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는 인간

영어 공부에 중독된 거 같은데?

게임으로 배우는 영어!

by 토끼와 핫도그


2020년 새해를 앞둔 19년 12월 31일. 코로나가 덮치기 전이라 북적북적한 연말 연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영어 프리패스 강의를 두고 고민 중이었다. 모 회사에서 내건 할인 이벤트에는 18만원을 내면 1년 동안 영어 강의를 무제한 수강할 수 있었다. 거기에 에어팟2를 덤으로 줬다. 마음을 잡아챈 건 에어팟이었다. 당장 영어 쓸 일이 없었지만 공부는 해두면 좋고, 공부를 안하더라도 에어팟이 본전치기를 해줄 거라고 믿으며 결제를 마쳤다. 그 뒤로 1년 반이 지나고 영어 공부 중독자가 되었다.


살면서 영어를 몰라서 불편했던 경험은 없다. 수능이나 토익은 그럭저럭 잘 쳤고 기본적인 듣기나 회화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순간순간 마음이 불편했다. 다른 분야는 모르거나 못해도 떳떳한데 영어만은 그렇지 않았다.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운 느낌적인 느낌. 술에 취한 절친이 내 영어 발음가지고 트집을 잡거나 영어로 시비를 걸 때마다 "영어 그까짓 거 모를 수도 있지 이 자식아!!"라고 시원하게 쏴주지 못한 게 영어 사대주의가 뼛속까지 쩔어있는 상태라 그랬다.


그렇게 영어가 신경 쓰이면 공부를 하면 되는데 하지 않았다. 아니, 하긴 했는데 하다 말다를 반복했다. 대학 땐 집 앞 회화 학원에 한달 등록한 뒤 3번 다니고 멈췄다. 등교 전 아침 시간 대에 학원을 등록한 게 무리수였다. 매일 술 마시던 시절이라 숙취에 쩔어서 일찍 기상하지 못했다. 저녁엔 술을 마셔야 하니까 못갔다. 다음으로 시간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전화 영어에 등록했다. 나름 몇 달을 잘 버티다가 '재미'도 '동기'도 없는 상태로 공부를 지속할 수가 없어서 그만뒀다. 중간에 영어 회화책 몇 권과 영어 애니메이션을 통채로 외우기도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누적되지 않고 모래성처럼 흘러갔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러서 인강까지 왔다.


재미와 동기로 따지자면 인강만큼 취약한 게 없다. 강제성이 없으니 프리패스 강의를 끊어놓고 몇 번 안듣고 지나가는 사람이 많을게 뻔했다. 강의 업체에서도 결제 해놓고 듣지 않는 고마운 사람들을 노렸을 거다. 그랬으니 에어팟과 비슷한 가격으로 무제한 수강 이벤트를 진행했을 터. 나 역시 미끼 상품을 노리고 등록했지만 잘 버텨서 지불한 돈보다 훨씬 더 많은 강의를 듣고 끝냈다. 더불어 영어 공부 앱까지 습관으로 정착시켰다.


집 앞 영어학원에 다니고 전화영어를 하던 시절과 인강과 영어 공부 앱을 쓰는 지금 제일 크게 달라진 건 '재미'다. 영어가 재밌어졌다. 그 차이는 게임적 요소와 공부하는 내용의 수준에서 생겼다. 인강을 결제를 앞두던 시점에 나는 '듀오링고'라는 영어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활동에 게임적 요소를 추가하는 것) 어플을 하고 있었다. 어플에서 제공하는 게임 속 영어의 난이도는 초6~중1정도 되는 수준이었다. 그 정도는 쉬우면서 게임 같으니까 흥미를 잃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적절하게 흥미를 끌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하기가 공부의 출발점이었다.


차례대로 듀오링고, 완전학습, 링고마스터. 영어 습관을 들이는데 도움이 됐다.


심심풀이로 수학 문제를 푸는 성인들도 처음에는 중학교 1학년 문제집을 고른다고 한다. 딱 봤을 때 풀어볼만 하다고 느껴야 하고, 차츰 수준을 올려야 흥미가 지속된다.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 때 토익이나 텝스를 공부했으면 금세 그만뒀을 거다. 재미없고 머리 아프니까. 듀오링고라는 쉬우면서 게임적 요소가 추가된 컨텐츠가 있어서 습관처럼 영어랑 놀 수 있었다.


다만, 듀오링고 영어 버전에는 레벨의 끝이 있었다. 듀오링고가 거의 끝나갈 시점에 다른 콘텐츠를 찾다가 인강을 발견했다. 인강을 결제하고 출퇴근 할 때 차에서 듣고, 따로 시간을 내서 매일 한개씩 강의를 들었다. 강의만으로는 아쉬워서 '완전학습'과 '링고마스터'라는 무료 앱을 추가했다. 단순하지만 게임을 하는 것처럼 공부할 수 있었다. 인강 + 영어 학습 앱으로 1년을 지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영어가 너무 재밌진 않았다. 쉬우니까 머리 식힐 때 간간히 하는 정도? 심심풀이 땅콩 정도는 됐다.


재미 없는 상태로 공부하는 시간이 1년 정도 지나자 슬슬 지겨움이 찾아왔다. 시험 없는 공부의 단점은 실력이 향상된게 눈에 안 보이는 거다. 곧 계단식 향상이 찾아온다는 건 머리로 아는데 마음이 체감하지 못했다. 영어 공부와 조금씩 멀어지려던 찰나에 cake라는 영어 교육 앱을 발견했다. 예전에 깔았다가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바로 지웠던 게 생각나서 다시 써봤는데 이번엔 재밌었다. 사실 케이크 앱 덕분에 영어 공부 중독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영어 중독자로 이끄는 케이크 앱. 무료라서 행복해요.



문장을 보며 익히는 팝송! 덕분에 다이너마이트가 요즘 최애곡이 되었다.

케이크 앱의 내용은 단순하다. 유투브 클립 내용을 보고 들으면서 핵심 문장을 따라 말한다. 발음을 듣고 AI가 A~C까지의 레벨을 매긴다. 들은 내용을 나열된 단어를 재배열하는 받아쓰기 방식도 있다. 이때 A나 B를 받으면 별을 모을 수 있는데 모은 별의 개수로 매주 리그전을 펼친다. 듀오링고랑 똑같은 리그 승급전 방식이다. 나는 리그전 순위에는 큰 관심이 없고 케이크의 복습 기능에 중독됐다. 틈 나면 케이크 앱을 켜서 뭔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잠시 주차하고 누군가를 기다릴 때, 퇴근하고 무료할 때 등등.


복습 기능도 기본 기능과 비슷하다. 유투브 클립에서 따로 저장한 문장을 말하고, 쓰고, 재배열한다. 단순해서 그런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렇게 복습하면서 문장이 저절로 입에 붙는 걸 느꼈다. 유투브 클립에서 따온 문장들이라 살아있는 원어민 영어를 익힐 수 있다. 또, BTS 노래 Dynamite도 케이크 앱을 통해 제대로 가사를 들었다. 신곡인 Butter도 앱을 통해 배우는 중이다. 살면서 팝송은 거의 듣지 않았는데 케이크 앱 덕분에 이것 저것 들어보고 있다. 윤여정씨 오스카 수상 소감도 몇 개의 문장을 저장해서 복습하다보니 입에 붙었다.



하루에 영어를 듣고 보는 시간을 따져보니 3~4시간 정도 된다. 출퇴근 때 듣는 강의, 영어 앱으로 공부하는 시간들, 각잡고 강의를 듣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그렇다. 작년에도 하루에 2~3시간은 영어를 하며 보냈는데 지금과 사뭇 달랐다. 그땐 마지못해 했는데 지금은 다른 걸 제쳐놓고 영어 앱을 켠다. 자투리 시간들이 모이니까 상당히 큰 시간이 됐다.


얼마 전에는 영어에 빠져사는 사람들이 겪는다는 영어로 꿈꾸기를 해봤다. 꿈이었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과 영어로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아직 내가 영어 마스터다! 영어를 너무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본다. 이렇게 1년 반 정도가 더 지나면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재밌으니까 아마 될 거다.


written by 토핫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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