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는 인간

식구,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

by 토끼와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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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나는 6살 차이다. 6살 터울은 나와 동생에게 참 애매한 숫자였다. 내가 초등학생 때 동생은 이제 겨우 말을 하기 시작했고, 내가 중, 고등학생 때 동생은 초등학생이었다. 동생은 나와 함께 놀고 싶어 했지만, 내게 그녀는 어리고 시시한 존재였다. 같이 노는 게 아니라 내가 동생과 놀아줘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6살이란 차이는 나와 동생 사이를 갈라놓는 강과 같았다. 동생은 가끔씩 강을 건너오려 했지만 나는 굳이 강을 건너서 동생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내가 대학을 타 지역으로 가면서 동생과의 교류는 완전히 끊겼다. 가끔씩 집에 가서 동생 소식을 듣는 것으로 자매의 연을 이어갔다. 직접적인 연락은 생일 때나 한 번씩 했다. 온갖 말썽을 부리고 다니는 동생이 언제쯤 정신을 차릴까 걱정되긴 했지만 심각한 고민은 아니었다. 동생을 걱정하는 부모님을 걱정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부모님이 내게 항상 말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니까. 동생은 동생의 삶을 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름만 자매였던 동생과 진짜 식구가 된 건 올 해 초부터다. 동생은 대학에 등록해놓고 출석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부모님께 연락하기 전까지 우리 가족은 동생이 대학에 잘 다니는 줄로만 알았다. 부모님은 동생이 20살 넘어서도 정신 못 차린다고 푸념했다. 그러다가 나에게 동생을 서울로 데려가라 명하셨다. 동생의 서울 상경은 새로운 동거인을 구해야 하는 내 상황과 맞아 떨어졌다. 서울 상경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의외로 동생도 순순히 승낙했다. 동생과 함께 사는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이사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동생과 함께 산다는 건 모험에 가까웠다. 동생은 중학교 시절부터 학교에 제대로 출석한 적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한 달 이상 지속한 적도 없었다. 그녀의 삶은 즉흥연주곡 같았다. 시간표대로 살아가는 나와 즉흥연주곡 같은 동생이 한 집에서 살면서 불화 없이 잘 지낼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잘 살아 보자"고 이야기했어도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성급한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동거는 꽤나 성공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동생은 상경 직후 직장을 구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다니고 있고, 그간 보여줬던 모습과는 180도 달라졌다. 동생의 말에 따르면 직장 내 평판도 좋은 편이라고 한다. 김장철에 직장동료들로부터 많은 양의 김치를 선물 받은 걸 보면 동생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 듯하다. 나도 동생과 살며 요리와 집안 살림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나와 자취한지 7년만의 일이다. 저녁마다 라면을 먹는 우리가 처량해 보여서 한 선택이었다. 둘이 매일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가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에서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식구'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의 행동이었다.


2011년까지 동생은 가끔 명절 때나 보는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 동거를 시작한지 1년, 그녀는 내게 더이상 시시한 존재가 아니다. 귀가 시간을 묻고, 식사를 마쳤는지 궁금해 한다. 영화를 함께 보고, 쇼핑도 함께 한다. 별 거 아닌 일들이지만 사소한 일상의 공유로 식구의 끈끈함을 느낀다. 나는 이전까지 가족이란 관계에 회의적이었다. 올 해 1년으로 생각이 변했다. 일상을 공유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그런 존재와 미래의 언젠가 식구가 되고 싶어졌다.




이 글은 2013년 1월 1일에 작성했다. 동생은 무럭무럭 커서 얼마 전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축하하고, 앞으로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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