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는 필요하지 않은 '소비는 최대한 줄여보자'라는 기조로 살았다. 돈 공부를 시작하면서 소비를 통제해야 해서가 시작이었다. 어느새 소비를 줄이는 게 통제가 아니라 습관이 되고 나니 다른 차원에서도 소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핫한 제로 웨이스트 운동,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만드는 환경오염, 지구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뉴스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육식을 최대한 줄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천으로까지 잘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최소한의 소비를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소극적인 차원의 환경운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는 물건을 살 때 꼭 필요한 물건만 구매하고, 집에 있는 물건을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아껴서 잘 쓰고,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물건은 정말 잘 샀다 하는 물건이 올 한 해 5개 정도 있다.
이름하여 '올해의 잘한 소비상'. 심사위원은 나와 나의 반려인 K이다.
집을 꾸미면서 낮은 가격으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도배를 다시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전셋집에 함부로 못질하기도 어려운 상황.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나의 결정은 '조명'이었다. 그 전에는 보통의 평범한 LED 사각형 모양의 전등이 달아져 있었는데, 이 전등을 과감한 펜던트 등으로 교체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집 인테리어는 화이트/베이지/라탄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과감한 라탄 조명을 설치해보기로 했다. 작은 거실에 큰 조명이 들어가면 혹시나 답답해 보이지 않을까? 좀 더 작은 조명을 사야 하는 건 아닐까? 거실 등은 역시 백색 등이어야 하는데 주황빛 등을 하면 어둡지 않을까? 등 여러 가지 걱정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단행했고 결과는 대 성공이다.
조명이 주는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좁은 거실이어서 등이 커지면 더 좁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오히려 거실 안에 조명이 부각되면서 더욱 카페 같은 느낌을 준다. 집들이를 할 때 가장 먼저 사람들이 보고 우와~ 하는 것도 바로 이 조명이다.
어두울까 봐 걱정했던 건 부엌과 현관 쪽의 백색 등을 함께 켜거나, 스탠드 조명을 함께 키면 해결이 된다. 밤에 친구들이 놀러 와서 대화를 나눌 때에는 다른 조명을 다 끄고 이 펜던트 조명만 켜면 천장에 꽃 같은 격자무늬 조명이 그림자 지면서 분위기를 만든다.
조명은 생각보다 쉽게 질리지 않으며,
교체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훨씬 쉽고,
이 노력에 비해 집에서 교체된 조명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효용은 무궁무진하다.
집에 들어올 때, 집에서 책을 읽을 때, 모든 순간에 이 조명의 존재감이 작용한다. 집 인테리어의 꽃이자 내 만족도를 200% 올려준 조명은 올해 잘 한 소비 5위다. 볼 때마다 예뻐서 아주 기쁘다.
작년 이맘때쯤만 해도 글쓰기가 이렇게 생활화되어있지 않았다. 회사에서 컴퓨터 쓰고, 집에서는 핸드폰을 보면 된다고 생각했던 내게 K가 노트북을 구매할 걸 추천했다. 유명한 노트북 가격을 찾아보니 100만 원 정도나 되는 고가의 물건이기도 하고, 꼭 필요성을 못 느끼겠어서 나는 정작 미적미적하고 있었다.
그때, 노트북을 사면 분명 우리의 목표 중 하나인 글쓰기가 습관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K가 나를 설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글쓰기는 상상 속에 머물러있고, 블로그를 개설했지만 2달에 글 하나 정도를 쓰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가격대가 비싸서 고민하고 있던 찰나, 가성비 좋은 노트북을 K가 추천해줬다. 가격이 합리적이고, 가볍고, 내 주 목적인 인터넷 서핑과 글쓰기 정도의 일을 하기에는 부족할 것이 없는 노트북이라고 했다.
LG GRAM과 한성 노트북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합리적인 가격의 노트북을 구입하기로 결정, 집으로 노트북이 왔다. 결과는? 노트북과 함께 재테크 일기 쓰기가 습관이 되고, 브런치에도 꾸준히 글을 쓰게 됐다. 습관을 만드는데 매체의 도움도 크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소비다. 노트북을 구입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꾸준히 글쓰기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구매한 지 반년 정도 되었고 쓰면서 불편한 점은 1도 없다. 가볍고, 들고 다니기 편하고, 속도도 빠르다. 올 해의 잘한 소비 TOP 4에 당당히 랭크할 만하다.
게임, 게임기 종류와는 아예 일면식도 없이 살아온 2N 년의 삶, 코로나로 야외운동이 힘들어진 뒤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혜성같이 나타난 존재가 바로 링 피트! 집에서 근력운동을 게임하듯 꾸준히 할 수 있다는 후기를 읽고 40만 원 정도 되는 비용이지만 PT값이라고 생각하고 K와 함께 각자 20만 원 정도를 투자해서 구매했다.
보통 닌텐도를 구입하고 링 피트만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하는데, 우리 둘은 정말 링 피트만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헬스장에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링 피트는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는 든든한 운동기구다.
링 피트의 장점은 아래와 같다.
- 레벨이 올라갈수록 다양한 운동 자세들이 나와서 질리지가 않는다.
- 게임하듯 미션을 깨나 가기 때문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집에서 운동을 할 수 있다.
- 약간의 유산소 + 전신을 사용하는 근력운동을 할 수 있다.
주 많으면 4회, 적으면 1회 정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생각보다 강도도 높아서 링 피트를 하고 나면 운동복이 땀으로 젖고, 숨을 헐떡이며 끝낸다. K는 헬스를 할 때 너무 힘들면 들렸던 이명 삐- 소리가 링 피트를 하고도 종종 들린다고 하니 운동 효과는 확실한 듯싶다.
요가 자세(경첩 자세, 전사자세 등), 필라테스 자세(링콘 허벅지 조이기 등), 헬스 자세(스쾃, 마운틴 클라이밍, 런지, 크런치 등) 등 다양한 운동의 자세를 끊임없이 습득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단점이 있다면 중량을 올릴 수 없다는 것. 무게를 올려가면서 운동의 강도를 올릴 수는 없어서 그 점은 아쉽다. 그래도 운동 강도를 올려서 더 힘들게는 할 수 있다.
링 피트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가 지났고, 아직까지도 꾸준히 하고 있다. 지금 레벨이 50대 정도까지 왔는데 레벨 100이 넘을 때까지 계속할 수 있다니 몹시 만족스럽다. 헬스 비용, PT 비용과 비교했을 때도 경쟁력이 있다. 코로나 시대에 운동을 위한 훌륭한 대안이 되어준 링 피트가 올해 잘한 소비 상 3위다.
내 별명은 물 먹는 하마다. 물을 많이 마신다는 소리다. 둘이 함께 살면서 물을 많이 마시는 내가 추가되니 하루에도 물을 마시는 속도가 엄청났다. 매일 2L 페트병 1개를 비우는 건 예삿일도 아니었다. 이마트에서 미끼상품으로 파는 2L짜리 페트병 생수를 늘 무겁게 집으로 사 왔다. 물 꾸러미를 마트에서 사서, 차에 실어서, 낑낑대며 집으로 가지고 올라오는 과정도 힘들었거니와 매번 물을 먹을 때마다 베란다에 나가서 물병을 하나씩 가지고 들어오는 것도 번거로웠다. 더 번거로운 것은 물을 마실 때마다 나오는 페트병이었다. 분리수거의 최고 부피를 차지하는 페트병이 늘 물을 마실 때마다 나왔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너무 많이 만들어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만나게 된 게 바로 '브리타 정수기'다. 브리타는 플라스틱 물통 본체에 필터를 주기적으로 갈아 끼우는 정수기이다. 본체는 망가지지 않는다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필터만 4주에 한번 혹은 150L의 물을 정수하고 나서 교체하면 된다. 4인 가구는 4주에 한번 필터를 교체하면 얼추 150리터 정도를 마실 수 있을 텐데 2인 가구인 우리는 한 달 동안 고작 50리터를 마셨다. 2리터 생수병으로 생각하자면 25병을 마신 셈이다.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 통이 비어있는 걸 볼 때마다 뿌듯하다. 일반 정수기와 달리 정수기를 통째로 자주 씻을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정수기 덕분에 텀블러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로봇 청소기는 허풍을 조금 보태서 우리 집의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로봇 청소기 말씀하시길 바닥에 광이 있으라 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졌고, 먼지가 사라져라 하시면 그 말씀 또한 이루어졌다. 집이 365일 깨끗할 수 있는 건 모두 로봇 청소기 덕분이다. 물걸레 청소기를 사고 나서도 청소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로봇 청소기가 오고 나서 청소 부담이 완전히 없어졌다. 부모님 댁에 선물로 드리면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에 제일 좋아하실 거 같다.
6월 초에 우리 집에 온 뒤로 79시간 청소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청소할 거라고 앱에 알림이 뜰 때마다 속으로 어찌나 기특한지 모른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청소했어도 이만큼 청소 못했을 거다. 기능이 점점 좋아진다고 하지만 물걸레 + 진공 청소 기능만 있으면 오케이다. 살살 닦는 것처럼 보여도 매일 닦으니까 묵은 때도 닦인다.
로봇청소기의 모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청소기는 동그랗게 생겨서 각진 모서리 부분을 청소하지 못한다. 종종 코너 부분이나 청소기가 못 들어가는 부분만 물걸레 청소기로 닦아주면 쾌적하고 깨끗한 집을 유지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 만세다.
올해는 물건을 살 때 꼭 필요한 지 오래 고민하고, 철저한 가격 비교 분석이 끝나야 결제했다. 로봇 청소기는 2년이 넘는 고민 끝에 샀고, 링 피트도 6개월 가까이 지켜보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실패한 소비가 하나도 없었고 물건에 대한 만족도도 굉장히 높았다. 사고 싶은 걸 참는다는 생각에서 물건을 지켜본다는 관점으로 바꾸니까 소비 충동을 잠재우는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도 충동구매 대신 계획 소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