났다. 평소에 향 냄새 맡는 것도 좋아하고 가격도 싸니까 유연으로 주문하고 배송이 되기를 기다렸다.
새롭게 온 뜸기와 봉은 마음에 쏙 들었지만 굉장한 연기를 내뿜었다. 집안 문을 다 열어 놓아도 다음 날 퇴근해서 집에 오면 묘하게 탄 냄새가 났다. 뜸 냄새 자체는 괜찮은데 담배 냄새처럼 탄 냄새가 나는 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냄새를 없애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공기 청정기를 틀어놨더니 쑥뜸을 꺼도 공청기에서 탄 내가 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공청기 필터를 교체했다.
쑥뜸의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를수록 우리의 쑥뜸 열정은 쪼그라들었다. 일단 남은 쑥봉을 다 쓰고 다음번에는 무연 쑥봉으로 사자고 다짐했다. 뜸을 매일 떴으면 배란통에 확실히 도움이 됐을 거 같은데 지금까지 대여섯번 정도밖에 하지 못해서 아쉽다. 밤새 베란다와 창문을 열어놔도 아침이 되면 거실에서 느껴지는 탄 냄새에 더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무연 쑥봉으로 적립식 건강테크 다시 도전!
복싱은 배란통을 줄이기 위해 시작한 건 아니지만 여러 모로 도움이 됐다. 배가 많이 아플 때 운동하면 통증이 가라앉는 경험을 몇 번 했었다.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방법이 아니다. 심하게 아플 땐 쉬는 게 정답이다. 통증은 정신력과 무관하다.) 그날은 복싱장에 들어가서 몸까지 다 풀었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배를 잡아 뜯는 것 같은 통증에 다시 집에 가야 하나 싶었다. 하필 운동 가방만 챙겨와서 진통제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너무 아프면 탈의실에 누워있다가 집에 가라고 했다.
탈의실로 가려다가 오기가 생겨서 그러기 싫어졌다. 잠깐씩 통증이 멈출 때 막무가내로 운동을 했다. 운동 덕분인지 통증이 지나갈 타이밍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무사히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프기 시작했을 때 바로 집에 갔으면 많이 속상했을텐데 어쨌든 운동을 끝마쳤다는 사실이 기뻤다. 앞으로는 진통제를 꼭 챙겨서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까지 생리 10일 전을 기점으로 2~3일 정도 지속되는 배란통은 위세가 대단하다. 이번 달에는 그냥 넘어가나 싶었는데 안심하자마자 크게 고생했다. 오랫동안 아팠던 부위가 그렇게 쉽게 좋아지길 기대하면 안될 거 같다. 이제 남은 방법들은 식단 조절과 환경호르몬 멀리하기 정도가 있다. 최대한 채식에 가까운 가공되지 않은 식품들을 먹고, 플라스틱 용기 제품들을 멀리하고, 화장품이나 세면용품들을 천연 소재로 바꾸는 것. 결국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배란통도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다. 아프지 않고 오래 살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written by 토핫 (핫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