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고쳐써야 하는 몸이라니

존재감을 드러내는 몸의 부위들

by 토끼와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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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넘어가면서 몸의 이곳 저곳이 아프기 시작했다. 20대 때는 술 먹고, 잠 덜 자고, 막 살아도 아픈 곳 없이 쌩쌩했다. 젊음이 한정되어 있음을 모르는 채로 십 년을 살고 삼십대를 맞이하니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전보다 체력이 떨어진 건 운동으로 열심히 메꿔보면 될 일이다. 적응하기 어려운 건 일상생활을 할 때 어딘가 은은하게 아프거나 극심하게 아픈 게 삶의 일부가 되어 간다는 거다.


회사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나누다가 자꾸 여기 저기가 자꾸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다. 50대 부장님이 웃으시면서 "그 나이에서 10년이 더 지나면 고쳐쓸 곳만 남는다"고 했다. 40대부터는 지병이라는 게 생기고 늘상 먹어야하는 약이 등장한다고, 그러니 지금부터 검사 열심히 받고 몸 관리 잘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아픈 게 시작에 불과해보였다.


신체의 한구석이 집요하게 아프기 전, 평상시의 몸은 그냥 신체로 통칭된다. 통증이 없는 게 디폴트 값처럼 느껴져서 잘 작동해주는 걸 고맙게 여기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다 아픔이 시작되면 '신체1'에서 '병명'으로 호칭이 업그레이드 된다. 나의 신체 부위들은 뒷 허벅지, 어깨, 허리에서 하지 정맥류, 석회성 건염, 허리 디스크로 진화했다. 그들은 잊을만하면 통증 신호를 보내서 "저 여기 있어요~"를 외친다.


정확한 병명을 부여 받지 않았지만 아픈 부위들도 있다. 며칠 전부터 앉았다가 일어날 때마다 '찌이익'하는 소리를 내는 무릎, 작년인지 재작년부터인지 한달에 며칠씩 몹시도 아픈 배가 그렇다. 무릎은 운동을 살살하면서 지켜보기로 타협했다가 복싱 체육관에 다니면서 아픈 기운이 완전히 가셨다. 애매하게 아플 땐 빡세게 운동하는 게 낫는 길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몇 년 전부터 아픈 배는 이유를 어렴풋이 찾았다. 통증의 강도는 한참 자다가 배가 쥐어짜는 것 같아서 깰 정도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며칠씩 잠을 설치는 게 너무 힘들다.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다시 잠들 수 없어서 약을 꼬박꼬박 먹는다. 걱정되는 마음에 내시경에 초음파에 검진을 받았는데 깨끗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기계로 몸 안을 들여다보고 마음은 안심이 됐지만 통증은 없어지지 않았다.


기계가 찾지 못한 통증의 원인은 아마도 배란통인 것 같다. 배 아픈 부위와 생리 할 때 아픈 위치가 같다. 의사도 노화가 진행되면 약한 장기에 통증이 생기는 경우가 있기에, 없었던 배란통이 시작됐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생리통보다 더 극심하게 아픈 배란통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별다른 수가 없어서 그때 그때 진통제를 먹거나 바이텍스 같은 호르몬 관련 영양제를 먹는 걸로 버티고 있었다. 나도 영양제 한 통을 주문했다. 나이를 한 살 먹을 때마다 먹는 영양제가 추가 된다.


DNA를 토대로 자연 수명을 분석해보니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의 수명이 39세 정도고 인간은 38세 정도 된다고 한다. 요즘 서른 여덟 살은 너무 젊다. 그 나이에 누가 돌아가셨다고 하면 아까운 목숨이 갔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도 받는 충격이 크다.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영양 공급과 의학의 발전이 수명을 몇 배가 넘게 늘려줬다.


인터넷에서 본 댓글에 "인간적으로 30년에 한번씩은 이가 다 빠지고 새로 나야 한다. 한번 난 치아로 70년 이상을 사는 건 무리."라고 적혀 있었다. 자연이 설계한 인간의 나이는 유치가 빠지고 30년 정도 더 치아를 쓰다가 38살에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으니 이보다 적절할 수는 없다. 자연이 정해준 시간을 거부하고 더 살기로 정했따면 몸을 아끼고 사랑해야 덜 아프게 살다가 세상을 떠날 거 같다.


연초에 연말 정산 할 때 보니 작년 의료비가 500만원이 넘게 나왔다. 다행스럽게 실비 보험이 대부분의 금액을 처리해줘서 실제로 내가 지불한 돈은 그렇게 많지 않다. 20대 때 엉망진창으로 살아서 30대 때 앓고 산다. 깨달음을 얻어서 30대 때는 열심히 관리하고 있으니 40살이 넘어가면 몸이 현상유지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더 나빠지더라도 관리를 안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다음 연말정산 땐 의료비보다 운동비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written by 토핫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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