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뒤 우리는 이 세상에 없어요>를 읽고
운전을 하면 1시간에 한 두번씩은 크게든, 작게든 화가 난다. 일상적인 생활에서라면 이렇게까지 자주 화 낼 일이 없다. 나름 평온하게 사는데 운전대만 잡으면 뇌 안에 꺼져있던 어딘가가 활성화된다. 옆차가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하거나, 앞차가 꾸물대다가 자기만 신호를 받고 나는 빨간불에 걸리면 내 안의 난폭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그렇다고 보복 운전이나 칼치기를 하는 건 아니다. 운전석에서 혼자 화를 낸다. 차안에서 씩씩대는 걸 누군가 본다면 하찮아서 웃을 거다.
자주 화가 나는 데 나름의 변명 거리는 있다. 내 차가 '경차'라는 것. 경차 운전자로 살며 은은하게, 때로는 대놓고 느끼는 도로에서의 차별과 무시가 스트리트 파이터 하나를 키워냈다. 온 마을이 아이 하나를 키운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내 차를 몰았을 때와 다른 차를 몰았을 때 달라지는 상대 운전자들의 태도를 경험하고 나니까 사소한 상황에도 부글부글 끓는다. 원숭이도 다른 원숭이와 차별을 하면 화를 낸다는데 하물며 나는 사람이니 더더욱 화가 많아질 수밖에.
처음에는 차별받는다고 생각해서 시작된 분노가 이제 습관이 되었다. 정말 아무 때나 화가 난다. 1차선만 있는 도로에서 앞 차가 세월아 네월아 하며 천천히가면 버럭이가 뛰어 나온다. 출퇴근 길의 절반 정도를 1차선 도로를 타는데 앞차의 속도에 따라 도착 시간이 달라지는 걸 몇 번 경험하고 나서 화나는 게 더 심해졌다. 내가 뒤에서 아무리 혼자 썽 내도 앞차는 알아주지 않는데 말이다.
무탈하게 감정의 기복 없이 운전하는 날이 점점 적어지던 어느 날, 우연히 읽은 책 덕분에 운전 습관을 돌아보게 되었다. 초보 때의 뚝딱거림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완전히 무의식적 행동으로 넘어간 운전 과정을 탈탈 털어봤다. 사이드 풀고, 기어 바꾸고, 출발하는 상황까지는 가치 중립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 뒤부터는 엉망진창이다. 앞 차가 (내 기준) 이상하게 운전하면 화내기, 빨리 가려고 노력하기, 사고날뻔 하면 갑작스럽게 분노를 표출하기 등등. 운전이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부정적인 이미지들만 떠올랐다.
계속 생각하자 가빠진 호흡으로 핸들을 부여잡다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뿅하고 차분하게 돌아오는 모습도 발견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스트레스에서 깨끗하게 해방된다. 화 낸다고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는 것도 아니고 운전하는 동안 셀프로 스트레스를 받고 끝나는 거다. 이렇게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내 차에 자주 동승하는 A는 내가 운전할 때 화를 내면 사고가 날까봐 무섭다고 했다. 차만 타면 헐크로 변신하는 병에 걸렸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100년 뒤 우리는 이 세상에 없어요>에서는 덜 공격적인 운전자가 되어보라고 한다. 침착하게 운전하기. 앞 차가 이상하게 운전하면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를 떠올리라고도 했다. 말만 들으면 거의 수도승의 도 닦는 자세 같은데 이런 태도가 삶에 도움이 된다. 지금껏 운전하면서 상대방과 싸워본적은 없지만 양보운전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누군가와 다툼이 일어날게 분명하다. 여태껏 무사고, 무다툼으로 운전한 것도 운이 좋았다.
차를 움직이는 습관적인 과정 중에 의식적인 문구 하나를 넣었다. 기어를 D로 바꾸면서 "오늘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한다"를 왼다. 주문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화가 덜 난다. 물론 아직까지 완전히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운전하지는 못한다. 느닷없이 버럭이가 튀어나온다. 그럼 심호흡을 하며 이건 화 낼 만한 일이 아니라고 토닥인다. 감정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진정된다.
또 다른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출근 시간 앞당겼다. 10~15분 정도만 빨리 나와도 길이 훨씬 덜 막힌다. 차가 적으니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당하거나 끼어들어야 할 일도 없다. 늦게 도착할 확률이 줄어들어서 마음이 편해진 것도 도움이 됐다. 덕분에 기상 시간이 20분 정도 빨라졌지만 미라클 모닝을 하는 느낌이 나서 괜히 기분이 좋다. 퇴근 시간 앞당기기는 내 의지 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열심히 마음을 다잡는 걸로 대체하기로 했다.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아무 말 없이 화가 풀릴 때까지 얼음 평원을 걷고 또 걷는다. 그렇게 걷다가 화가 다 풀리면 비로소 멈춰서서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을 되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평화와 용서를 배운다고. 운전을 하다가 분노에 휩싸일 때 차에서 내려서 걸을 수는 없으니 마음 속 길을 걸어봐야 겠다. 오늘부터 의식적으로 조금 덜 공격적인 운전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written by 토핫 (핫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