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활 스터디' 같은데?

반려인 S와 생활 스터디 3개월의 기록

by 토끼와 핫도그
KakaoTalk_20201201_222412329.jpg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에 S와 다녀온 오대산 자연 명상 마을. 명상과 힐링이 요즘 우리집의 화두다.


"우리 생활 스터디 같은데?"


어느 저녁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S와 저녁 식사을 먹은 뒤 링피트로 운동을 한판 거하게 끝내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거실에는 흐르는 재즈 캐롤을 감상하다가 문득 맞은 편에 앉아서 한껏 집중한 표정으로 글을 쓰는 반려인 S가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 때문에 퇴근 후 집 밖으로 거의 안나가면서 저녁 시간마다 매일 비슷한 풍경이 그려진다. 운동하고, 책 읽고, 글쓰기. 뜬금없이 S에게 우리가 생활스터디를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던졌다.


S와 친구가 된지 5년차, 독서 스터디 2년차에 접어든다. 앞선 3년 동안은 환장의 술 메이트였고, 이후엔 같이 책을 읽으며 서로를 격려해왔다. 반려인이 된지 3개월, 술과 독서를 거쳐 생활스터디로 진화해가는 중이다. (생활 스터디는 시험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생활을 다잡아주는 스터디를 말한다. 학교 도서관이나 학원에서 생스 할 사람 구하는 글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의 생활 스터디는 주로 집에서 이루어진다. 남들은 집 밖에 나가서 공부한다는데 반대다. 거실이 웬만한 카페나 도서관보다 집중이 잘 된다. 이유는 지금 나의 대각선에 앉아서 뭔가를 가열차게 뭔가를 끼적이는 생명체 덕분이다. 공부하다가 흥미로운 부분이 나오면 서로에게 떠들고, 매일 고전을 같이 읽으며, 글을 완성하면 읽어보라고 건네줄 수 있는 존재가 있어서 거실 지박령이 되어간다.


잘 되는 스터디에는 멱살 잡고 하드 캐리하는 리더가 있다


잘 되는 스터디에는 하드캐리하는 리더가 있는데 우리집 생활 스터디의 리더는 단언컨대 S이다. 리더의 자질인 카리스마와 단호함을 모두 갖췄다. 나는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흐물흐물하다. 집에서 강제로 지켜야 하는 규칙 같은 건 없다. 뭔가를 하고 싶은 사람이 너도 할래? 한마디 던지고 주섬주섬 시작할 준비를 하면, 다른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합류한다. 안하고 싶으면 빠져도 무방하다. 따로 또 같이가 척척 이루어진다.


흐물흐물한 나도 스터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처음 뭔가 시작할 때는 둘 다 의욕에 넘쳐 신나한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한 사람의 불꽃이 사그라들 타이밍에 다른 사람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힘이 빠진 상대를 채찍질 해야 할 타이밍이다. 내가 추욱 늘어지면 S가 채찍을 휘두르고, S가 의욕을 잃으면 내가 풀무질을 한다. 운동, 글쓰기, 책 읽기 전부 비슷한 패턴으로 가늘고 길게 이어져왔다. 대체로 S가 운동과 글쓰기에 꾸준한 의욕을 보이고, 나는 독서를 습관처럼 해서 상호보완이 된다.


가끔 둘다 의욕을 잃으면 건너 뛴다. 어제는 운동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그냥 넘겼다. S는 허리가 안 좋아서, 나는 S의 허리가 안 좋은게 마음 아픈 걸 핑계로 빼먹었다. 나보다 S가 운동 의욕이 훨씬 높아서 내가 엎혀가는 형국이다. 의지력 높은 사람이 옆에 있어서 비자발적으로 일주일에 3~4번 운동을 한다. 나는 어릴 때도 친구따라 학원가는 스타일이었다. 그때도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랑 놀면서 성적이 급상승했다.


KakaoTalk_20201201_221641421.jpg 올해도 가열차게 등산을 다녔다. 등린이 탈출은 아직이다.


생활 스터디의 미래 : 무사히 할머니 되기 프로젝트


스터디는 처음 세운 목표를 달성하면 해체된다. 시험 스터디는 시험이 끝나면 해체되고, 취준 스터디는 취업이 되면 끝난다. 우리가 세운 생활 스터디의 목표는 '무사히 할머니 되기'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할머니가 되어서 세계를 여행하기로 했다. 지금도 해외 여행은 다니지만 나이가 들어서 다니는 여행은 느끼는 게 또 다를 거다. 그날이 올 때까지 스터디 겸 비혼 공동체는 이어진다.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글쓰고, 책을 읽는다. 내년에는 새롭게 도전할만한 운동을 찾아서 1년 동안 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나는 친구 따라 학원가서 성공하는 타입이니까 S를 앞세우면 성실하게 다닐 수 있을 거다. 대신 S가 흥미있어할만한 운동을 찾아야한다. 수영은 실패했다. 내년쯤이면 코로나 백신도 나와 있지 않을까.


술에서 독서로, 생활스터디까지 진화했는데 그 다음 모습은 어떨지 모르겠다. 작년에는 올해 함께 살면서 스터디를 하고 있을지 상상하지 못했다. 내년이 어떤 모습일지 그려지지 않기에 더 궁금하고 기대된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서 내일이 기대되지 않으면 어른이 된 거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나보다. 좋은 반려인 겸 스터디 멤버를 만나서 미래가 기대되는 삶을 산다.


(그러고 보니 S와 처음 친해졌을 때 내가 운영하던 토요일 오전 독서 모임에 나오라고 권했는데 단칼에 거절 당했다. 그랬던 S가 3년 뒤에 같이 책을 읽자고 했으니 인생은 두고 볼 일이다.)


written by 토핫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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