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십 수년 전에는 '수학의 정석'이 수학 과목의 필독서였다. 정석 기본 편을 여러 번 풀어서 일정 수준의 모의고사 등급이 나오기 시작하면, 실력 편으로 고정 1등급을 만드는 게 일반적인 수학 공부 방식이었다. 정석 책은 사이즈가 적당하고 하드 커버라 졸릴 때 베고 자기에도 좋았다. 책 내적, 외적으로 쓸모가 많아서 다들 정석을 샀다. 수능 치기 직전까지 항상 팔에 끼고 다닌 덕분에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재테크의 바이블, 재테크의 정석
투자 공부를 시작하면서 투자 계의 바이블, 투자 계의 정석으로 불리는 책들이 있는 걸 알았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부의 추월차선>, <보도섀퍼의 돈> 등등이 널리 알려진 재테크 입문자들이 읽을 만한 투자자의 마음 가짐에 관한 책들이다. 내가 이 책들을 접하게 된 건 재테크의 '재'자도 모르던, 소비요정으로 활약하던 시절이었다.
재작년 겨울, 한창 재테크에 심취해있던 후배 A가 소비왕 타이틀을 놓고 다투던 나와 다른 후배 B를 앉혀놓고 우리를 계몽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창 밖에 눈은 푹푹 내리고, A의 한숨도 푹푹 나리고, 나와 B의 해맑은 응앙응앙이 방을 채우고 있었다. A의 열정적인 재테크 기초 강의에 "우와 너 그거 다하고 있는 거야? 진짜 대단하다" 처럼 기계적 리액션이 전부였다.
1박 2일의 술자리가 끝난 후, A가 단톡방에 재테크 추천도서 목록이라고 페이지 하나를 찍어서 올렸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오늘 확인해 보니 '너바나'씨가 쓴 <나는 부동산과 맞벌이 한다>의 추천도서 페이지였다. 그때는 너바나씨가 누구인지 몰랐고 목록에 써 있는 책 중에서 읽어 본 책이 한권도 없었다. 책 꽤나 읽는다고 자부하던 시절이라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갔다. 리스트에 1번으로 올라와있던 책이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였다.
부자의 첫 걸음은 투자자 마인드 갖기
기요사키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간단하다. '근로소득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으니 나 대신 일할 로봇, 파이프 라인을 만들어라'이다. 처음 책을 읽고 도끼로 머리를 맞는 느낌이 들었다. 살면서 카프카가 말한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책을 종종 만났지만 이 책은 내가 모르던 세상을 보여줬다. 많은 사람들의 꿈이 건물주인 것과 저자가 말하는 파이프 라인 만들기가 결국 동일한 맥락이었다.
나 역시 로또 당첨과 건물주가 꿈이었다. 은퇴하기 전까지 매일 일하다가 나이 들어서 은퇴하고, 그 다음엔 노후 파산을 걱정해야 하는게 남은 인생이라니, 조금 맥이 빠졌다. 월급 외에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면 더 즐겁게 회사에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상상만해도 엔돌핀이 돌았다. 부자가 되는 망상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다가 늦게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부자가 되고 싶은데 알고 있는 방법이 로또 뿐이었다. 기요사키의 파이프 라인을 보면서 주식, 부동산, 사업,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깨달았으니 행동하면 좋으련만 당장 시작하기에 문제가 있었다. 투자가 너무 무서웠다. 예금, 적금의 차이도 모르는 재린이(재테크+어린이의 합성어)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투자는 너무 어려운 길이었다. 여기에 투자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부모님의 조기교육이 내면의 걸림돌이었다.
아버지는 정년까지 회사에 다닌 운좋은 케이스지만 투자에서는 대차게 실패했다. imf 때 빚 내서 주식 투자 했다가 거하게 집을 말아 먹었다. 그 뒤로 '주식 = 집안 거덜내기' 공식이 머릿속에 박혔다. 우리집에서 투자는 금기어였다. 사람은 경험적 지식에 의존하는 동물이다. 기존의 지식을 깰만큼 강력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는한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부모님은 늘 월급을 모아 집을 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길은 떠올릴 수 없었다.
무한한 걱정과 한없는 소심함을 가졌던 내가 거침없이 투자를 하게 된 건 함께 투자하는 S 덕분이다. S는 투자 책을 몇 권 읽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S가 먼저 투자하고 안전하다는 판정을 내리면 내가 뒤따라서 투자를 하는 식이었다. 첫 P2P투자를 시작으로 펀드, ETF, 주식, ELS까지 전부 같은 방식이었다. S가 선 투자한 다음 '여어~ 어서 따라오라구!' 하면 내가 후 투자를 했다. 이후에 스터디를 통해 각자의 내공을 쌓으며 함께 분석하게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여전히 새로운 분야에 투자할 땐 S가 선봉에 나선다.
또, 투자자 마인드를 갖는데 300권 이상의 책이 도움을 줬다. 어떤 분야든 저평가된 가치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는 확신이 들자 이전에 없던 과감함이 생겼다. 책에는 내가 찾아 헤매던 부자가 되는 길이 나와있었다. 그것도 엄청 다양한 방법으로! 앞으로도 책을 통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투자하는 공부형 투자자가 될 생각이다. 요즘은 유투브에도 좋은 공부 거리가 많다고 S가 손짓하는 중이다. 나는 인강 세대니까 유투브를 인강으로 보고 접근하면 적응하겠지 싶다. S와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다.
재테크 공부하기 전까지는 타인과 돈 얘기하는 게 불편했다. 나는 대체로 '돈에 관심없어요'라고 말하는 타입이었다. 속으론 부자가 되고 싶고, 늘상 마이너스가 뜨는 생활비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지만, 겉으로는 돈에 무신경한척 살았다. 부자는 탐욕스럽고 부조리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을 거라는 편견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돈에 관심없다는 사람들이 제일 돈에 미친 사람일 수 있으니 조심하자.
돈 공부를 시작하며 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버렸다. 불투명한 잿빛으로 보였던 미래가 조금은 투명해졌다. 부자들이 괜히 부자가 된 게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이 세상에 쉽게 버는 돈은 없다. 내가 투자하는 방식들이 맞으니 이대로 가면 언젠가 대성공이 올거라는 반 확신, 반 기대가 있다. 중간 중간에 실패하겠지만, 실패 끝에는 반드시 성공이 있다. S와 함께해서 재밌고 신나는 재테크 모험이다.
written by 토핫(핫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