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이웃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또 시작이다. 매일 아침 5시 20분이 되면 어김없이 들리는 저 소리! 윗집에서 모닝콜로 맞춰 놓은 진동 소리가 내 귓가를 파고든다. 몇 달 전부터 종종 윗집과 같은 시간에 기상하고 있다. 주말에도 예외는 없다. 이때 잠에서 깨버리면 분노에 휩싸여서 하루를 시작하는 정신적 고통과, 하루 종일 피곤이 어깨 위에 올라타있는 듯한 육체적 고통이 덤으로 따라온다.
처음 진동 소리에 잠을 깼을 때는 아파트 시공사를 욕했다. 아무리 아파트가 벽을 얇게 공사한다지만 다른 집에서 나는 진동 소리가 내 머리맡에서 나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린다고? 바로 옆에서 나는 것 같은 소리인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네, 가능한 일입니다. 어서 순응하시고 다시 잠에 드시지요. 운 좋게 다시 잠에 들어도 그날은 개운하게 잔 느낌이 안 든다.
대략 이십년도 더 전에 아파트를 공사한 업체를 욕해봤자 남는 게 없었다. 다음에는 옆집으로 화살을 돌렸다. 층간 소음보다는 벽간 소음이 아닐까 싶었다. 옆집에 쪽지를 붙였더니 자신들도 그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엄한 집을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꾸벅. 다음날 진동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윗집이 확실했다. 이웃님은 이른 시간에 상쾌하게 기상하고 발망치를 울리며 우렁차게 걸어다녔다.
어제는 야심차게 편지를 써서 윗 집 문 앞에 붙이고 왔다. 아랫층이란 걸 밝히고 부탁드린 말도 썼다. 오늘은 제발 무사히 넘어가길 기도하며 잠들었건만! 여지없이 5시 20분이 되자 진동 소리가 들린다.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혹시 진동 소리의 범인이 윗집이 아닌 건가? 다른 집을 의심하기엔 위에 들리는 생활 소음이 이어진다. 내 편지가 광고지인줄 알고 열어보지도 않고 버린 건가. 어제도 깬 다음 이런 저런 생각에 다시 잠들지 못했는데 오늘도 그랬다.
짧은 진동이면 다시 잠들 수 있다. 정말 괴로운 건 10분 간격으로 진동이 울릴 때이다. 5시 20분, 30분, 40분!! 이런 진동은 짧게 끝나지 않고 계속 울린다. 아침 잠이 얼마나 소중한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 때문에 화내면서 다시 잠들지 못하면 안돼. 릴렉스-. 침착하게 심호흡해도 분노에 휩싸이면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여자 둘만 사는 집이라 가급적 다른 집과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참는 방향으로 애썼다. 귀마개를 끼면 안들릴까 싶어서 시도해봤는데 너무 불편해서 자다가 나도 모르게 빼버렸다. 새벽에 다시 들리는 진동 소리에 분노하며 기상. 윗집에 편지를 썼지만 편지를 확인 했는지 여부도 파악되지 않고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남은 일은 뭐가 있을까. 고민 끝에 편지를 써서 공개적으로 붙이기로 했다.
윗집이 아니라 윗 옆집이 문제일 수도 있으니 이 편지가 해결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에는 아침 6시 30분 즈음이 되면 청소기를 사용하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해서 괴로움이 배가 됐다. 아파트는 생각보다 방음이 안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나조차도 아랫 집에서 여러 가지를 참아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지속적인 소음 유발로 편지나 쪽지를 받아본 적은 없으니 괜찮은 걸로.
내가 마동석처럼 생긴 남자였으면 별 고민없이 윗집 벨을 눌렀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있다. 아랫집에 사는데 괜히 윗집 심기를 거슬러서 소음을 더 유발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있다. 우리는 문명인이니까 대화와 편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핸드폰 알람을 벨소리로 바꾸거나 놓는 위치를 바꾸는 건 정말 쉬운 일이니까 말이다.
이사 오기 전 아파트에서는 옆집에서 키우는 개가 짖는 소리 때문에 고통에 시달렸다. 그 친구의 우렁찬 짖음에 노이로제가 걸려서 덕분에 한동안 갈색 푸들만 보면 경기를 일으켰다. 그래도 그 개는 새벽에 짖은 적은 거의 없었다. 잠은 자게 해준 걸 보면 자비가 많은 개였던 것 같다. 새벽 진동 소리와 시도 때도 없는 개 짖는 소리, 둘 중에 뭘 선택할 거냐고 묻는다면 층간 소음, 벽간 소음 둘 다 거부할테지만 현재로서는 벽간 소음이 좀 더 나았던 거 같다.
신기한 건 나만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한다. 반려인 S는 진동 소리가 들리지만 곧 다시 잠들 수 있다고 했다. 오늘은 진동 소리가 꽤 길었군. 이정도의 반응이 전부다. 어떻게 이렇게 평온한 거지? 너는 정말 나와 다른 사람이구나. 필요한 사람이 구한다고 시끄러워 못 견디겠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새벽에 깨서 울분에 차서 썼다. 오늘 밤에는 부디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기를.
*윗집에 쓴 쪽지에 답장이 왔다. 윗집도 진동이 들려서 종종 잠을 깬다고 한다. 오늘 새벽에도 어김없이 진동은 들렸고 사건은 미궁속으로...
written by 토핫 (핫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