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힘을 합치니 내 집 마련이 사정권에 들어왔다
삼십 대 중반, 이번에 이사하면 벌써 19번째다.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7번 집을 옮겼고, 20살 이후부터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11번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미성년자일 때 겪는 이사란 그저 부모님을 따라다니면 끝나는 일이었다. 아침에 원래 살던 집에서 등교했다가 저녁에 이사간 집으로 하교하면 되는 수준의 '나의 일'이 아닌 '부모님의 일'이었다. 남의 일인 이사는 어려울 것도 힘들 것도 없었다. 철 없지만 이사 갈 때마다 집이 좋아졌기에 은근히 이사를 기다리기도 했다. 집이 있는 게 너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스무 살 넘어 독립하며 겪게 된 11번의 이사는 막막함과 어려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 집에서 평균적으로 1년 몇 개월을 살다가 옮겼다. 자의로 집을 옮긴 적도 있고, 타의로 내쫓겼을 때도 있다. 고시원, 기숙사, 빌라, 고시텔, 오피스텔, 아파트를 거치며 점점 주거의 질이 나아졌지만 자의와 타의가 혼재된 둥지의 불안정은 마음에 스크래치를 남겼다. 집을 떠올리면 가슴 어딘가가 무거워졌다.
20대 때는 주로 고시원, 기숙사, 빌라를 전전했다. 지방에서 갓 상경했을 땐 열악한 고시원만 선택지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서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 부자처럼 느껴졌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당연하게 존재했던 거실, 주방 같은 공간은 고시원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방에 들어가서 양팔을 뻗으면 벽에 닿았고 누웠을 때 발은 공중에 떠 있는 수납장 겹 책상 아래로 들어갔다.
고시원에서 창문 없는 방은 창문 있는 방보다 월세가 3만원 정도 저렴했다. 창문은 바깥으로 난 게 아니라 고시원 복도 쪽으로 나 있었다. 창문의 유무와 햇빛의 유무는 관계가 없었다. 어차피 햇빛도 못보는데 3만원이면 열끼 넘는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창문이 삶에서 어떤 걸 의미하는지 모르던 시절이라 열끼의 식사를 택했다. 방문을 닫으면 직육면체의 모든 공간이 막혔다. 누워 있으면 관 같고 일어서면 닭장 같았다. 복도에서 불이라도 나면 탈출할 길이 전혀 없는 공간이었다. 이 시기에 폐쇄공포증이 생긴게 아닐까 짐작한다.
학교 기숙사나 고시텔, 빌라는 사정이 좀 더 나았다. 집에 적어도 창문은 있었고 비상시 창문으로 뛰어내릴 수 있다는 게 큰 안정감을 줬다. 보안도 중요한 조건이라 너무 외진 곳을 피하다보니 월세 가격이 비싸졌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서 늘 룸메이트를 구해서 함께 살았다. 다행히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을 만나서 큰 문제 없이 몇 년 동안 살았다.
20대 후반에 돈을 번 다음부터는 주거의 질이 수직 상승했다. 보증금과 전세금 같은 목돈을 마련할 수 있으니 오피스텔이나 아파트가 주거의 후보군으로 들어왔다. 오피스텔은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되었지만 집 크기에 한계가 있어서 오래 살지는 않았다. 가장 최근에는 리모델링한 아파트를 전세로 계약해서 기뻤다. 아늑하고 따뜻하고 예쁘기까지 했던 현재의 보금자리도 전세금 상승으로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또 다시 집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가 먹구름처럼 몰려왔다. 언제까지 이사를 계속 다닐 수 없으니 집을 사긴 사야하는데 수중에는 집값보다 터무니 없이 작은 돈만 있다. 요즘은 대출 한도가 낮아져서 바로 내야하는 금액이 너무 커졌다. 돈을 모으는 속도보다 집값 오르는 속도가 더 빨라졌으니 집을 사는게 맞는데 돈이 없는게 문제였다. 집주인에게 재계약 연장 불가 통보를 받고 우울과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이때 해결사처럼 반려인 S가 말했다. "내가 가진 돈이랑 합쳐서 집을 사면 되잖아?" S와 나의 돈을 합치고 대출을 받으면 우리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아파트를 살 수 있다. 덕분에 혼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던 집까지 이사 후보지에 넣었다. S의 말 한마디에 주거의 안정성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돈을 한참 더 모아서 집을 살 계획이었는데 두 사람이 모이니 매수 계획이 훨씬 빨라졌다.
2인 가구를 구성할 때 남남, 남녀, 여여의 조합에서 여여 가구가 경제적으로 가장 불리하다고 하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여성 소득이 낮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1인 가구보다는 2인 가구일 때 훨씬 여러 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내 돈만으로는 역세권 아파트는 어림도 없었다. S가 힘을 보태니 역 근처까지 고려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차근 차근 집을 넓혀가는 코스에 우리도 한 발 들이는 기분이다.
아직 어디로 갈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나의 19번째 이사는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집을 사야겠다고 결정한 순간부터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이사 갈 집을 알아보러 돌아다니는 것도 하기 싫은 귀찮은 일이 아니라 좋은 집을 찾기 위한 즐거운 경험이 될 듯하다. 둥지를 11번 옮기면서 쌓은 노하우가 드디어 빛을 발할 때가 되었다. 나와 S에게 꼭 맞는 집을 찾으러 간다!
written by 토핫 (핫도그)