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꾸준하게 하면 뭐가 될까

상위 10% 안에 드는 방법

by 토끼와 핫도그


'무조건 상위 10% 안에 드는 방법'이라는 인터넷 글을 읽었다. 자극적인 제목에 내용은 더 자극적이었다. 글쓴이는 뭐든 100일 동안 매일 꾸준하게 하면 상위 10% 안에 든다고 장담했다. 간단한 성공 방법이지만 그만큼 꾸준하게 하는 사람이 없다는 소리였다. 같은 자리에서 매일 하면 상위권에 들어갈 수 있다니 별다른 재능이 없는 회사원에게 기회가 생긴 기분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속하는 게 어렵다. 오죽하면 성실도 재능이라고 말할까. 1월이 되면 헬스장이나 영어학원이 북적거린다. 헬스 기구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학원에 빈자리가 없다. 한 달이 지난 2월이 되면 헬스장과 강의실에 빈자리가 보이고 두 달이 지나면 절반 정도가 사라진다. 3개월 뒤에는? 처음에 왔던 사람들 중 대부분이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거기서 살아남는 10%는 왕초보 딱지를 떼고 초급반으로 진급할 수 있다.


얕고 넓은 관심사와 짧은 지속력이 내 특기였다. 좋게 말하면 순간 집중력과 몰입도가 좋은 거고, 나쁘게 말하면 성실성이나 지속성이 빵점이란 소리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시험공부는 벼락치기로라도 하는데 꾸준히 하는 일은 쥐약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행적은 꾸준함이나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상위 10%로 가는 길은 이대로 끝이 나는가.


2년 전 겨울 투머치 토커인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새해를 앞둔 연말 즈음이었다. 의례적인 덕담이 오가던 와중에 아빠가 한마디를 꺼냈다.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취미를 만들어. 그럼 인생이 더 즐거워질 거야.' 음주 말고는 딱히 취미랄 게 없었던 시절이었다. 나이 들어서까지 뭘 하면 재밌을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길게 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흥미가 있으면서,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그런 게 뭘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대체로 모든 취미가 이 조건에 부합했다. 운동이든 공부든 예술이든 끝이 없으니까.



아빠의 덕담을 들은 날부터 현재까지 시도해 본 것들은 운동, 글쓰기, 재테크 공부, 책 읽기 등이 있다. 살면서 한두 번씩 신년 계획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가 금세 열정이 식은 종목들이다. 이번에는 놀랍게도 네 가지 모두 진행 중이다. 실패하던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현 비혼 메이트 전 술친구 S와 스터디를 꾸렸기 때문인 듯싶다. 중학생 시절에도 혼자 하는 과외보다는 친구들과 같이 다니는 학원이 적성에 맞았다. 떡잎부터 친구 따라 강남 갔던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주변인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네 가지 영역 모두 엄청나게 발전했다. 상위 10% 안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왕초보 딱지는 뗐다는 거다. 작년 말 무렵 블로그에 처음 글을 끼적이던 시절에는 눈 뜨고 못 읽을만한 수준의 망글을 썼다. 자괴감이 드는 글을 생산하면서도 못 본 척 눈 감고 계속 쓴 덕분에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초반에 쓴 글을 읽고 실망해서 포기했으면 인생의 다음 페이지는 없었을 거다.


재테크 공부도 성과가 있었다. 2년 사이에 몇 백 억대 부자가 되었고 경제적 자유를 얻어서 회사를 그만두는 내용의 빅 이벤트가 있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는 중이다. 다만 재테크 공부 자체가 재밌다. 매일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게 신나고 배운 걸 실천하면서 자산이 증가했다. 회사에 매여있던 인생의 시야가 바깥세상으로 넓어진 것도 좋은 점이다. 성공할 때까지 부단히 실패해야겠다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생긴 것도 재테크 공부하면서 얻은 수확이다.


운동은 남들 성장 속도보다는 늦지만 한 단계 레벨 업했다. 몇 년 전까지는 회사에서 워크숍으로 등산에 가면 온갖 핑계를 대고 근처 카페에서 죽치곤 했다. 몸을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일이라곤 숨쉬기뿐이었으니 말 다했다. 헬스와 등산을 주기적으로 하면서 체력과 운동신경이 좋아졌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회사에서 등산을 못 가는 게 아쉽기까지 하다. 헬스장에서 무거운 무게를 가뿐히 들지는 못해도 팔 굽혀 펴기가 20개까지 가능해진 걸 보면 몸이 바뀌긴 바뀌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화. 슈퍼 거북



‘뭐든 꾸준히 해보기’가 바로 상위 10%의 결과를 주진 않았지만 대신에 다른 걸 선물했다. 바닥 언저리에 있던 자존감이 올라갔다. 어떤 일을 시도할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내면의 목소리들이 있었다. 어차피 하다 말 건데 굳이 시도해야 할까, 해봤자 얼마나 잘되겠어, 괜히 시간 낭비일 테니까 하지 말자. 부정적인 의견들은 낙관적 견해보다 힘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했고, 대체로 부정적인 예측을 따랐다. 지금은? 시도하면 적어도 초급 딱지를 뗄 떼까지는 해볼 테니 주저 없이 도전하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인다.


2년 전에 평생 갈 취미를 찾으라던 아빠는 소일거리로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셨었다. 앞선 두 차례 시험에서 낙방하시고 세 번째 시험만에 드디어 최종 합격권에 들어가셨다고 한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하면 뭔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셨다. 나도 현재하고 있는 것들의 끝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일단 계속 keep going!


written by 토핫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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